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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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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선생님께 한 짓을 용서할 수 있으세요?"
해괴한 질문도 다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이제껏 들어본 것 가운데 가장 진심 어린, 천진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의 폐부 깊숙한 곳에서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내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물론이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는 다 용서했어요. 그래야만 다음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용서의 나라>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1996년 겨울,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는 소녀 토르디스 엘바는 18살 호주 소년 톰 스트레인저에게 강간을 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엘바는 약 9년 동안 섭식장애와 알코올 의존, 자해 등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호주로 돌아간 가해자 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도, 놀랍게도 톰으로부터 후회가 가득한 답장이 도착한다. 그들은 약 8년 동안 300통의 편지를 주고 받게 되며,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다시 만난다.
"용서가 유일한 길이야.
그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나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두 사람은 케이프타운에서 약 일주일간 함께 머무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엘바 스스로 그를 용서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용서의 나라>는 성폭력 피해자인 엘바가 2013년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가해자였던 톰과 재회를 하면서 일주일간 쓴 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엘바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톰의 일기도 삽입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당시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보다 어떻게 용서의 과정에 이르렀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톰은 자기가 '강간범'이라는 인식이 극도로 강해서 혼자 숨어서 도움을 구하지도,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 뜻 깊은 관계도 맺지 못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한동안,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내가 한 짓이 곧 나였어.“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일어난다. 또 엘바처럼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지 않은 일을 당해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는 일도 경험한다.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온전히' 용서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용서의 과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으며, 단단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시도조차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용서의 나라>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쓰라린 상처에 용서라는 약을 발라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타인을 온전히 용서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용서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