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입니다만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인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이 싫었다. 사실 과학도 싫었는데, 문과와 이과가 갈리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과학을 다시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수학은 달랐다. 아무리 문과여도 수학 '나'형 이라는 잔인한 이름으로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수학이 싫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싫었다. 마음과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글과 다르게 숫자에서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숫자는 비인간적이라는 나만의 이유를 간직한 채, 그렇게 숫자와 수학을 멀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더 이상 고통스럽게 수학 문제를 풀 일이 없어졌다. 시험 문제도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전형적인 문과 계통의 전공을 한 탓에 숫자와는 계속해서 멀어졌다. 수학을 못 해서 크게 불편하거나 점수 때문에 자괴감 드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점점 이공계통과 멀어지는 나와 다르게, 세상은 온통 이과적인 요소가 넘쳐나고 있었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고,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 등 세상을 바꾼 사람들 모두 이공계통의 선두주자들 아닌가! 


<문과 출신입니다만>의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뼛속부터, 그러니까 DNA부터 문과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영화들의 바탕에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플롯과 이야기들이 즐비할 정도다. 문과인, 타고난 글쟁이인 가와무라 겐키가 신작을 냈다. 그는 이미 문과 출신으로서 성공 반열에 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모든 문과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저자가 성공한 이과인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곤충연구가, 닌텐도 대표이사, 미디어 아티스트, 로봇 제작자, 통계 전문가, 이론 물리학자 등 저자는 15명의 이과인을 만나서 그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도대체 문과에는 없고 이과에만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무엇이길래 이과 출신이 이토록 인정받고, 문과 출신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지. 


가와무라 겐키가 인터뷰한 15명의 이과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선두자로 꼽히는 사람들이다. 15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는 책의 어느 챕터를 먼저 읽든, 서로 다른 내용의 인터뷰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인터뷰는 인공지능 연구 선구자로 불리는 마쓰오 유타카의 인터뷰였다. 마쓰오 유타카는 도쿄대 공학부 전자정보공학과를 졸업해서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연구원이 된 후, 현재는 도쿄대 대학원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인공지능이 불러올 산업 구조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책도 낸 바 있다. 


저자와 마쓰오의 대화는 최근 인공지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마쓰오에게 딥러닝이 무엇인지 묻는데, 마쓰오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뇌 신경 세포를 모델로 삼은 '인공신경망'이라는 기법을 겹겹이 쌓아 올린 것이 바로 딥러닝입니다. 화상인식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사진 속에 있는 것이 고양이인지 개인지, 혹은 커피잔인지 주전자인지 알아내는 기술입니다."


또 저자는 마쓰오에게 인간의 능력, 그러니까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능력이나 무슨 말을 해야 상대방이 웃을지 상상하는 능력,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 등도 인공지능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마쓰오는 시행착오를 거쳐서 점점 발전하고 있는 딥더링의 수준으로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감정 자체를 인간이 흉내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주장을 펼친다. 


마쓰오와의 대화의 끝에 도출한 결론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향후 인공지능이 발전하려면 제조업 기술자가 지니고 있는 이과 지식과 묵묵히 변수를 조정하는 성실함 등 인간다운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 즉, 인공지능을 이용할 때조차 인간의 올바른 판단력과 상상력이 핵심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5명의 이과인들과의 대담을 통해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단순히 이과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할 것인가?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이과인들의 발전의 틈바구니에서 문과인, 그러니까 소위 문과인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상상력과 창의력,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보았다. 그가 만난 이과인들은 모두 완벽한 이공계인이라고 판단되기 보다는, 수학적인 상상력이나 과학적인 통찰력 등, 문과적인 성향이 상당하다. 그러니 그가 세상의 문과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보다 명료해진다. 세상을 바꾸는 산의 정상에 오로지 이과인의 DNA만 있는 것이 아니니, 기죽지 말고 통찰력을 가지라는 것! 그의 따뜻한 위로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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