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젊음에게 - 우리가 가져야 할 일과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
구본형 지음 / 청림출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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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취직이 결정된 날, 아버지에게서 들은 첫 마디는 "생각보다 버티기 어려울 거다. 꾹 참고 해라."였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을 채운 오늘,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공부할 때 실수가 있었으면 내 학점에서 깎이고 말지만, 일에서의 잦은 실수는 내가 아닌 남이 피해를 본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조절하는 게 참 어렵다는 것...항상 덜렁대고 시야도 짧고 관심분야 외에는 굳이 다른 집단을 찾아가서 융화되려고 노력을 해 본 적도 없는 터라 첫 달에도, 또 지금에도 나는 엄청나게 쓴 고생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까지 고생하느니 지금 몰아서 고생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버티고 있지만 가끔 누군가가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난히 힘들었던 날, 사수가 불러내어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주면서 툭 두드려주고 가는 그런 두드림 말이다. 
  구본형의 『세월이 젊음에게』는 갑자기 무거워진 어깨에 자세를 추스리기 바쁜 새내기 사회인들에게, 또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해주는 그러한 토닥거림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문학 마냥 전해지는 멘토링이 아버지의 사랑을 담아 책장 사이사이에 녹아들어간 책,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없던 말,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고뭉치 딱지가 붙어버린 탓에 직장 선배들 어느 한 사람에게도 직접 물어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이 책 한 권에서 오롯이 만날 수 있었다. 

  책의 내용 자체는 우리가 흔히 들어서 알고 있는 우화라든가 짧은 에피소드를 인용한 부분이 많아서 언뜻 보기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직장생활을 잘 하기 위한 구체적인 팁이라기보다는 약간 막연한 느낌이 드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어떤 큰 팁을 바라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마 실망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막 입사를 해서 갈피를 못잡고 헤매고 있는 사람이나 이렇다 할 멘토를 아직 찾지 못해서 캄캄한 터널을 헤매는 기분으로 매일매일의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에게라면 이 책이 건네는 짧은 조언들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막연하고, 또 당장 써먹을 데 없는 조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체화시키면 그 상태로 10년, 20년을 보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일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밥줄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어떤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것을 선으로 두고 후로 두어야 하는가 하는 점은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시간을 들여 생각을 해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관련 일화와 같이 계속 들려주며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올바른 개인만의 가치관을 미리 만들어두기를 권한다. 대충대충 살아갈 작정으로 직장에 들어온 것이 아닌 이상, 구본형 씨의 그러한 이야기들은 신출내기들이 일정에 쫓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들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트여준다. 
  서문을 읽어보니 취직을 하게 된 당신의 딸을 위해 쓴 이 책이 남의 집 딸 어깨도 두드려주게 될 것이라는 것은...아마 알고 계셨을게다. (폭발적인 인세를 슬쩍 생각해 보셨다고 하니 말이다.) 비록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직접적이고도 놀라운 일들이 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알게 모르게 작은 파문을 준다. 그 파문이 점점 크게 자라나 그 호수를 크게 출렁이게 하느냐, 작은 파문 하나로 스러지게 되느냐는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뻔한 이야기라고 단정짓지 말고 마음을 열고 읽어라.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더라도, 미친 척 하고 한 번 시도는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상적인' 이야기가 계속 우리 앞에 제시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가장 원칙적이고 올바르며 권장할 만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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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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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전공어로 중국어를 배웠지만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는 별반 알고 있는 내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사회주의 노선을 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빨갱이'에 대한 혐오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관련정보를 얻기가 좀 힘들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내 손으로 직접 선택했는데도 '중국어'라는 말에서 상당히 낯선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거리상으로도 더 멀고 더 낯설어야만 할 유럽 쪽 언어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 말이다. 아주 가깝고, 아주 오래 알고 지냈으면서도 여전히 실루엣만 잡히는 나라, 중국. 이중톈은 그의 신작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에서 우리가 그간 모르고 지내왔던 중국,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입담좋게 풀어놓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중국인을 알려면 중국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한다'고 선언한 다음, 뒤이은 본문에서 아홉 가지의 크고도 친숙한 맥락을 잡아 중국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각각 음식, 의복, 체면...등으로 나뉘는 이 단락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어느 쪽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다만 요즘의 우리에게는 중국의 증권시장, 떠오르는 중국경제, 혹은 중국역사같은 부분이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각 장 속에서 그는 중국의 고사,  또는 주변에서 보아온 동시대의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예를 들어가며 각각의 주제를 풀어가고 있다. 주로 '~는 어떻고, 따라서 ~~~는 이렇다.'는 결론을 내어주는 서술법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는 대체로 이러하다.'는 식의 예시형 서술법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책을 읽고 있는 우리가 머리 속에서 읽은 내용을 가지고 제 깜냥대로의 결론을 낼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또한, 예를 들어주면서도 어느 한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중국어 속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라든가 홍루몽, 아큐정전 등의 중국문학에서 보이는 중국인의 성향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예를 들어주기 때문에 읽으면서 지루한 부분이 없었다. 실제로 중국어를 배운 입장으로서, 아직껏 왜 '미안합니다'가 '對不起(뚜에이 부 치/대불기)'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것이 중국인들의 체면을 존중하는 성향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 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단순하게 '왜 같은 한자어권인데 이렇게 쓰는 말이 다를까'하며 혼자 투덜거리기만 했었는데 말이다.

