-
-
폭풍의 시간 ㅣ 스토리콜렉터 9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1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을 만나게 되었다. 근사한 표지가 반겨주는 이 책은《여름을 삼킨 소녀》와《끝나지 않은 여름》에 이어 셰리든 그랜트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폭풍의 시간》이다.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갈구한다고 해야할까? 셰리든은 한때 짝사랑했던 니컬러스 워커, 조던 블라이스톤을 포함하여 호레이쇼 버넷, 크리스토퍼 핀치 등 수많은 남자들과 사랑에 빠져들었지만 항상 그 끝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며,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셰리든의 그러한 모습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리든이 겪어야만 했던 일련의 시련들을 따라가다보면 조금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끝나지 않은 여름》에서는 막내오빠 에스다 그랜트의 소행으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자 셰리든은 양엄마인 레이켈 그랜트와 방송으로 인해 오히려 가해자이자 악녀 혹은 매춘부로 몰리기도 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그 사건은 셰리든의 뒤를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제 셰리든은 반항심 넘치는 열여섯살 소녀에서 스물한살 셰리든으로 자라났다.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사건들에서 도망쳐 새로운 곳에서 약혼자 폴 서튼과 함께 새 출발을 하려는 셰리든. 이 결과가 ‘셰이든의 바램대로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고, 어디 한 곳에 정착해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라는 식의 해피엔딩으로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흑역사와 잊고 싶은 과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본인도 잊고 있었던, 아니 적어도 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아는 사람의 입을 통해 불쑥 들춰지는 바람에 속으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아닐까 다를까 셰리든의 과거 역시 그녀를 얌전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한때 진실한 사랑이라 믿었던 옛애인 이던 뒤부아는 셰리든을 이용하고 끝내 배신한 것도 모잘라, 이제는 심지어 셰리든을 직접 납치하러 시도하기까지 한다. 셰리든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이던에게서 도망치는데 성공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의 과거를 무조건 숨기는데 전전긍긍했던 셰리든은 이제는 오히려 그 과거들을 자신의 입으로 밝혀야할 상황에 처한다. “난 당신이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어. 당신이 믿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나는 그것에 적합하지 않아. 그러니 이렇게 조언하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 당신 사람들에게로. 이게 향수병을 치료할 유일한 약이야.” (57p) 자신과 다른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다 자라나고 겪어온 환경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렇것이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나 의사로써 탄탄대로를 걷고있는 폴이 셰리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은 온전히 인정하고, 오히려 셰리든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놓아주는 폴이 멋있게 느껴졌다. 초반에 잠시 오해했던 것도 미안해지네.
셰리든은 5년 전 자신이 그렇게 떠나왔던 고향, 즉 네프레스카로 다시 돌아온다. 타인에게 의지하며 사랑받기를 갈구했던 유약한 소녀는 이제 자신을 괴롭히는 암울한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려 한다. 더이상 다른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셰이든은 한때의 꿈이었으나, 이제는 놓아버린지 오래인 음악 활동도 다시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운좋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한 음반 회사에서 러브콜이 날아왔고, 이대로 셰리든의 인생도 활짝 펴는 듯 했다. 셰리든은 자신의 오랜 바램을 이룰 수 있을까? 어쩌면 셰리든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가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셰리든을 응원해주고 싶다.
“건강한 의심은 언제나 중요하지. 하지만 네가 아무도 믿지 못한다거나 누구든 곧장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의심해서는 안돼.”
“그걸 어떻게 구분하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지. 자기 느낌에 귀를 기울여야 해.” (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