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트리나 포올러스 글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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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뜻밖에 자기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 처우와 자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죠. ‘나는 이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닌데 세상이 몰라준다’라는 불만을 터뜨리며.

 

유명한 사람들을 동경하면서 그들이 남몰래 흘린 땀을 알려고 하지는 않죠. 나비를 꿈꾸면서 누에고치 되기를 싫어하는 애벌레처럼. 봄을 축복하는 요정, 나비가 지난 시절에는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였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책 <꽃들에게 희망을>(1991. 소담)은 두 주인공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나비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랍니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애벌레탑이라는 게 나와요. 애벌레탑은 말 그대로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탑이에요. 위로 올라가려면 다른 애벌레들을 끌어내리고 밟아야 하죠.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있어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호기심을 자극하죠. 그래서 많은 애벌레들은 경쟁하면서 오르려 애쓰죠.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사랑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상층부를 향한 욕심을 견디지 못하고 애벌레 탑을 오릅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올라가면서 끌어내리고 밀쳐냈던 다른 애벌레들은 마음에 두지 않고 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갈수록 험난하고 힘들어진답니다. 높아질수록 떨어지는 무서움은 더 커지고 올라갈 수 있는 애벌레 숫자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꼭대기에 다가섰는데 위쪽에서는 꼭대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심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이때, 노랑나비가 와서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려 하고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 애벌레탑이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곳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애벌레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놀라죠.

 

다시 내려가려는 마음으로 수많은 애벌레들에게 밟히면서 그는 바닥에 도달하죠. 그리고 노랑나비의 안내에 따라 누에고치 허물을 보고 깨달아요.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비가 되려면 누에고치를 거쳐야 하죠. 애벌레는 오랜 기다림 끝에 나비가 된답니다. 기는 걸 포기해야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어렵게 다가올까요?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기다리며 노력해야 한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더나은 내일을 꿈꾸며 착실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거예요. 오늘의 기다림이 내일의 기쁨으로 이어질거예요. 모두, 힘내세요!

 

너는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라는 것을 -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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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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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얻기 힘든 게 사람 마음이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마음 꼴도 제각각이라서 이해하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알려고 애를 쓰고 귀를 기울이는 게 어려운 나머지 귀찮다는 핑계로 마음 문을 덜컥 닫기도 한다. 또, 지난날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다가 아팠던 기억이 마음 전하는 일을 막는다.

 

누군가에게 속았던 일도 떠오른다. 그러다가도 골똘히 생각해보면, 내 마음 내가 모를 때가 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누구를 알리요.

 

이렇게 마음고생을 해본 사람이라면 김형경씨가 쓴 <사람 풍경>(2006.예담)이 반가울 것이다. 이 책은 사람 마음을 세세하게 감정별로 나누어 풀어놓고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마음이 그려내는 여러 가지 모습을 재미있게 실었다. 지은이가 여행하면서 겪은 감정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솔직한 이야기들은 소설가답게 맛깔나고 진솔한 내용만큼 감동이 온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생득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들을 소개한다. 사랑뿐 아니라 분노, 불안 같이 유아기부터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들. 두 번째는 그 감정들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예로 아기 때부터 우리는 불안이나 공포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분열, 투사, 동일시 같은 생존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두 장이 유아기에 만들어지는 미숙하고 왜곡된 성정들이라면 세 번째 장은 성인이 된 뒤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좋은 덕목들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낸다. 자신의 콤플렉스,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지난 날, 감추고 싶었던 감정 등을 드러내며 털어놓는다. 그리고 훗날 한 시기동안 정신분석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던 여행과 함께 마음 깊숙하게 숨겨둔 자신의 상처들을 꺼낼 수 있었던 정신분석을 가장 잘 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정신관련 진단이라면 찜찜한 인상을 갖고 있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놀랄 일이다.

