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채희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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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로렌스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아들과 연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데이비드 로렌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가 외설시비를 겪은 소설가였다는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로렌스를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터라, 얼마 전 페이퍼로드에서 발간된 <유럽사 이야기> 표지 가운데 찍힌 ‘D.H.로렌스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 몹시 놀랐다. 그가 역사서를 저술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니까.

 


<유럽사 이야기>를 출간한 출판사 페이퍼로드는 D.H.로렌스가 역사서를 저술하게 된 배경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사연이야 구구절절하겠지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출간하는 책마다 외설시비를 받고 출간 정지를 받은 로렌스에게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 교과서집필을 맡겼다는 것. 소설가, 그것도 외설시비 논란이 불거진 그에게 역사서 저술을 맡긴 옥스퍼드 대학교로서도 자못 파격적인 제안이었겠지만, 로렌스 또한 거절하지 않았기에 이 멋진 <유럽사 이야기>가 발간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의 경계 안에서 쇠락해가는 동안 유럽은 나머지 지역은 게르마니아와 러시아와 아시아에서 들어온 야만족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이 야만인들도 마침내 한곳에 정착했는데, 그곳의 원주민들과 섞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지만 이들은 위대한 근대 국가의 기초를 닦거나 형성했다. 이들이 오늘 날의 영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롬바르드인, 스위스인, 불가리안인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각 종족들의 야생적인 혼혈의 산물이었다.

- D.H.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유럽사 이야기>는 고대 로마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 유럽 국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로마제국, 기독교의 박해,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등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유럽사이지만, 이 모든 내용들을 '로렌스 답게'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 기존의 역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럽사를 다루는 역사서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로렌스의 유럽사는 다르다. 소설가의 역사서라서가 아니다. <유럽사 이야기>에는 소설적 어휘, 그러니까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문체는 나오지 않는다. 소설 속에 있는 주인공도 없다. 로렌스는 역사는 이야기 책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역사 속 인물들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렌스의 소설처럼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기대한 독자라면 어쩌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사실을 전제로 하지만, 마치 살아있는 역사, 생동감 있는 묘사는 그의 역사서 <유럽사 이야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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