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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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의 사전적 정의는 생물의 기능이 나타나는 과정이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흥미롭게도 생리학19세기 프랑스 사회 전반에 퍼진 문학 장르를 일컫기도 한다. 동물이나 식물, 과학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듯 인간 또한 직업이나 계층 등으로 나누어 치밀하게 분석하겠다는 의도에서 생겨난 장르이다.

 

200년 전 급격하게 변화하는 프랑스 사회의 기류에 맞춰 탄생한 생물학이라는 문학 장르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는 단연 오네로 드 발자크다. 프랑스의 대문호로 꼽히는 그는 <공무원 생리학>을 통해 당시 공무원들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기록했다.

 

공무원을 최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

<공무원 생리학>, 12p

 

작가는 공무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공무원이라는 종()을 분석했다. 책에는 공무원의 생태와 특성 등이 촘촘하게 분류되어 있으나, 저자가 공무원이라는 종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프랑스의 국왕도 결국엔 공무원이라는 명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국왕조차 국가 세비를 받는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 명제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다.

 




 

 

<공무원 생물학>에는 1841년 당시 공무원의 생태와 특성이 낱낱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파리 공무원, 지방 공무원으로 분류하거나, 군인과 공무원을 구분하기도 하며, 공무원에서 정치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폭로하기도 한다.

 

발자크는 묘사에 탁월한 작가인데, 그가 당시 공무원들의 외모를 묘사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파리에서 공무원으로 불리는 다양한 인간 종의 외모, 말투, 원칙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예를 들어 말처럼 아래턱이 사각형으로 넓어 좀 우둔해 보이는 공무원은 문서계 아니면 인사계에서 일한다는 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업적 특성을 외모로 분류한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겠지만, 200년 전 파리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직한 일임을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그는 지인의 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면 어디어디의 공무원을 만나라등의 표현을 통해 공무원의 부패를 꼬집기도 했다.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라며 그들의 복지부동과 태만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모든 분석과 묘사들이 발자크의 손끝에서는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서사로 탄생해, 독자들은 어떤 거부감도 없이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의 이러한 분류가 약 2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공무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공무원을 묘사할 때 나름 이상적인 사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공무원 사회에 대한 저자의 풍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특유의 재치 있고 날렵한 필체로 시종일관 공무원, 공무원 사회를 풍자하는데, 오늘날의 공무원들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해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도덕 및 정치학 아카데미는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자에게 상을 줘야 할 것이다. “다음 중 최상의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적은 공무원으로 많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많은 공무원으로 적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공무원 생리학>, 200p

 

<공무원 생리학>은 발자크가 공무원을 낱낱이 해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작가 발자크 만이 가진 특유의 풍자와 해학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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