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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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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저: 김혼비, 박태하 

출판사: 민음사 출판일: 2021년 2월26일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도 있었다. 집에서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강원도가 바로 옆이다. 새롭게 생긴 민자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집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2시간 정도면 된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이든 단순한 교외 나들이이든 여행의 길에서는 지방축제를 제법 만날 수 있다. 실제로 가보았던 축제는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우연하게 발견한 탓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다른 일정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몇번의 지방축제의 경험은 실망감만 안겨주었다고 해야겠다. 축제라고 하면 왠지 잘 정돈되고 뭔가 제대로 볼거리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볼거리도 별로 없고 시끄럽기만 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키치스럽다. 그렇다 보니 우연히 발견한 축제의 포스터나 안내문을 보면, 왠지 피식 웃음만 나왔다. 그런 왁자지껄한 축제보다는 양양에서 월초에 한번 열리는 ‘Beach Market’이 휠씬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쓴 김혼비, 박태하는 부부다. 국내의 축제를 직접 다녀보고서 이를 엮어 에세이로 만들었다. 흥미가 생겼다. 내가 가보았던 축제가 특히나 부실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 국내를 다니면서 이들이 괜찮다고 생각한 축제를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았다. 여러 지역의 축제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어떤 축제는 나 역시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전 처음 들은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의 감상 대부분은 내가 축제에서 느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키치스러운 분위기, 축제의 목적도 불분명한 조악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강릉 단오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가볼 생각이다. 양양에서 강릉은 1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리니까. 어쨌든 지역에서 보이고 싶어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그것이 특산물일 수도 있고, 문학작품의 배경일 수도 있고,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별로 상관없는 것들이 무리하게 엮여 있기도 하다. 


저자들도 지적했듯이 그것은 ‘지방의 소멸’이라고까지 이야기되는 현실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아서 활성화를 시켜야 된다는 절박함이랄까? 대도시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가지 정책적 고려가 있다. 그렇지만 시멘트 구조물을 여러 개 만든다고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단순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사람, 특히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정책이 시행되어야 된다. 


이야기가 본질에서 멀어졌다. 


마냥 지방축제를 키치스럽다라고 폄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들도 적어도 축제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발견했으니. 생각해보니, 나는 술을 좋아하고 축제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지짐이를 좋아한다. 그냥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취해보는 것이 왜 나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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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 꽉 막힌 삶을 바꾸는 3가지 법칙
황시투안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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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꽉 막힌 삶을 바꾸는 3가지 법칙 
저: 황시투안 역: 정은지
출판사: 미디어숲 출판일: 2021년 12월10일

해외출장을 장기간 다녀오면 시차에 고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저자도 미국에 한달에 며칠 동안은 체류를 하다가 중국으로 귀국하는데 항상 그 시차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귀국 후 바로 강연이 있어 마음을 다잡았는데 전혀 시차로 고생하지 않았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틀,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프레임을 어떻게 견고하게 가지고 있느냐가 삶아가는데 이정표가 되고 힘을 준다. 좀 오래 전에 서울대 최인철 교수가 쓴 ‘프레임’이 생각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있지만 우리가 건물의 창을 통해서만큼만 세상을 보는 것처럼, 프레임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프레임을 견고하게 갖기 위해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깨닫고 새로운 전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저자는 이를 생각의 전환, 시각의 전환, 마음의 전환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자존감이 아닐까? 내 주위에도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은 낮은 사람들이 많다. 항상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지옥을 겪는다. 

이러한 고통이 오늘날 만연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체성이 건전하게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핍을 채워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문제에서 도망가기 바쁜 것이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 지식과 능력에 매달리지만, 그것이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기존에 가졌던 생각을 전환해야만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해야만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두려움이 가득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찬가지로 사랑도 있다는 긍정적인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하며 거기서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사고와 가치관을 전환할 수 있다. 분노사회를 쓴 정지우는 이렇게 썼다.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와 자기 자신을 재관계화하는 것은… 증오, 나르시시즘,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될 때 가능하다”고. 

당신의 삶이 주어진 현실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서 전환될 수 있는 세계라는 인식, 의도는 그 자체로 진정한 삶으로의 전환이라고 부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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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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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백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저: 박창진

출판사: 메디치 출판일: 2019년 2월18일 


‘땅콩회항’ 2014년 발생한 갑질사건이다. 이 웃지못할 사건으로 인해서 대한항공에 대한 수많은 조롱 그리고 전세계적인 웃음거리를 샀다. 다른 나라에서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없어서, 우리 말 그대로 사용된다는 ‘재벌’. 재벌은 어떤 존재인가? 간단하게 생각해본다면 이들은 사업가적 기질을 가졌던 사람도 적산을 인수해서 대기업을 일으켰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이들은 권위주의적 정치권력과의 결탁을 통해서 그 덩치를 키워갔다. 그 과정에서 성장의 과실을 어느 정도 보통 사람들도 나누어 가졌지만, 이들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차지한 부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러한 괴물을 만든 것은 역사적 배경도 있을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권력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었다. 


