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의 육체산업 - AV 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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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한국은 ‘파란 하늘’ 때문에 한바탕 떠들썩했죠. 바로 ‘아오이 소라’가 한국 드라마와 토크쇼에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죠.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아오이 소라에 대해 들어봤을 정도로 그미는 Adult video의 스타죠. 한쪽에선 왜 포르노 배우를 TV에서 봐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고, 다른 쪽에선 이미 볼 거 다 봤으면서 뭘 그러냐고 박수치며 맞았죠.

 

한 사진동호회에서 연 모임에 아오이 소라가 나오자 많은 남자들이 15만원이란 돈도 마다하지 않았죠. 한 참가자는 “모니터로만 보며 자위행위를 하던 아오이 소라를 직접 촬영할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며 좋아하더군요. 이처럼 야동은 가상세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죠. 클릭 한 번이면 섹스 장면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야동을 보지 말라고만 하는 건 잘하는 일이 아니죠. 더구나 대중매체는 야동을 닮아가고 있죠.

 

15조원이나 되는 야동산업, 컴퓨터마다 야동이 한가득, 가장 많이 다운받는 것도 야동!

 

이런 맥락에서 <15조원의 육체산업>[2009. 시네21]은 여러 모로 곱씹을만한 내용들이 있네요. 성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인 비디오(AV) 산업의 실태가 어떠한지, 성인 비디오를 어떻게 만들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여자들이 괴로워하는 야동들이 왜 많은지, 샅샅이 조사를 하여 이렇게 책으로 내놓았네요. AV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떠한 규제가 필요한지 생각하면서 한국의 성문화를 돌아볼 수 있네요.

 

먼저, 냉정하게 짚어보면, 많은 남자들이 야동을 보고 있습니다. 여자들도 보는 숫자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아직 비할 바가 아니고, 여자들을 대상화해서 찍은 영상에 흥분을 일으키는 여자는 드물죠. 오히려 불쾌하다며 이걸 왜 보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다르죠. 수많은 남자들이 자위를 하고 싶거나 스트레스를 풀 때, 야동을 봅니다. 컴퓨터마다 야동들이 한가득 쌓여있죠.

 

야동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AV는 돈 받고 파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섹스영상입니다. ‘야동 천국’ 일본에선 한 달에 1,000~1,500편이나 만들어지죠. 어림잡아 시장 규모가 1조 엔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산업이죠. 엔고를 고려해서 셈하면, 15조원이나 되는 시장이죠. AV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고, 소비자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는 얘기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죠.

 

예전에는 모텔이나 호텔에서 틀어주거나 청계천이나 세운상가에서 까만 봉지에 싸이던 야동들이 이젠 위성 방송, 휴대전화, 인터넷을 타고 누구나 쉽게 볼 있게 되었죠. 돈만 되면 모든지 다 사고파는 세태에서 섹시 동영상, 누드 화보란 이름으로 수많은 연예인들이 옷을 벗어 제칠 정도입니다. 성인물은 많은 남자들의 눈을 빨갛게 만들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죠. 그늘에서 숨 죽여 있던 야동이 볕드는 곳에서 화려하게 기지개를 켭니다.

 

불법 복제를 하거나 공유하였던 사람들까지 헤아리면 야동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죠. 사람들이 P2P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다운받는 것이 야동입니다. 빛의 속도로 받고 있죠. 인터넷이 빠르게 성장하는데 음란동영상들이 이바지했다는 것을 알만 한 사람은 다 알죠. 한때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X양 비디오를 보고자 사람들은 컴퓨터 기능을 높일 정도였으니까요.

 

사회비판의식이 있던 포르노그라피에서 폭력성과 선정성만 강해진 AV로!

 

그런데 역사를 되짚어보면, 포르노그라피는 그저 야하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권위주의에 짓눌린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수단이기도 했죠. 헛기침만 내뱉으면서 마치 돌덩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흔들며, 사회비판의식을 담아냈죠. 영화 속 섹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부수는 망치 노릇을 했죠. 따라서 20세기 중반 포르노들엔 당대의 분위기가 배어있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깃들어 있죠.

 

포르노가 성인영화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교훈이나 주장은 더 이상 실리지 않습니다. 정말 있으나마나한 이야기 흐름에 발가벗은 몸만 나오죠. 성행위만 찍은 성인물은 어떻게든 드라마 요소를 넣더라도 허접하기 이를 데 없고, 성기에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포르노는 남자에게 성 흥분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여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찍은 영상물로 변질하면서 덩달아 위상도 굴러 떨어졌네요.

 

문제는, 포르노에서 AV가 되면서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해졌다는 겁니다. 강간물이나 힘으로 여자를 정복하는 성인비디오가 인기를 끌고 있죠. 게다가 몰래카메라나 치한물, 변태물 같이 성범죄 행위들을 그린 야동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말도 못할 정도로 잔인하거나 심한 영상들이 인터넷 뒷골목을 떠돌고 있는 형편이죠. 사람들의 무의식이 야동에 찌들어 가는 거죠.

 

지은이는 남자 배우가 여배우의 얼굴에 정액을 뿌리는 ‘안면사정’에 중점을 잡고 문제 삼네요. 남자들은 별 생각 없겠지만, 이 장면을 좋게 받아들일 여자들은 거의 없죠. 한 여자는 “정액을 뿌려서 어쩌겠다는 건지. 남자라는 동물은 연어냐!”라고 경멸감을 나타내기도 하죠. 그저 돈을 벌고자 갈수록 일그러진 쾌락만 강조하는 야동들은 보는 사람의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습니다.

