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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평점 :
1. 상하이와 베이징, 해파문학과 경파문학, 왕안이와 베이다오
상하이 대표적 작가왕안이의《상하이, 여자의 향기》는 베이다오의《베이징, 내 유년의 빛》과 짝을 이루어 나왔다. 해파문학과 경파문학의 특징과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일까. 두 에세이 모두 일상이 녹아든 기억과 느낌들을 꺼내어 그들이 살아온 도시를 재구성하고 있지만, 두 도시 사람들의 기질과 사고방식, 문화적 유전자가 대조적인 만큼이나 이 에세이들도 표현방식이 상이하다. 양둥핑의 《중국의 두 얼굴》(2008)에서는 베이징과 상하이의 문화적 차이와 경파(京派)·해파(海派) 논쟁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문인 린위탕의 말을 빌려 상하이 사람들은 "타고난 상인이고 우수한 문인이지만 전장에서는 새가슴"이라 말하고, 베이징 사람들을 가리켜 "기개가 있는 자연의 사람들"이라 표현했으며, 베이징의 경극과 상하이의 호극, 궁정화풍과 자유로운 화풍, 문화대혁명이 가른 두 도시의 명암 등을 보여준다. 왕안이 또한 이 책에서 두 도시를 대비시키며 자연환경, 도시, 사람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람의 계절이 돌아오면 베이징의 하늘은 거대한 바람이 호호탕탕 거친 기세로 행군하지만, 눈으로는 바람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투명하던 공기가 과립 형태로 변해 바스락거리기 시작하고 천지간에 울음소리가 가득하게 된다. 이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반면 상하이의 바람은 훨씬 가늘고 귀엽다. 상하이의 바람은 아주 좁은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을 뚫고 다니다가 손바닥만 한 공터에서 회오리를 일으켜 종잇조각이나 낙엽을 날려 이리저리 떠돌게 한다. 바람이 두 건물 사이를 비집고 지나갈 때면 가벼운 충격과 함께 비비고 튕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베이징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인의 기질이 있어 입을 열었다 하면 훌륭한 글이 된다. 그들은 역사학자의 기질도 있어 언어의 배후에 무수한 전고(典故)가 담겨 있다. ··· 그에 비하면 상하이 사람들은 몹시 거친 편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수십 년에 걸친 식민지 시대의 속성으로 신사와 숙녀의 규범을 배웠고, 아주 피상적인 것들을 일종의 학문으로 간주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역사가 많이 들어 있지 않다. 그저 20년 동안 번화했던 옛 꿈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꿈은 아무리 해도 다 꿀 수 없는 꿈이라도 지금도 상하이 사람들은 이 꿈에 취해 있다."
"베이징은 감성적이다. 베이징에서 어느 장소를 찾아가려면 지명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환경의 특징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 이에 비해 상하이의 택시 기사들은 개괄적으로 추리하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지명만 가지고도 손님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무사히 데려다준다."
2.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단 한 번도 더듬어보지 않는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상하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말투, 성격부터 이곳의 음식, 주택, 거리의 풍경, 생활, 문학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도시의 풍경과 역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베이다오의 '베이징'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한 가운데서 유년기를 겪으며 체험했던 에피소드들을 긴 호흡으로 재구성했다면, 왕안이의 '상하이'는 글로 풍경을 그리듯 가볍고 산뜻한 느낌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의 현대성과 풀뿌리처럼 아직은 밑바탕에 남아 있는 전통의 교차점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관찰력이 일품이다.
"···이처럼 기본이 없는 만큼 융합과 소통이 편리한 것이 상하이 음식의 특징이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러 개방의 추세가 필연으로 굳어지다 보니 여러 지역의 음식과 조리법이 전부 상하이로 몰려들어 국제 카니발무대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무대 뒤로 가보면 집집마다 뒷골목을 향한 부엌 밖에 온갖 조리 기구를 내놓고 눈발을 맞으며 생선과 고기, 온갖 채소를 평범하지만 다양한 조미료와 양념을 넣어 볶고 굽고 튀기는 풍경이 펼져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도시, 상하이 풀뿌리들의 향기다."
"···이 도시에 사방 도처에 농민공들이 가득하고 공중에는 그들이 흘리는 땀 냄새와 시골 방언 억양이 떠다니고 있다. ··· 아무 거리낌도 없이 당당하면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에 젖어 있는 모습들이다. ㅡ고 작은 거리와 골목 담장 아래서 소변을 복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눈에 띈다. 이런 모습들은 이 도시가 갖고 있는 부르주아적 풍격을 거칠고 조악하게 바꿔놓는다."
3. 남자와 여자, 여자의 도시
도시의 일상을 관찰하며 느낀 전통과 현대성을 다음 2부에서는 여성성과 여성으로서의 도시적 삶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왕안이는 여성성을 발견하고, 특히 여성들의 '자아의식'이 글과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한다.
"여성 작가들에게는 자아가 가장 중요한 창작 요소였고, 자신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다. ··· 그래서 중국 여인들의 자아의식은 더욱 강렬해지고 남성들의 집단의식을 더욱더 강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하이라는 이 단단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곧고 강직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영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얼마간이라도 이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도시의 여자들이 강인하게 자신들의 존재와 현실을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녀는 도시가 교체의 시절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차분히 더듬어 본 이후에 마지막으로 그 공간에서의 자신의 삶을 떠올려본다.
"195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이 구간의 역사에 속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로 만족스럽다. 먼저 이 시대는 내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고, 충실하게 나의 사상을 개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다음, 나를 아주 힘든 곤경으로 밀어 넣어 계속 학습하고 인식하며 실천하고 경험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