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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두려움을 먹이십시오. 믿음은 굶주릴 겁니다.
믿음을 먹이십시오. 두려움은 말라 비틀어질 겁니다."
험난하게 살아가는 세상,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여기에 당신을 위한 좋은 해답이 있다.
바로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당신이 당신 자신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져 세포분열로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모태에서부터 계획하셔서 창조하신 완전한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하는 딱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께 내 삶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힘들다고 어렵다고 할 때 그 때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좋은데 공허가 찾아온다? 그러면 그 공허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무려 스물 한 번이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성경의 전반을 읽어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구약에서도 전쟁을 앞둔 왕들이 여호와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이루는 구원을 보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맡겼다고 이야기하신다.
우리에게 삶의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 그 두려움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사랑에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의 생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온전히 신뢰할 만한 분이신 창조주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책 속에서>
*두려움은 나란히 붙어 있는 옆공간까지 차지해 물건을 팔려는 욕심많은 장사꾼과 비슷합니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서는 큰 자리를 차지하려 듭니다.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행복해 하는 이가 있던가요? 명쾌한 판단, 자신감, 자비로움과 무서워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아직도 뜨거운지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가장 자주 내리신 분부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직접 말씀하신 명령문이 125차례 나오는데 그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라', '무서워 하지 말라',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안심하라'는 가르침이 21번 나옵니다. 다음으로 흔히 등장하는 명령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고작 8번에 불과합니다. 빈도만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는 두려움의 문제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신 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그 무엇보다도 빈번하게 당부하신 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공포를 확인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관심을 가져주길 갈망하고 상사의 인정에 목말라 합니다. 가끔은 스스로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외부에서 끌어오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이룬 어마어마한 일들에 견주어 자신의 삶을 보는 탓에 기껏해야 난쟁이나라 백성 정도의 점수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긍정적 강화'에 대단히 익숙하지만 중국에서는 형편이 다릅니다. 특히 '온전하지 못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해서 사실상 내다버리다시피 한 이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넘치는 창조주께서 지으셨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교사들을 포함해서 모두 엉엉 울고만 것입니다. 이만저만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처럼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툭하면 넘어지고 거꾸러지기 쉬운 죽마나 지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두려움은 이처럼 사나운 이빨을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더 강력한 집게를 가지고 계십니다.
두려움을 처음 지적하시면서 곧바로 그 어금니를 뽑아버리셨습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주님이 '안심'이라는 말과 '죄 사함'이라는 표현을 한 문장에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죄의 문제가 해결될 때 우리는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외면하며, 주님의 은총을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인생을 말합니다.
*이 약속에 마음을 붙들어 매고 단단히 매듭을 지으십시오.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요일3:20)" 아십니다.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그 느낌을 몰아내 버리십시오. 감정은 용서에 끼어들 권한이 없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자아비판과 자기 회의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당한 염려가 아니라 거룩한 임재를 지속적으로 망각한 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꾸짖으십니다. 파괴적인 근심은 미래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며, 믿음 없이 불확실성에 맞서고, 주님이라는 변수를 삶의 방정식에 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도전의 해법을 찾습니다.
*모두 여덟 단계입니다. 우선 기도하십시오(Prayer), 이제 느긋해지십시오(Easy), 행동하십시오(Act), 걱정 목록을 만드십시오(Compile), 근심의 범주를 정해보십시오(Evaluate), 오늘에 초점을 맞추십시오(Focus), 힘을 모아 근심과 싸울 연합군을 풀어놓으십시오(Unleash),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시오(Let God be enough). 이 여덟 개의 영문 머리글자를 모으면 P-E-A-C-E-F-U-L, 우리 말로는 평안하다는 뜻이 됩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삶 가운데서 맞닥뜨리는 모든 위험에서 자녀들을 지켜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생명의 근원으로 데려갈 수는 있습니다.
아이들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닙니다. 몹시 어려운 선택이 뒤따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부모의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주님은 그야 말로 정확한 시점에, 비할 데 없이 멋진 방식으로 그 아이를 돌려 주실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무릎에 가만히 앉아서 핸들에 손을 올려놓는 연습을 말합니다. 주님은 속도를 조절하고 위험한 굽이를 능숙하게 돌아서 탈 없이 목적지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할일이라곤 하나님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요청하는 것 뿐입니다. 기도는 이처럼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기도가 그리스도를 무장시켜서 가장 깊은 두려움을 꿰뚫어보며 단숨에 제압하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십시오. 각자 자신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저마다의 괴물들과 싸우십시오. 마음에 착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골칫덩어리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히브리서 11장 35~37절은 힘들고 괴로운 측면을 부각시킵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기대와 달리 선하게 사는 이들도 폭력적인 상황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겁에 질려 살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험악하고 잔인한 세상을 사는 자녀들에게 간결하지만 분명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시지 않는다 할 지라도,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빌1:29)"까지 주신다 할지라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허투루 고난을 허락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하십니다. 주님은 한없이 베푸시는 분입니다. 위대한 공급자입니다. 모든 축복의 원천입니다. 끝없이 너그러우시며 한없이 의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큰 소리로 되풀이해 가며 외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걸 아낌없이 나눠주시므로, 물질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세상과 작별합시다. 부활의 소망이 마음 구석구석까지 흥건히 스며들게 합시다. 무덤을 바라보는 관점을 분명히 합시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히2:15)"데서 벗어납시다.
*여러분도 익숙해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혼자 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세상 만물이 다 변해도 주님의 임재는 한결같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요14:26)" 하실 성령님이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닥쳐올 일들과 친구가 되십시오.
*그렇게 상황이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비상탈출과 환경적인 변화, 세계적인 박해를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재난 속에서도 용감하게 상황에 맞설 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 하십니다.
*진정한 용기는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승리라는 두 가지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악취를 풍깁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런 건 아닙니다. 내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말하길 좋아합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풀리게 되어 있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면 아직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지."
*가장 정확한 그리스도의 진면목. "해쓱하게 질린 갈릴리 사람이 아니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만큼 높고 위대하며 맹렬한 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6절 말씀처럼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였습니다. 흠없는 다이아몬드, 상처입지 않은 장미, 절대음감으로 부르는 노래, 완벽하게 리듬이 맞아 떨어지는 시와도 같습니다.
*"그건 네가 더 자랐기 때문이란다, 꼬마야."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고요?"
"난 그대로야. 하지만 네가 한 해 한 해 자랄수록 내가 더 커보일거야."
-나니아 연대기, 아슬란과 막내 루시의 대화 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주님의 모습도 더 커집니다. 그분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겁니다. 독생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차원이 보입니다. 과거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측면과 성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님의 순전함과 권능, 독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