 

전문성 깊은 얘기를 이렇게 쉽게 읽히는 까닭은 지은이의 솔직함 덕분이다.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아픔과 어린 시절 간직한 기억들, 자기가 정말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 우울까지 고백하는 책은 소설 읽는 기분이 들면서 공감이 간다. 사람은 저마다 달라도 다 닮았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갈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심리여행에세이 사람풍경을 읽으면서 마음의 여러 결들들 쓰다듬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이 책은 모든 여행자에게 향하고 있기에.

 

이 책을 모든 여행자들에게 바친다.

이국의 거리를 걷거나,

길고 긴 인생을 걷거나,

마음의 미로를 걷고 있는 이들에게. - 여는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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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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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이 왜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전하는 이야기는 암호 같고 큰 의미 찾기는 어렵다. 그림과 사람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강이 있고 그 사이는 화해할 줄 모르는 거 같다. 하지만 <나도 타오르고 싶다>(2001. 한길아트)는 그림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며 편안하게 그림세상 속으로 초대를 한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고갱, 고흐, 고야, 드가, 모네, 마네, 피카소, 마그리트, 샤갈, 모딜리아니, 달리, 클림트 등이 소개된 차례를 보면 화가라는 것은 알겠는데, 모네가 마네같고 고갱이 고흔지 헷갈린다.  아니, 어쩌면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더 많을 수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화가와 그림들을 지은이 김영숙씨는 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듯 자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이 생각난다. 최강희가 연기한 여주인공이 이 책을 보고 데이트했다면 모딜리아니를 알았을 텐데.

 

방종한 삶을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자들은 무표정하면서 목선이 길쭉하게 늘어나 있는데, 14살 연하의 아내를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모딜리아니. 1918)은 왜 묘한 분위기와 눈빛을 지녔는지.

 

초기에는 밀레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고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는 쇠라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의 점묘기법을 흉내 내던 고흐, 드디어 자기답게 그리기 시작한 그림에서 물감튜브 하나씩을 그대로 짜 바른 듯, 고흐를 무겁게 짓눌렀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놀라운 두께, 어둡고 우울한 성격이지만 그 감성마저 매혹으로 표현한 그 색채.

 

어느 날, 서른다섯에 다섯 명의 자녀와 아내를 버리고 타히티라는 섬으로 ‘예술’하러 떠난 증권회사 직원, 고갱. 고요하고 평온한 색을 쓰지 못하고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색으로 화면을 뒤덮게 한 그를 덮친 운명.

 

거꾸로 세워진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라서 추상화를 개척한 칸딘스키, 전혀 엉뚱한 대상을 뜻하지 않은 곳에 둠으로써 낯설음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이란 기법을 잘 이용한 초현실주의자 마그리트,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의 모델을 찾기 위해 무덤의 묘를 파헤치는 소동, 아름다운 꽃들을 늘 크게 그린 오키프, 사람들의 여러 해석을 두고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고 한 피카소, 화가 난 군중들이 그림을 찢으려 했던 마네의 올랭피아, 빛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불우한 말년, 삐딱선을 타며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여 그리스 양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엘 그레코, 가난을 숭고하게 그린 밀레, 기존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고 예술운동인 다다이즘을 대변한 뒤샹과 유난히 발달한 서양 여자누드 이야기까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명화와 함께 있으니 그저 먼 예술이었던 그림이 어느새 가까운 감동이 되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문장들은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림에 얽힌 배경을 속삭이며 설명해주는 나만의 안내원 같다.

 

‘가여운 우리의 달리는 성불능이었답니다. 대충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그림 속의 사물들이 왜 저렇게 다 처져있는지.’

