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법 입문
김광수 지음 / 내를건너서숲으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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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일리아스>(호메로스/천병희 역/ 2015)

 

인공지능의 역사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었으나, 그 존재에 관한 상상이나 희망, 철학적 관념과 논쟁은 훨씬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이나 희망 따위는 컴퓨터 발명을 통해 빠르게 현실화되었고, 각 분야의 학문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4차 혁명나 포스트휴먼, 기계학습, 인공 신경망, 딥러닝 등의 용어는 심심치 않게 들어왔지만, 이런 것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기회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아니었나 싶다. 2016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인간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대중적인 열기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지만, 당시에는 각계각층의 관심이 아주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막연하게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마 이때를 계기로 더 이상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최초의 AI 작곡가, 최초의 AI 소설가, 최초의 AI 미술가, 최초의 AI 발명가 등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양한 학문분야에서는 꾸준히 인공지능을 주제로 연구물이 생산되고 있다. 법학 분야에서는 2010년 경에 간간이 인공지능과 연관된 연구논문이 있었는데, 2016년 경부터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익숙해도, 인공지능이라는 분야는 생소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공지능법이라는 독립된 법체계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개별적인 법분야에서 해당 분야의 주제를 논의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예컨대, 헌법이나 행정법과 같은 공법 영역에서는 규제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주로 개인정보보호법에서의 쟁점을 연구한다. 민법 영역에서는 권리 주체성이나 불법행위 문제를, 형법 영역에서는 범죄 예방의 문제를, 기초법 영역에서는 로봇의 인격성 문제 등을 다루며, 그밖에 지적재산권법이나 노동법, 세법 등 다양한 법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영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러나 아직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않았다


사이버펑크 소설의 대가이자 사이버스페이스매트릭스라는 신조어를 만든 윌리엄 깁슨의 말에서 미래대신 인공지능을 대입한 문장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국가나 기업, 그렇지 못한 국가나 기업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사회와 개인에 어떤 막대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법학은 이것을 정의롭게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상과 법변화를 예측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법학의 가능성과 그 체계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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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논법과 법학방법
양천수 지음 / 박영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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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아는, 전통적인 형식논리학에서의 연역모델인 삼단논법을 법적 추론과정에 적용한 것을 ‘법적 삼단논법’이라 한다. 법적 삼단논법이라 해서 전통적인 형식논리학에서의 삼단논법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대강 법규범을 탐색하고 구체화하는 단계와 법적 분쟁의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적용하고 포섭하는 단계를 대응해보면 일단은 충분할 것이다. 법적 추론의 기본모델로서 삼단논법은 학부시절부터 법실증주의의 교리 아래 뿌리 깊게 체화되어 특별히 이 추론모델을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에 전통적인 법학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등장한 ‘법해석학’이나 ‘법적 논증이론’ 등이 법적 삼단논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판론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소개되어 왔다. 예컨대, 단행본으로 번역돼 출간된 카우프만의 <법철학>(김영환 역)이라든지 알렉시의 <법적 논증 이론>(변종필 등 역), 노이만의 <법과 논증이론>(윤재왕 역), 젤만의 <법철학>(윤재왕 역) 등에서 모두 그와 같은 논의를 담고 있고,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저술한 책들, 이를테면 <법학방법론>(남기윤 저)이라든지 <법해석학>(양창수 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비판점 가운데 하나가 법적 삼단논법은 곧 ‘순환논법’이라는 점이다. 특히 노이만은 법적 삼단논법을 가리켜 “당연한 내용의 반복과 자의를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도식을 그려 설명하면 간단한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칭명제는 단칭명제를 근거짓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주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결론을 정해놓고 법리를 구성하는 것’을 부추길 수도 있는 모델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판결에 대해 이런 말이 왜 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인 양천수 교수님은 개별 논문에서 법적 삼단논법을 비판했다. 그래서 법적 삼단논법을 소개하는 이 책을 저술한 배경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첫째, 아무리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이 연역적 추론모델이 그 기능을 완전하게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 비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내지 토대가 되는 법적 삼단논법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강의 추론 단계를 배웠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이 책에서는 사실확정하는 과정과 법규범을 탐색하고 해석하는 과정, 그 결과 사안에 적용하는 과정을 보다 밀도 높게 소개하고 있다. 나와는 상관 없지만, 말미에 답안작성법도 소개한 걸 보면 로스쿨 교재용으로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개인적으론 법학방법의 기초이론을 소개한 챕터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역사법학’의 상징인 사비니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비니가 역사법학을 주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계적 방법론을 사용한 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방법론은 얼핏 모순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석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암튼, 누구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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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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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이 있다. 1만전 전에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지질시대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르는데, 홀로세 이후 인류가 지구 전반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인간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 아울러 지구 역사에서의 인간 중심의 관점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최초 용어 사용은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책에서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는 파울 크뤼천 박사가 2000년 한 학술회의장에서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오존층 파괴 원인을 밝힌 공로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크뤼천 박사는 인류가 초래한 심대한 변화를 자각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홀로세가 끝났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새롭게 주창한 인류세 개념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이와 같은 논쟁적인 개념을 남겨두고 크뤼천 박사는 2021년 1월 별세했다.