 

더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여배우들입니다. 야동 속 남자와 그 야동을 보는 남자들의 쾌락도구로 쓰이는 여배우들은 몇 편의 AV를 찍고 폐품 취급을 받죠. 여배우의 수명은 길어야 2년이고, 대부분은 성매매업소나 유흥업소로 흘러듭니다. 또한 AV여배우들은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많다고 하며, 화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AV를 찍으면서도 지독한 짓을 당한다고 하네요.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어찌 마음 편하게 야동을 볼 수 있을까요?

 

엄마에게서 제대로 정서가 독립하지 못한 남자들이 폭력성 짙은 야동을 본다!

 

성 본능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억누르면 다른 모습으로 튀어나올 뿐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관음증이나 노출증 역시 하나의 욕망일 수 있고, 성행위를 찍거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물음 하나! 야한 동영상을 찍고 싶다면 아름답게 찍으면 될 텐데, 왜 굳이 여자를 힘으로 누르는 야동들이 큰 인기를 끄는 걸까요?

 

지은이는 여러 자료와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마더 콤플렉스’를 그 원인으로 꼽네요. 마더 콤플렉스는 엄마의 지나친 애정 아래 자란 남자의 자아가 엄마에게서 제대로 분리가 안 되면서 빚어지는 열등감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일체감이 속절없이 끝날 때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크기 마련이죠. 그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나쁜 인상이 남고, 그것이 여자에 대한 나쁜 인상으로 번지죠. 결국, 마더 콤플렉스는 여자에 대한 공포나 업신여김을 낳습니다.

 

연구 결과, 어머니의 정서에 얽매여있던 남자는 새로운 여자와 관계를 동등하게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하고, 성관계를 할 때, 어머니의 이미지가 끼어들면서 성 불능으로 만들죠. 남자들은 이것을 막고자 공격하듯 성관계를 하면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뿌리치려고 합니다. 거친 섹스는 수컷의 야성을 뽐내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깊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거죠.

 

어머니의 치마 품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남자는 여자와 원만하게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야동을 통해서 섹스에 대한 환상을 채웁니다. 야동은 자기 몸과 상대의 몸이 맞대는 일이 아니라 가짜이니까요. 상대방의 정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자기만족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에게서 정서 독립이 안 된 남자들은 성인비디오를 통해 격한 성행위 장면을 찾는 거라고 하네요.

 

자녀를 한둘만 갖게 되면서 아이에게 너무 지나친 애정을 쏟고 보호만 하면서 키웠기에 일본에서는 ‘마더 콤플렉스’를 겪는 남자들이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의 남자들은 어떨까요? 그저 이웃 나라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네요. 일본 못지않게 야동에 푹 빠진 한국의 남자들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둘레에서 만나는 여자들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야동을 보면 여자의 존엄을 해치고 본인도 허무해져! 사회에서 새로운 성문화를 만들어야!

 

전쟁하면 안 된다, 남녀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선 큰 힘이 없듯 야동을 보면 안 된다고 당위에만 기대서 목소리 높여봤자 들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 보면 안 좋은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죠. 남자들을 짐승이라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거죠. 청소년들이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야동을 보면서 섹스를 배우고, 성욕을 푸는 순기능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야동은 여자의 존엄과 성평등을 해칩니다. 섹스나 에로스는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지죠. 야동은 여자를 하찮게 그려내면서 거짓된 환상만 심어줍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거죠. 강간에 저항하다가 몇 분 뒤에 황홀함에 소리를 지르는 연출 같은 것들은 남자들을 착각하게 만듭니다. 화면 속 여자와 실제 여자를 아무리 구분한다고 해도 야동을 본 남자는 언제든지 현실에서 재생 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요.

 

실제 성관계는 야동처럼 성욕을 푼 뒤 그냥 끝나는 게 아니죠. 야동은 책임과 사랑에 대해선 입 다물고 오로지 쾌락만 얘기합니다. 자칫 섹스에 대해서 삐뚤어진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죠. 섹스가 쾌락만을 위한 몸짓이 될 때, 본인도 허무해집니다. 성욕을 풀기 위한 도구로 여자를 여기게 되고, 자신의 삶 역시 스스로에게 소외되죠. 상대방을 성격, 품성, 가치관, 몸, 말, 시간을 통해 다차원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단지 성기로만 만나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동도 오늘날 사회의 반영일 뿐이죠. 여자를 낮잡아보고 힘으로 누르면 된다는 생각들이 야동으로서 드러나는 겁니다. 따라서 사회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법률로만 성 평등을 얘기하지 말고 삶에서 평등해져야 하죠. 남녀 사이에 소통이 잘 일어나고 성관계도 원활하다면 야동 볼 일도 없겠죠. 야동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은 성욕이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니까요.

 

사실, 야동만 많았지 행복하게 성 생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야동을 보는 건 그만큼 성만족도가 낮다는 얘기겠죠. 사람은 저마다 성욕 강도나 취향이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그대로 담아낸 새로운 성문화를 만들어야겠죠. 남근지상주의를 넘어서 모든 성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네요. 그런 말들이 나올 수 있도록 보다 열린사회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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