 

‘유대인적인 신비주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도 샤갈을 쉽게 좋아하지요. 우리 딸도 샤갈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혼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도 샤갈 때문이었지요. 한데 저희 남편은 샤갈보다 빼갈이 더 좋다더군요.’ -책에서

 

그림이 사는데 뭐 도와주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마치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식상한 말과 비슷하게. 사는 재미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그림보기는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될 수 있다. 따사로운 오후, 가벼운 차림으로 곳곳에 숨어있는 미술관으로 봄마중 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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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 나남신서 1198
임헌우 지음 / 나남출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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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2007. 나남)는 임헌우씨가 www.artbookproject.com (현재 접속안됨) ‘상상력의 엔진달기’에 상상력을 주제로 쓴 글 모음이다. 기발하고 신선한 광고사진들과 디자인드로잉에 격언을 덧붙이고 차분하면서 따뜻한 글로 누리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글들이다. 내용이 워낙 좋기에 책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내 글은 줄인다. 책에 실린 인상 깊은 문장들을 모아 줄거리를 세우고 차례를 정했다. 아래 글은 책에 실린 글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 짜깁기하였다. 새로운 서평을 상상하며.

 


물살이 샌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듯이 내 등에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에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했다는 문장을 읽었어요. 겪어왔던 시련과 고난들이 고맙게 느껴지네요. 어떠신가요? 고비마다 씨익 웃으며 한발 더 내딛으셨나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떠신가요? 내가 즐겁게 한 일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즐겁게 작업한 결과물을 보는 사람 역시 즐거워지죠.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일을 즐겁게 하는 자는 세상이 천국이요, 일을 생각하는 자는 세상이 지옥이다. 천국에서 사시나요? 지옥에서 사시나요?

 

애플 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하죠.

 

“33년을 살아오는 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를. 저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건, 제가 한 일에 대한 사랑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 앞에서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은 마음과 직관에 따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정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배고픈 채로, 바보처럼 살아가길 바랍니다.”

 

히딩크가 한 말이 떠오르네요. 나는 아직 배고프다. 어떠신가요? 지금 당신의 자리가 안락하고 따뜻하다면, 바로 지금이 이동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습니다. 늘 호기심이란 더듬이로 세상을 부비며 나아가세요. 불가능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텅 빈 주머니와 빈 머리가 아니라 메마른 가슴이죠. 이런 글이 있네요.

 

'살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하다.

신문을 읽기 위해 스스로를 가르치다.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다

신문이 그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다.'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꿈을 갖고 도전하세요. 오직 내가 도달하려는 높이까지만 나는 성장할 수 있어요. 오직 내가 추구하는 거리까지만 나는 갈 수 있죠. 오직 내가 살펴볼 수 있는 깊이까지만 나는 볼 수 있어요. 오직 내가 꿈을 꾸는 정도까지만 나는 될 수 있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당장 무언가 하지 않으면 ‘언젠가’라는 시간은 오지 않아요. 바로 지금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내일의 꿈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며 그저 꿈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젊음은 시간을 이기지 못합니다. 늦기 전에 무엇인가를 시작해보세요. 시작은 언제나 세상의 모든 결과보다 위대하답니다. 내 상상의 크기만큼, 내가 꾸는 큼의 영역만큼 이 세상은 존재하니까요.

 

앙드레 말로의 말로 마무리 할게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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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 다른우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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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정치계는 여전히 희극이고 그것은 민중에게 비극이지요. 대통령과 국회위원을 새롭게 공복으로 뽑아서 심부름꾼을 시켰는데 어떻게 된 게 엉뚱하고 이상한 일들만 벌이고 있네요.

 

저마다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인데 권력을 쥐어주면 왜 저렇게 될까요?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2003. 다른 우리]에서 이와 관련해서 꽂히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요.

 

어처구니 없는 미국의 '피그만침공'

 

1961년 4월 4일, 미국 국무성 펜타곤 안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죠. 미국에 흩어져 있는 쿠바인들을 모아 민병대를 조직하고 CIA의 훈련을 받게 한 뒤 피그만을 침공한 것이죠. 미국은 이들의 침공으로 쿠바 내에서 반혁명 운동이 일어나서 카스트로 정권이 패망할 것으로 기대했어요. 그러나 끝내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1400여명의 민병대는 패주하고 체포되지요. 이 사건이 바로 ‘피그만 침공’이에요. 

