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예술혁명 - 예술체험과 예술창조의 새로운 가능조건에 대한 미학적 탐구 다중지성총서 1
조정환.전선자.김진호 지음 / 갈무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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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예술가들의 세계는 끝났다고! 삶에서 뚝 떨어져 자신들만의 예술을 하는 이들이 여태 있겠지만, 이미 예술과 삶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예술가들의 세계가 끝났다는 뜻은 삶예술의 세계가 시작했다는 얘기지요. 우리의 삶은 이미 예술입니다.

 

이러한 삶예술을 만들어낸 예술운동이 플럭서스입니다. 인상파나 입체파, 초현실주의 같이 플럭서스를 뭐라고 딱 분질러 테두리 짓기가 어려운 까닭은 이들은 말 그대로 삶이 예술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흐름’이라는 뜻으로 끊임없는 움직임이자 바뀜을 담아내는 플럭서스가 아직 좀 낯설다면, 새로 나온 책『플럭서스 예술혁명』은 정겨운 길동무처럼 차근차근 짚어내면서 조곤조곤 수다 떨면서 플럭서스의 세계로 한발 내딛게 해줍니다.

 

세계의 역사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1965년에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nciunas 1931~1978)가 내놓은 플럭서스 선언문 가운데 “예술오락은 단순하고 즐겁고 비가식적이며 하찮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술오락은 어떤 숙련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며 무수한 예행연습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고 어떠한 상품가치나 제도적 가치도 갖지 않아야 한다”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은 더 이상 어떠한 틀에 맞춰서 권위를 얻으려는 무언가가 아니지요.

 

이 책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면서 한 시대를 뒤흔들던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을 다루면서 플럭서스를 풀어냅니다. “세계의 역사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백남준의 말처럼, 이들은 하나같이 세상이 짜놓은 경기에서 이기고자 아득바득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즐기며 잘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꿔내는데, 이것이 플럭서스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근대까지, 어떠한 틀이 있고 그 틀 안에서 고분고분히 말 잘 들으며 하란 것을 엄청나게 연습을 한 뒤 어느 정도 인정을 얻고 이름값을 가지면서 예술가가 되었다면, 플럭서스는 이러한 틀을 바수면서 삶에서 예술을 피어내고자 한 것이죠. 사실, 그동안 예술은 삶으로부터 동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 자신에게서도 소외되어왔으니까요.

 

이러한 예술에서 예술창작은, 노동이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된 활동일 뿐만 아니라 노동과정에서도 소외된 활동이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활동이듯이, 오브제화된 예술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소외되고, 그 결과 예술창작 과정이 소외된 활동으로되며 결국 예술가가 그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도록 만들었다. 13~14쪽

 

밍밍한 삶, 멍멍한 예술, 다시 플럭서스를 생각하다

 

그러나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바람처럼 아직 삶예술이 되지 않고 여전히 생활인과 예술가는 따로 놀지요. 사람들은 예술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고 예술가들은 삶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삶은 밍밍하고 예술은 멍멍하지요. 플럭서스도 뭇사람들 속으로 섞이기보다는 산업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고 상품들의 값을 올려주는 꾸밈새가 되었습니다. 예술혁명은 상품혁명을 낳았을 뿐이지요.

 

예술이란 칸막이를 부셔내고 자본에 맞서며 덤볐던 역사 속 플럭서스가 어느새 자본을 이끄는 짐마차가 되어 사람들의 감각을 외곬으로 몰아가는 요즘, 플럭서스를 생각한다는 건 그때의 플럭서스를 그대로 배우고 반복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을 던지면서 ‘다시’ 플럭서스를 이루겠다는 몸짓이죠. 예전의 전위들의 바람대로 예술이 대중화되었는데 그렇다고 더할 나위가 없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혁명적 아방가르드들은 탈근대적 상품세계를 열기 위해 싸웠고 그들의 운동은 승리했는가? 아니면 혁명적 아방가르드들은 상품세계를 거부하기 위해 싸웠고 탈근대적 상품세계 앞에서 그들의 예술전략은 좌초했는가? 아니면 혁명적 아방가르드의 예술운동은 오늘날의 상품세계나 상품적 예술세계와는 다른 그 무엇을 지시하는가? 170~171쪽

 

이름을 세계에 널리 떨친 플럭서스 예술가들을 살피면서 그들을 떠받들며 우러르기보다 그들에게서 배울 건 배우고 떨어낼 건 떨어내면서 바로-여기에서 산뜻한 물음표를 피워내자고 세 지은이들은 힘껏 소리칩니다. 물 흐르듯 시원스레 흘러가는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플럭서스를 느낄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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