박창진 사무장은 이 웃지못할 갑질사건으로 자신의 삶이 철저하게 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충실하게 자기 맡은 일을 했다. 평가도 나쁘지 않았고, 승진도 거듭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한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대한항공을 단순한 일자리로만 생각하지 않았을 터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 있더라도, 환멸감은 들었더라도 참고 넘어갔다. 우리 대부분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처럼. 


그가 쓴 오늘날 세계적인 항공사라는 대한항공의 모습은 내가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이라면 참기 힘들 정도였다. 오너가의 일원이라고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재벌가의 모습을 보면, 이 회사를 그나마 그렇게까지 유지한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구성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비교한다면, 이미 오너가 경영권을 포기한 아시아나 항공도 얼마나 엉망이었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본 모습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으로 그가 이 사건으로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산재 후에 그가 회사로 복귀했을 때 내부적으로 그에게 가한 압박과 냉대를 읽어보면, 보통 사람은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생존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조리를 알면서도 참고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박창진 사무장도 그런 무기력한 사람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버린 그 사건으로 전혀 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부조리를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지금 그는 대한항공을 떠났다. 그렇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는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 사람이 사람으로써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마땅히 우리 모두가 깨달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이다. 문득,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꼭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말하고 싶다. 


박창진 사무장의 앞으로의 건승을 진심으로 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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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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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 한동일

출판사: 흐름출판 출판일: 2021930

 

한동일 신부가 쓴 라틴어 수업을 읽었던 것이 2017년이니 참으로 시간이 빨리도 지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읽었던 그의 에세이가 기억에 남아서, 이번에 출간한믿는 인간에 대하여도 펼쳐 들었다. 믿음에 대한 책이라. 생각해보면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는 대화의 주제로 하지 말라는 오래 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만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실 종교,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민감하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평행선, 유신론자 사이에서의 종교적 갈등.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어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어떠한 양보도 없기 때문이다. 국교도 없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이 곳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중동에서는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실제로는 그렇게 엄격한 무신론자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종의 범신론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이 자본주의적 속성에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일까? 사찰이든 교회에 가든 나는 현세기복적 태도를 보인다. 말하자면, 사찰에 가서 절하고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종교는 어쩌면 운을 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타로카드로 운세를 보는 그 정도일까?

 

사실 이러한 무례한 태도는 종교가 일치감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도, 의학도, 정치도종교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더욱더 적어지는 것 같다. 세속주의는 성공한 것인가? 그러나 종교적 극단주의의 형태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슬람에서 행해지는 일부 극단주의자의 테러를 보면 알 수 있고, 탈레반에 넘어간 아프가니스탄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조리한 상황을 접할 때마다, 당연하게 질문한다. 신은 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용인하는가? 우리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의인화된 신은 실제와 달라서일까? 신은 관조하되 관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신에게서 믿음에서 어떤 것을 찾아야 될 것인가? 단순히 현세의 문제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고, 그래서 우리 자신이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되는 것일까?

 

오늘날 종교가 외면받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의 원천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보다는 이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믿음이라는 핑계로 우리와 나를 나눈다. 자신만이 정의를 독점했다는 오만함을 내보인다. 적어도 현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원래 예수가 이야기했던 가르침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신앙에 신실한 회사 후배가 생각났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함으로써 믿음을 충만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종의 압박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코로나 시기로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물었다고 한다. 교회에 나가서 예식에 충실한 것이 전부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깊게 침잠된다면 내밀하게 된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종교가 가야 되는 방향의 일부를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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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독 -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현정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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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중독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人は,なぜ他人を許せないのか?

저: 나카노 노부코 역: 김현정

출판사: 시크릿하우스 출판일: 2021년 5월10일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악플과 비난을 생각해보라. 비난을 받아 마땅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도 무심코 경솔하게 SNS에 올린 글 하나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전에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일방향의 매체만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실시간에 가깝게 화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지만 양방향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각종 플랫폼을 통한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많은 기회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분노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익명성에 기댄 일탈행동일까? 아니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성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저자는 일본인이 처한 자연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섬나라의 특성과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공동체라는 집단에 순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성향은 비단 일본인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져 타자에 대한 적대감 혹은 거리감을 형성한다.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속한 집단이 무조건 옳다는 비뚤어진 정의감을 양산한다. 설령 집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라도 동조압력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상생적인 결론보다는 극한의 대립을 일삼는 일들. 이 배경에는 집단을 형성하고 자신만이 정의를 독점했다는 편협한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고민하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 종교라든지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구조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진 우리 자신 말이다. 


결국, 자유를 쟁취한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정체성의 혼란,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도피처는 집단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날 정의중독이니 하는 개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결과가 아닐까? 


저자의 조언처럼 우리는 메타인지, 자기 자신을 계속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일관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대립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병렬적 사고방식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정의중독이라는 현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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