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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보이지
않는 도시
저: 임우진
출판사: 을유문화사 출판일: 2022년 6월25일
거의 3년만에 도쿄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4박5일의 짧지 않은 일정에서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까지의 비행시간까지 합친다면 한 권의 책은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최근에 몇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중에서는 건축가 임우진의 ‘보이지
않는 도시’가 있었다. 나는 건축가들이 쓴 몇 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들의 훌륭한 글쓰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공간의 인문학적 접근과 해석에서 큰 통찰력을 얻었다.
건축사 승요상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와 같은 에세이는 조용하게 내 마음 속에 침잠되어 스며든다. 건축가
유현준의 책은 인문학적 관점의 건축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의 미래’,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책에서 나는 공급자 위주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주거공간과 차량 이동 위주로 만들어진 신도시, 재개발 지역의 삭막함이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치과의사에서 늦은 나이에 건축을 공부해서 성공적인 건축가가 된 정태종 교수도
생각났다. 문득, 나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매력이 무엇일지
좀 생각해봤다. 건축이라는 것이 단순히 건물과 주택, 각종
사회적 기반시설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학. 이것을 기초로 하여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건축가는
이제는 학문의 파편화와 전문화로 사라진 르네상스형 지식인이 아닐까?
우리가 공간을 대하는 관점과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의 철학을 본다면 어떨까? 정차선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은 한국인의 성격과 국민성 때문일까? 한국인은 서구에 비해서 열등한가? 정교하게 고려된 정지신호기의 위치는 운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정차선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면? 건조하지만 서구의 신호체계는 운전자의 신뢰에 정차선을 지키도록 기대하지 않는다. 정차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자신을
비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회 의사당과 공동묘지의 모습도 그들과 우리는 낯설고 다르다. 파리를 가보기는 했지만, 공동묘지에 접한 거주지를 방문한 적이 없어서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공동묘지와 접한 단독주택들을 본 적도 많다. 왠지 국내에서는 공동묘지는 을씨년스럽다. 일본의 조용한 분위기의
공동묘지가 굳이 어떤 혐오감을 주지는 않았다. 조용한 추모의 분위기,
그런데 프랑스의 공동묘지는 공원처럼 밝고 화사하다. 죽음은 멀리 해야 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그렇게 생각할 수 않을까?
브랜드 아파트 단지라는 자신들의 차별화된 영역을 만드는 사람들, 부동산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한국의 도시는 삭막하기만 하다. 가끔
나는 우리가 타자와의 차별화를 위해서 왜 그렇게 노력하는가 생각해봤다. 그것은 아마도 왜곡된 근대화와
한국전쟁의 여파가 아니었을까? 기존의 전근대적 신분사회의 체계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따라서 이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물질적인 것만 남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회식이나 접대를 할 때, 방을
선호한다. 그것을 우리가 가진 공간에 대한 인식과 연계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신발을 벗고 같이 앉는 별개의 공간. 그 공간을
같이 사용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가족이 아니면 쉽사리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확 트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다가 마지막에는 노래방에 가서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방이라는
공간은 그런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한편으로는 공간주도권에 대한 인식,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 혹은 입장에 따라서 공간주도권은 달라진다는 것. 사회
구심적 혹은 사회 원심적인 공간의 창출도 간단하게 어떤 의자를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공간의
목적에 따라서 적절한 공간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눈에 띄는 사실 중에 하나였다. 동네의 큰
평상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마주 앉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구심적 공간이다. 그러나 대합실과 공항은 원심적 힘이 작용하는 배치가 이뤄진다.
전통가옥의 배치에 있어서도 다른 시각을 제안한다. 온돌의 탁월한 기능에 대해서만 강조되었지,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단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연친화적인 건축이라고 우리는 자화자찬을 하지만, 전통가옥은 철저하게 신분제를 바탕으로 함께 거주하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분리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밖과의
교감은 단절된 자신들의 만의 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서구에서 본다면,
건축의 자폐성을 논할 정도가 될 수 있다는 데에서는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건축가 임우진이 말한 것처럼, 이
책에서 그는 우리와 그들의 단순한 비교를 통해서 우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간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서구와는 매우 다르다. 잘 살펴보면, 그들이 설계한 도시의 모습에서 우리가 본받을 점도 있고,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배워야 될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결과 뒤에 꽃을 심고 도시공간을 아름답게 만든 프랑스의 사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점이다.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라는 건축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주택을 계획하면서 그들을 닭장 같은 삭막한 공간으로 내모는 대신에 반쪽 집이라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는 신선했다. 공공주택을 제공하되, 차후에
입주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나머지 비워진 반쪽을 스스로 채울 수 있다. 즉, 건축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의 성취감, 목적. 그러한 것들은 이들 빈자의 입주민의 자활능력을 향상시켰고
그들의 삶을 향상시켰다.
시간이 된다면, 건축가 임우진의 ‘보이지 않는 도시’를 꼭 읽기를 바란다.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깊게 당신을 사유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