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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1. 이탈리아 문학 돌풍의 주역
움베르트 에코 외에는 이탈리아 문학을 접해본 바 없어서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데, 요즘 출판계에서는 프리모 레비의 소설 《릴리트》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든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에세이 《작은 우주들》과 《다뉴브》 등 다양한 이탈리아 문학이 출간되고 있다. 특히 한길사에서 창사 4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나폴리 4부작'은 작품 자체로서도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지만, 작가의 이력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 1992년 첫 작품인 《성가신 사랑》으로 데뷔한 이후 좋은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도 얼굴과 신상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으며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조차 필명이다. 그래서 작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있어왔고, 심지어 언론의 '가면 벗기기'와 같은 행태도 있었던 모양이다. 일부 언론의 탐사보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미국의 작가 록산나 게이는 '그런 정보는 내 삶을 바꾸지도 못하고, 페렌테의 책을 더 탁월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필명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아서일까. 글을 읽으면서 자전적 소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탓에 작가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심리도 작용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은둔을 선택하고 필명으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고, 작가의 정체를 아는 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는 영국 소설가 조조 모예스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2. '흔적'
나폴리 4부작의 제1권은 노년이 된 주인공이자 화자인 '레누'가 60년 우정을 나눈 친구 '릴라'의 아들로부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릴라는 언제나 그렇듯이 극단적이었다. 단순히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옷가지는 물론 출생증명서까지 모든 흔적을 지운 채 사라져버렸다. 60년 인생을 통째로 지우려는 친구를 떠올리며, 주인공은 '이번엔 누가 이기는지 보자'라고 마음을 먹으며 반대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듯 글을 써내려간다. 처음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극단적인 성향이 릴라를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주인공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유년시절과 사춘기를 다룬 1부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보니 어렴풋이 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3. 두 소녀의 성장기
60년의 우정 가운데 이 책은 1950년대 나폴리를 배경으로 이들이 함께 한 유년기와 사춘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레누는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조용하고 모범생 스타일인 반면, 친구 릴라는 두려움이 없고 거칠면서도 영특하고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스타일이다. 이 둘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의지하고, 질투하면서도 그리워하며 성장해간다. 레누에게 릴라는 홀로 여행 중 처음으로 평생 잊지 못할 풍요롭고 여유로운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워했던 대상이었고, 릴라에게 레누는 '눈부신 친구'였다. 화자가 레누이기 때문에 그녀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훨씬 많은 비중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첫 만남부터 레누는 릴라를 바라보며 동경하면서도 열등감을 느껴왔고, 릴라의 영향력에 잠식되어가는 자신을 항상 느낀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한 릴라의 바상함에 자극을 받아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뛰어난 학생이 되었지만, 막상 릴라는 선생님의 권유도 뿌리치고 가업인 구두제작에 몰두하다가 열여섯 나이에 결혼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지켜보며 레누는 목표를 잃은 듯이 마구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경과 열등감으로 인해 릴라에게 기울어져 있던 무게중심이 어느 순간 다시 균형점을 찾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화자인 레누가 바라본 동경의 대상 릴라만 보이다가, 이 지점에 이르러 비로소 릴라의 내심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이다. 무신경하고 무뚝뚝해 보였던 릴라는 경제적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꿈을 '나의 눈부신 친구'가 이루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남성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소녀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성과 가치체계의 형성·해체과정의 반복을 작가는 공감하기 쉽게끔 내면에서 이끌어내고 있다. 꾸밈이 없는, 솔직하고 담백한 독백의 느낌이라 더욱 끌린다. 외설적인 장면의 표현 마저도...
4. 전후 나폴리
이 소설은 단순히 두 소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유년기와 사춘기의 부제를 보면 당시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전후 나폴리는 빈곤했고, 폭력이 만연했다. 여성으로서 꿈을 갖기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시대에, 여자아이는 공부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배경의 도시는 두 소녀의 성장과 함께 역동적으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고리대금업자인 '돈 아킬레의 이야기'와 '구두 이야기'는 두 소녀의 삶에 상징적인 의미와 깊은 흔적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