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준점이 높은 분야가 있다. 바로 '포르노그래피'. 인터넷의 발달로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이미 우리는 다양한 포르노그래피를 접하고 있다. 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함께 성적 표현의 허용 범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포르노그래피'를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팽배하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이해완 교수는 신간 <불온한 것들의 미학>을 통해 포르노그래피를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 이야기 한다. 가볍게는 '야동', '포르노'부터 시작해서 정말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확산되고 있는 포르노그래피는 미학에서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지만, 보다 본질에 있는 철학적인 논점을 살펴보자는 뜻에서이다.

 

우선 '무엇이 포르노그래피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포르노그래피는 구체적인 사물들을 묶는 장르의 이름이어서 '음란'이나 '외설' 같은 대상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지칭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이 우리말에는 없는 외래어이지만 단순히 '음란물'로 사용하기에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포르노그래피를 정의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대개 다음의 두 요소를 필수조건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첫 째는 그것이 글이건 이미지이건 그 내용에 있어서 성이 가려지는 것 없이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노출된 성행위나 성기의 재현이 보는 이에게 성적인 흥분을 일으킬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는 대량 생산되는 산업 제품일 뿐이고, 아름답지 않고 추하며, 상상에 의존하는 예술과 달리 공상에나 의존할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 맞다. 누구도 전형적인 포르노그래피가 이러한 성격을 가졌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포르노그래피의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연적 속성에 불과한 한 예술과 포르노그래피의 양립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 137p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서는 포르노그래피를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계의 견해, 또 포르노그래피를 예술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찬반론을 소개한다. 저자는 하나의 대상을 포르노그래피로 감상할 때 그 대상이 주는 성적 흥분을 간과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예술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성적 흥분으로 인해 그 대상을 예술로서 감상하는 행위를 방해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포르노그래피가 예술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현대 예술에서는 매우 사소하고 식상한 질문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화장실 설비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보자. 이 질문에 대한 현대 예술의 답변은 ", 이제는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남성용 소변기가 예술이 된 지 백년이 넘었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 127p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철학적인 논쟁 외에도 '농담'을 바라보는 윤리적인 관점들,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허구의 감정과 이런 감정을 다루는 '미학'을 소개한다. 서울대학교 강의를 엮은 시리즈 '서강명강'의 하나로 발간된 도서이니, 지식의 깊이를 한층 더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