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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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 말할려 했더니 얼마전 저자의 다른 책《사소한 변화》를 읽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살던 집에 머무는 귀신(?) 같은 것이었다. 책은 7년 전 헤어졌던 옛 연인(구라하시 사야카)이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된다. 전화가 걸려온 것도 뜬금없지만 그것이 뭔가 부탁을 하기 위해서란다. 뭐지?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의 전화가 무조건 반가운 것은 아니다. 때론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기도 하지. 사야카가 전화한 이유는 기억 속에 없는 집을 방문하기 위해 그의 동행을 부탁하기 위해서란다. 과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지.

단순한 방문이라면 주말을 이용 가족들과 함께 하면 될 것을~ 굳이 옛날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동행을 부탁한다? 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찾은 한 장의 지도와 열쇠, 지도가 가르키는 곳으로 가면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사야카. 사야카의 기억은 특이하게 6살 이전이 전혀 없단다. 집에도 어린 시절의 사진이나 추억이 실려있는 물건도 없었단다. 출신 대학(이학부 물리학과 제7강좌)에서 연구 조수로 활동하고 있는 나카노, 사야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잃어버린 기억 뿐일까? 학대 받은 사람이 학대를 하고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도 줄 줄 안다. 배운대로 옮기고 실천한다는 의미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란 제목을 보며 기시 유스케의《검은집》도 떠올랏다. 전혀 상관없는 책인데 왜 그랬을까?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는 어떤 살인 사건이나 현장 또는 시체의 등장도 없다. 나카노와 사야카가 지도에 그려져 있던 집으로 찾아갔고 그곳에서 기억 속에 있던 집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루를 거주하며 옛 기억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잇을 뿐이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 감춰져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요코하마에서 주택 전소, 일가족 세 명 사망' 23년 전에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일가족 세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아버지 미쿠리야 게이치로와 아들 후지코 그리고 딸 히사미(차미)가 사망했다.

'사야카 편히 잠들거라 2월 11일' (p.290) 지하실에 쓰여져 있는 이 글귀가 담고 있는 의미는? 서서히 사야카의 기억이 되찾아지며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남편과는 별거 상태이며 하나뿐인 딸(3살)은 시부모가 데려간 이유가 모두 학대와 폭행이 원인이라고.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자라서 다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된다는 말일까? 사야카의 사라진 기억 속에도 그런 부분이 엿보였다. 화재 사건이 일어난 미쿠리야 가에서 사야카의 아버지는 운전사로 엄마는 가정부로 일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갈수록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후지코'라는 이름의 소년이 남긴 일기만이 진실을 향해가는 열쇠가 되주는데.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곳에 그저 죽어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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