워낙 논쟁적인 개념이기도 하고 또 공식적으로 확정된 개념이 아니다보니, 인류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나 관점이 다양한가 하면, 방사능 낙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4년을 시작점으로 보는 견해부터 농업이 시작된 1만 년 전까지 거슬러가는 견해도 있다. 크뤼천 박사는 인류세를 언급한 최초의 출판물에서는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초점을 맞춰, 인류세가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았다. 2018년 영국과 남아공 연구팀은 재밌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즉 ‘닭 뼈’가 인류세를 증명하는 화석으로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매년 500억~600억 마리의 닭을 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따위도 인류세 지층에 뚜렷하게 남을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지금의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 광범위한 오염, 플라스틱과 비닐의 축적, 대규모 생물멸종 등은 새로운 지질시대로서 인류세를 인정할 근거가 된다.



한편, 법학분야에서는 ‘지구법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류세 개념과 언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구법학이 2001년 한 컨퍼런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인류세 논쟁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도 싶다. 지구법학 개념은 수도승이자 철학자, 문화사학자인 토마스 베리가 “지구는 새로운 법철학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 데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류세 개념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관한 것이라면, 지구법학 개념은 지구공동체를 위한 인간의 법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존재할 권리’와 ‘서식지에 대한 권리’, ‘지구 공동체가 부단히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면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습관이 있는데, 군복무 시절 뭐든 항상 부족했던 중대 환경 덕분이다. 지금도 강의실이나 행정실 등에서 나뒹구는 이면지를 모두 수거해서 메모지나 연습장 따위로 활용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재활용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자연을 위한 개인의 작은 노력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세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문제의식을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인류세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세금의 일종인가 싶었다. 지구가 인류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니 인류가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부담해야 하는 세금 말이다. 이처럼 이 개념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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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사 연구
방병선 / 경인문화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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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잔이나 접시, 병 따위의 그릇을 떠올리겠지만, 진흙으로 빚어서 높은 온도로 구워낸 기물을 총칭한다. 따라서 음식을 담는 식기나 꽃을 담는 화병뿐만 아니라 예식을 위한 예기, 부장용 장례기명 등도 두루 포함하여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신석기 시대부터 등장하는 건축용 수도관부터 시작해서 진시황 병마용, 한나라 시대의 기와, 당나라 시기에 유행한 당삼채의 다양한 진묘수, 송나라 시대의 문방구류, 명청 시대의 인형, 그밖에 악기나 종교 예물 등 다양한 오브제를 다룬다. 그야말로 “중국도자가 모델로 삼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날 유럽제 도자, 이를테면 독일의 마이센과 덴마크의 로얄코펜하겐, 영국의 웨지우드 등의 명성이 높지만, 18세기 이전에는 전세계적으로 오로지 중국의 백자였다. 그리하여 유럽은 중국 백자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본 차이나(Bone China)'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중국의 도자가 전세계적으로 CHINA라는 명칭으로 각인된 파급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한국도자사의 연구에서 중국도자사는 꼭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었고, 이것을 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토기는 물론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 청화백자에 이르기까지, 중국 도자를 모르고서는 우리 도자의 양식과 제작기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저자인 방병선 선생님은 정양모 선생님과 윤용이 선생님에 이어 떠오르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도자 연구자이다. 아무래도 내 전공분야가 아니다보니 그 이외의 연구자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출판된 도자 관련 책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볼륨을 자랑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도자는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 오브제였기 때문에 각 시대마다의 미감과 정서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중국의 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 방대한 볼륨은 단지 도자의 양식과 제작기법뿐만 아니라 중국 각 시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바탕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동남아, 이슬람, 유럽과의 도자의 교류사도 담고 있다. 워낙 방대해서 단기간에 소화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가끔 전시를 보고 온다거나, 혹은 기사에서 관련 소식이 나올 때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보는 그런 책이다.




