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 - 성추행범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법
사이토 아키요시 지음, 서라미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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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여성이나 젊은 여성이 표적이 된다는 발상은

성추행의 실상과 거리가 멀다. 특정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

성추행범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직장 상사와 언론사 기자들과의 술자리를 가졌었는데, 마침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라는 책을 접하기 바로 직전에 발생했던 일이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직장 상사들과 언론사 기자들이 소주와 맥주를 50병 가량 마신 상태였고, 필자는 술을 마시지 못해(물만 홀짝홀짝 마시는 상태) 혼자서만 멀쩡한 상태였다.

 

2차로 자리로 옮겼을 때 내 옆으로 자리를 잡은 한 기자(자신이 최근 아들을 낳았다고 했던)는 그의 오른 손으로 내 허리께를 쓰다듬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던 터라, 1차에서 이미 만취가 된 그가 혹여 자신의 손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서 일단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이건 분명 쓰다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물을 가지러 가는 척 하며 자리를 떴다. 무력에 의해 3차에 끌려 갔는데, 3차에서 그는 더 노골적으로 내 손을 잡았고, '애인 있다'고 말하며 손을 빼자 '내가 자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 물론 잘 수도 있다', '좋아한다' 등의 희롱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게 상책인 것임을 알기에, 간신히 달래 그와 그의 동료를 택시에 태워서 보냈고(헤어진 후에 내가 건넨 명함을 보고 그에게 전화가 왔으며, 내일 저녁에 술을 마시자는 개소리도 마구 해댔다.)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한 발언이나 행동 중 어떤 것이 그에게 우습게 보였을까'라는 생각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성추행이 만연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성추행과 관련된 서적이나, 각종 성범죄를 다루는 뉴스만 봐도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이루어지는 불쾌한 신체적 접촉, 직장 내에서 의도적인 성추행 등을 한번이라도 당해본 여성이라면, 책에서 읽은 것처럼 '단호한 대처'가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성추행을 당하는 순간 일단 온몸이 경직되고, 머릿속에는 수 만가지 생각이 든다. 더구나 성추행을 하는 상대방이 직장과 연관된 사람이라면, 단순한 성추행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와 직결된다.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표적 선정이다. 대상에 따라 체포 위험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그들이 노리는 여성은 쉽게 말해 '신고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이다. 여자라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나 만지면 체포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성추행범은 표적을 고르는 데 공을 들인다. (110p)”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의 저자 사이토 아키요시는 일본의 정신보건복지사이자 사회복지사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의존증 치료 시설인 에노모토 클리닉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알코올 의존증을 비롯해 도박, 약물, 성범죄, 도벽 등 다양한 의존증 치료에 힘쓰고 있는 그가 '성추행'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출간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론을 다루기 보다는, 성추행범의 심리와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추행이라는 범죄와 성추행범이 비교적 친숙한 얼굴로 우리들의 곁에 있다는 내용을 비롯해 성추행범이 '' 성추행을 하는지 그들의 심리를 해부한다. 특히 성추행범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사실과 그들이 성추행 범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등 성추행범의 심리를 파헤친다. 특히 병리적인 측면에서 '성추행'을 재조명하며, 성추행범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치료 기간은 위험도와 상관없이 최소 3년이다. 치료 빈도와 걸리는 시간은 각기 다르지만, 첫 반년 동안은 집중적으로 치료받을수록 좋다. 참여자들은 빨리 치료를 끝내고 직장을 구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사건 당시와 똑같은 생활로 돌아간다면 재범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193p)”

 

몇 몇의 성범죄자를 체포했다는 것만으로 성추행이 만연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들이 운이 나빠 성범죄자로 구속이 된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추행범들의 의식과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들이 '환자'라는 사실과 그들을 제대로 치료해야만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성범죄는 시스템을 통해서 예방해야 하는 것이지, 발생한 이후에는 이미 늦은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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