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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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이라 하여 처음에는 '이렇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라는 정보가 들어 있을 것을 기대했다. 한때나마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매일 같이 새로운 소설들이 나왔고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에 대한 꿈을 잃어갔다. 꿈과 현실은 다른 것이란 사실을 늦게 깨달게 된 것이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다는 것을 기억한 것도 오랜만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소설 속에도 동명의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특이한 작가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타인에 의해 글 쓰는 기계에 갇히지만 후에는 자발적으로 글 쓰는 기계로 걸어들어간 작가.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무엇이 그에게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이지?


《작가 소설》책속에는 글 쓰는 기계/ 죽이러 오는 자/ 마감 이틀 전/ 기코쓰 선생/ 사인회의 우울/ 작가 만담/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 꿈이야기 등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글 쓰는 기계'와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을때 그런 억압장치에 의지해서라도 글을 쓰고 싶을 작가들이 생각났기에 더 실감나게 읽었다. 약속은 약속,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작가에게 닥쳐온 형벌은? 글 쓰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글감을 얻으려 한다. 소가 마신 물은 우유가 되지만 독사가 마신 물은 독이 되듯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글쓰는 이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마감 이틀 전',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는 마감을 대하는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가오지 말았으면 하지만 빠르게 닥쳐오는 마감. 마지막 '꿈 이야기'는 많은 소설가들이 꿈꾸는 세상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호해주는 그런 세상,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지만 작가는 그 세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현실에서 그는 다른 수많은 작가들과 경쟁하며 독자들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처지니까. 재미나게 읽은 단편은 '죽이러 오는 자'다.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 가는데 그들 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묘하다고 해야 할까. 오시이 미쓰토시(19세)부터 도마자와 아이(18세)까지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책을 읽다보면 특정한 소설의 작가를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죽이러 오는 자'속에 우에스기 고이치라는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도미자와 아이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탓에 부러웠다. 팬이 된다는 의미에서 보면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죽이러 오는 자'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그는 피해자들을 어떤 방법으로 선별하는 것일까? 마지막 도미자와 아이의 말로 공통점이 드러나지만 그것을 밝힐 수는 없고, 그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스포일테니까.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를 통해 약속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값은 받지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요." "대신……" "어쩌다 보니 떠들어버렸지만 지금 한 이야기,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 (p.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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