그러고보니 문득 작년 6월 한 기사가 떠오른다. 국보 제168호였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이 국보의 지위를 잃었던 소식이었다. 이것은 몸통의 매화와 국화가 유리홍으로 표현되어 있는 병이다. 1974년 “조선 초기 드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원대 경덕진요의 초기 형태라는 지적이 받아들여지면서 결국 국보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무조건 원나라의 도자라서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고, 이런 비슷한 형태의 도자가 중국에 많이 남아 있어 희소성이 없는 탓이라고 했다. 아무튼 유리홍이란 쉽게 말해 산화동이 고온에서 환원되어 ‘붉게 착색’된 것을 말하는데, 이런 도자에 그려진 무늬를 보면 붉은색을 띤다. 유리홍이란 것도 뭔가 싶어서 이 책을 찾아봤다.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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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방법론 - 헤겔에서 포스트식민주의까지 미술사의 다양한 시각들
마이클 해트.샬럿 클롱크 지음, 전영백 외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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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는 근본적으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미술사를 단순하게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역사의 한 갈래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학문은 명확한 기본 개념과 일관된 논리를 갖춘 지식체계인데, 하나의 독립된 학문은 그 ‘대상’과 ‘방법’에서 독자성을 확보해간다. 물론, 학문체계는 확장하는 경향성을 띠기 때문에 인접 학문과는 자연스럽게 대상을, 그리고 방법론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연구하는가’를 먼저 확인할 수 있는데, 미술사는 미적 대상(aesthetic objects)과 시각적 표현(visual expression)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미술사학은 오히려 미학(aesthetics)과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넓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미술사 방법론>의 본격적인 시작은 헤겔의 <미학>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다. 참고로 미학과 미술사학을 독립된 학과로 개설한 대학교가 많지 않다는 점도 공통점이랄까.

아무튼, 이 책은 학문의 ‘대상과 방법’에서 그 다음 단계인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넓게는 ‘미적 대상과 시각적 표현’이라고 했지만, 좁게는 미술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이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마치 상품에 바코드를 찍듯이 눈으로 스치는 데 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큰 의미나 영감을 얻기도 한다. 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주체가 대상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해석은 다른 해석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미술 작품을 보는 해석 틀(frame), 즉 방법(methods)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고, 여기에는 더 큰 신뢰와 설득력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앞서 미학과 대상에서의 공통분모를 확인했다면, 지금 이 방법론에서 본격적으로 양자가 구분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미학이 미의 본질이나 미 의식, 예술 법칙에 대한 보편적인 특징을 구명한다면, 미술사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의 보는 방식을 구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미술이 근본적으로 역사적이라는 가정은 미술사에 이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며, “어떻게 한 작품이 그 본래의 맥락을 벗어난 문화적 시각을 지닌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고 말한다.

1장 서론에서 방법론이란 무엇인가를 다루었고, 2장에서는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제목 아래 일종의 미리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사가의 다양한 방법론에 비춰본다. 헤겔은 역사적 흐름을 관통하는 절대이념이 예술의 진화를 야기했다고 보고 이것의 체계화를 시도하였고, 감식적/전기적 분석자들은 헤겔주의와 정반대의 접근 방법을 취했다. 감식적/전기적 분석자들은 작품을 작가의 인성과 경험에 연관시키며 심지어 피카소의 이 작품을 설명할 때 “개인적인 사연이 개인입된 일종의 액막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법의 혁신성에 주목하는 앨프리드 바와 같은 형식주의자에게 화가 개인의 경험은 작품의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해석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상학자들에게는 둘 다 진부하거나 의미가 없다. 이들은 양식의 변화가 곧 내용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다면 이런 연구들이 무슨 소용일까.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적 미술사학자들은 사회에서 생산된 작품 안에 새겨진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다. 피카소의 이 작품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춘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페미니즘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부당함을 여성과 관련짓기도 하고, 정신분석학적 해석방법에서는 남성의 거세 공포를 주제로 다루기도 하며,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에 관심을 갖는다. 또 이런 해석방법과 연계되면서도 충돌하는 기호학적 방법론도 있다.

이러한 방법론들이 개별 목차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방법론 소개마다 비판적 평가를 두었다는 점에서 구조적 공통점이 있고, 또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라는 학자는 그의 <피카소의 이름으로>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품의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작가가 아닌 관람자들이다. 다층적인 이해를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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