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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살아있다
이석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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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머릿속으로 '법'을 그려보자. 무엇이 떠오르나. 엄숙한 분위기의 법정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판사들, 검은색 법복과 둔탁한 소리를 내는 판사봉이 그려진다. 때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이들과 Beegees의 'Holiday'가 떠오르기도 한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법'은 어렵고 딱딱한, 가진 자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무엇'에 불과하다. 그 개념이나 형태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법이 뭔가요?'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한참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시기 적절하게도 <헌법은 살아있다>라는 책이 발간됐다. 변호사로서 주로 공익소송을 맡으면서 시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석연 변호사의 책이다. 세계 헌정사상 유례없는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헌법이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책의 첫 번째 장에서는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헌법'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헌법 전문에는 "헌법은 우리가 안전한 사회에서 각자 능력을 발휘하여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확보해 주는 제도적 장치"라고 적혀있다. 마치 공기나 물처럼 우리의 생활을 떠받쳐주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첫 번째 장에는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전국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는 그 책임을 지닌 국민 개개인이 헌법을 지키기 위한 저항권의 행사였다는 것이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친 국민이 최후의 수단으로 택한 합헌적인 저항권이 바로 '촛불집회'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비폭력, 평화적 수단으로 행사한 촛불집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 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저항권이 원래는 독일에서 발전된 이론이라는 점이다. 독일 헌법에는 "헌법적 질서를 파괴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다른 구제책이 불가능한 경우 모든 독일 국민은 저항권을 가진다"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촛불집회는, 헌법적 질서를 파괴하고자 시도하는 현 대통령에 대한 저항권임을 암시한다.
두 번째 장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헌법, 현행 헌법의 문제점 등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현행 헌법이 1987년, 그러니까 30년도 넘은 헌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여망,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기에 미흡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헌법'이라고 할 수 없다. 저자는 개정 헌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대한민국 정체성의 상징을 헌법에 천명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임을 재확인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1장과 2장이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장이라면, 세 번째 장은 '한국 사회를 바꾼 10대 위헌 결정'이라는 주제로 생생한 사례들을 담은 장이다. 간통죄 위헌결정,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 위헌결정, 수도이전법 위헌결정,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 위헌결정, 과외교습 금지 위헌결정, 태아의 성별고지 금지 위헌결정, 공권력 개입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 위헌결정, 부부의 자산소득 합산과세 제도 위헌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노무현 대통령 탄핵/김영란법 기각 등 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최근의 쟁점을 다룬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성격과 쟁점을 정리한 부분이다. 헌법에는 탄핵 사유를 대통령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하여는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는 탄핵에 의한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된다고 하였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는 뇌물수수, 부정부패,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국가조직을 이용하여 국민을 탄압하는 행위 등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소추의결서에 적시된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 위반, 또는 법률 위반의 탄핵 사유는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라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p118.)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인터뷰 전문가 지승호 작가와 이석연 변호사와의 대담을 담고 있다. 수도이전법, 재외동포법, 가정의례법 등 이석연 변호사가 공익소송으로 했던 위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지승호 작가의 질문에 이석연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변호사들이 먹고 살기만으로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공익소송에 관심을 쏟기가 어렵지만, 이럴 때일 수록 사회에서 억울하게 당하거나 제도에 의해서 보호를 못 받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설사 그들의 뜻을 실현시켜 주지 못하고 억울한 점을 해소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같이 고민하면 뭔가 새로운 것이 이 떠오른다는 게 이석연 변호사의 답변이다.
개헌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 요즘. 우리의 뜻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헌법' 의식이 자리 잡혀 있어야 한다. 책에 서문, 이석연 변호사가 밝힌 것처럼 헌법은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다소 추상적이던 법의 관념을, 국민의 입장에서 설명한 책 <헌법은 살아있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헌법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