 

당시 피그만 침공을 결정한 자문위원들은 다년간 외교정책에 관여한 러스크,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이며 합리적 의사결정 연구의 권위자 맥나마라, 그리고 의사결정의 기술과 객관성에 정평이 나 있던 역사학자 슐렌진저 등 미국 내 최고의 두뇌집단이었다니 어이가 없지요.

 

1972년 집단 심리학자 제니스는 이 사건을 연구하여 ‘집단 사고(group think)' 때문이라고 진단하죠.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따온 용어로, 집단 내의 압력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 능력, 현실 검증력, 그리고 도덕 판단력의 쇠퇴를 가리키는 말로 왜곡된 집단 사고양식을 뜻하지요.

 

끼리끼리 모인 집단은 더욱 집단의 결정을 확신하게 되지만, 반대로 외부집단에 대해서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되지요. 자문위원회는 다른 모든 가능한 대안들을 무시한 채 피그만 침공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쿠바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줄 것인가의 두 극단만을 염두에 두고 토의하게 되어요. 47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어떻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 신기하기만 하네요. 계속 볼게요.

 

나은 결정을 내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구성원들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일수록 신중한 해결책을 찾는 일보다, 대개 자신의 결정에 관해 불안감을 해소키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되지요.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합리적인 정보처리보다는 논쟁이나 이견을 최소화하고 결정을 신속히 내리려 하게 되지요. 그럴수록 불안감이 적어지기 때문이니까요.

 

시민들 의도와 맞지 않는 파행들을 벌이고 왜 그렇게 서투른 일들 저지르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네요. 불안했을 거예요. 그리고 말도 웃기는 정면 돌파를 외치며 밀어붙이네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거나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기보다는 ‘그릇된 소신’을 고집하네요. 갑자기 삼풍백화점 임원단 회의에서 붕괴 위험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 떠오르네요.

 

열린 토론하고 반론을 받아들여야

 

그렇다면 어떻게 집단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요? 제니스는 사안을 공개해서 논의하고, 의안을 검토하는 집단 자체를 이원화하거나 회의를 두 번하는 방법, 제기된 주장에 대해 흠을 잡는 ‘반론대변인’을 두라고 알려주네요. 문제가 될 사항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지 말고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선심성인사를 하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란 얘기겠죠.

 

집단사고는 반대편의 의견을 수용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고를 자체 검열하면서 대안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 외에는 예방책이 없는 ‘질병’이지요. 끝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 골프 치면서 나라일 하느라 바쁜 분들은 병에 걸릴 수밖에 없겠네요. 위정자들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반성과 정해진 사람들 외에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지요.

 

이 책의 지은이 심영섭은 유명한 영화 평론가예요. 심영섭은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으로 앞 글자를 딴 필명이네요. 그가 영화에 담겨있는 심리를 맛깔나게 풀어낸 책으로 위의 내용 외에도 가지각색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에는 삽화가 서용남의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그림들이 더해져 한결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네요.

 

거식증은 대중매체가 일으킨 히스테리

 

하나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거식증은 대중 매체의 영향을 받는 현대의 히스테리라는 것을 아시나요? 거식증이나 과식증은 1970년대 이전까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신종 정신과 질환이라네요. 특히 거식증 환자 대부분이 풍요로운 중산층 이상의 가정환경을 갖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영향력 확산에 따른 여성 몸매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현대인들이 얼마나 대중매체에 휘둘리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로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네요.

 

피지 섬에는 1980년대 후반까지 TV가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TV가 보급된 지 불과 5년 만에 피지 섬 여성 중 80퍼센트가 자기 몸이 비만이라고 보고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과거 피지 섬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다산을 상징하는 다소 뚱뚱한 몸매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TV의 보급으로 계속 서구의 말라깽이 여성들만이 등장하자 이들의 자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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