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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전공어로 중국어를 배웠지만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는 별반 알고 있는 내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사회주의 노선을 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빨갱이'에 대한 혐오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관련정보를 얻기가 좀 힘들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내 손으로 직접 선택했는데도 '중국어'라는 말에서 상당히 낯선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거리상으로도 더 멀고 더 낯설어야만 할 유럽 쪽 언어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 말이다. 아주 가깝고, 아주 오래 알고 지냈으면서도 여전히 실루엣만 잡히는 나라, 중국. 이중톈은 그의 신작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에서 우리가 그간 모르고 지내왔던 중국,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입담좋게 풀어놓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중국인을 알려면 중국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한다'고 선언한 다음, 뒤이은 본문에서 아홉 가지의 크고도 친숙한 맥락을 잡아 중국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각각 음식, 의복, 체면...등으로 나뉘는 이 단락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어느 쪽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다만 요즘의 우리에게는 중국의 증권시장, 떠오르는 중국경제, 혹은 중국역사같은 부분이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각 장 속에서 그는 중국의 고사, 또는 주변에서 보아온 동시대의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예를 들어가며 각각의 주제를 풀어가고 있다. 주로 '~는 어떻고, 따라서 ~~~는 이렇다.'는 결론을 내어주는 서술법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는 대체로 이러하다.'는 식의 예시형 서술법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책을 읽고 있는 우리가 머리 속에서 읽은 내용을 가지고 제 깜냥대로의 결론을 낼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또한, 예를 들어주면서도 어느 한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중국어 속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라든가 홍루몽, 아큐정전 등의 중국문학에서 보이는 중국인의 성향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예를 들어주기 때문에 읽으면서 지루한 부분이 없었다. 실제로 중국어를 배운 입장으로서, 아직껏 왜 '미안합니다'가 '對不起(뚜에이 부 치/대불기)'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것이 중국인들의 체면을 존중하는 성향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 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단순하게 '왜 같은 한자어권인데 이렇게 쓰는 말이 다를까'하며 혼자 투덜거리기만 했었는데 말이다.
그 밖에, 각주가 세세히 달려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형식을 갖춰가며 참고문헌의 제목과 페이지 수까지 명기한 주석은 아니지만, 읽는 도중에 문화가 다른 우리가 잘 모를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각 장 뒷쪽에 해당 내용에 대한 꼼꼼한 주석을 달아주었다. 기왕이면 어느 책을 읽어야 (예를 들어, 사기면 사기, 춘추면 춘추...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내용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지, 출처까지 명기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중국문화와 중국인에 대한 입문서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살짝 비껴간 얘기지만, 가끔 주석을 책 맨 뒤에 몰아놓는 출판사도 있는데 그런 방식은 독자 입장에서 상당히 피곤하다. 읽는 도중에 책 뒤를 왔다갔다해야 하기 때문에 독서의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각 페이지 아래쪽이 아니더라도 각 장의 마지막에 주석을 보기좋게 조르륵 달아놓는 것은 출판사의 편의와 독자의 편의가 어느 정도 절충될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이 방식을 택한 '은행나무' 출판사의 센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드라마틱한 앎의 충격이 내 뒤통수를 후려칠거야' 하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중국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갖고 있는 정보가 일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알긴 알았으되, 몰랐으면서도 알던 내용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막연히 멀고 어렵게만 느꼈던 중국인인데, 역시 그네들도 사람이고 또 같은 동양권이다보니 생각하는 것이 우리와 비슷하다. 납득도 쉽게 갔을 뿐더러, 우리가 보기에 어색해보이는 부분도 저자의 세세한 설명에 따라 맥을 짚어가다보면 어느 샌가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다 풀려있었다. 현지인이, 그것도 그가 가진 높은 학식으로 고금의 예를 들어가며 조근조근 쉽게 이야기해주는 중국인 이야기. 게다가 한정된 페이지에 몰아넣으려는 생각 없이 넉넉하게 페이지를 써서 500쪽을 넘기는 포만감있는 양이다. (물론 이 페이지로 중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정도라면 중국문화에 대한 입문서로 잡을 수 있는 맞춤한 인문교양서적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내린 평가에 의지해서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께는 감히 추천한다는 한 마디를 꼭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