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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각본집 -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임선애 지음 / 소시민워크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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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임선애 감독의 <69세>일 것이다. <화차>,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 굵직한 영화들에서 ‘스토리보드’를 책임지던 임선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의 주인공 효정(예수정)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69세>는, ‘장년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로 주목받은 바 있다.
<69세>를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그래서 이 각본집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임선애 감독이 각본과 감독으로 활약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각본집을 한 페이지씩 넘길 대마다 영화를 다시 한번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각본집을 다시 읽으면서 주인공이 여성으로서, 노인으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시선과 편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임 감독의 각본을 비롯하여, 그가 직접 기록한 각본일기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감독이 각본 작업을 하는 도중,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69세 각본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책 중반부에 담긴 ‘스토리보드’였다. 영화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미리 콘티로 짜놓은 스토리보드는, 감독이 연출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임수정 배우의 손, 그러니까 69세 장년의 주름진 손을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스토리보드에 해당 그림이 매우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을뿐더러 부연 설명까지 적혀있어서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