  그 밖에, 각주가 세세히 달려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형식을 갖춰가며 참고문헌의 제목과 페이지 수까지 명기한 주석은 아니지만, 읽는 도중에 문화가 다른 우리가 잘 모를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각 장 뒷쪽에 해당 내용에 대한 꼼꼼한 주석을 달아주었다. 기왕이면 어느 책을 읽어야 (예를 들어, 사기면 사기, 춘추면 춘추...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내용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지, 출처까지 명기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중국문화와 중국인에 대한 입문서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살짝 비껴간 얘기지만, 가끔 주석을 책 맨 뒤에 몰아놓는 출판사도 있는데 그런 방식은 독자 입장에서 상당히 피곤하다. 읽는 도중에 책 뒤를 왔다갔다해야 하기 때문에 독서의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각 페이지 아래쪽이 아니더라도 각 장의 마지막에 주석을 보기좋게 조르륵 달아놓는 것은 출판사의 편의와 독자의 편의가 어느 정도 절충될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이 방식을 택한 '은행나무' 출판사의 센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드라마틱한 앎의 충격이 내 뒤통수를 후려칠거야' 하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중국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갖고 있는 정보가 일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알긴 알았으되, 몰랐으면서도 알던 내용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막연히 멀고 어렵게만 느꼈던 중국인인데, 역시 그네들도 사람이고 또 같은 동양권이다보니 생각하는 것이 우리와 비슷하다. 납득도 쉽게 갔을 뿐더러, 우리가 보기에 어색해보이는 부분도 저자의 세세한 설명에 따라 맥을 짚어가다보면 어느 샌가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다 풀려있었다. 현지인이, 그것도 그가 가진 높은 학식으로 고금의 예를 들어가며 조근조근 쉽게 이야기해주는 중국인 이야기. 게다가 한정된 페이지에 몰아넣으려는 생각 없이 넉넉하게 페이지를 써서 500쪽을 넘기는 포만감있는 양이다. (물론 이 페이지로 중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정도라면 중국문화에 대한 입문서로 잡을 수 있는 맞춤한 인문교양서적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내린 평가에 의지해서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께는 감히 추천한다는 한 마디를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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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의 심리학 - 감정적 협박을 이기는 심리의 기술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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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베풀면서도 마음이 불편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연인에게, 부모님에게, 친한 친구에게 무언가를 해주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고 한 구석이 찜찜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잔 포워드의 이 책을 온 마음을 다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를 잃고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말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여자친구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고야 마는 남자, 부모님의 한숨 한 번에 결국 당장 신청하려고 했던 영어학원을 뒤로 하고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게 되는 직장인 맏딸, 친구의 우는 소리에 수업 대출까지 해주면서도 나중에는 레포트까지 도와주고야 마는 착한 학생.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음씨가 착한 점? 정 많고 주변 사람을 잘 아낀다는 점? 모두 틀렸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모두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잔 포워드는 이 '협박의 심리학'에서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심리적 협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지금껏 '협박'이라고 하면 흉기를 들고 무언가 실질적인 (주로 경제적, 물질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범죄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포워드는 그것 외에도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협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점을 'FOG'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때 FOG는 각각 두려움(fear), 의무감(obigation), 죄책감(guilt)을 뜻한다. 심리적으로 협박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이 세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상대방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약간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면 좀 더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이도 이 개념을 놓고 생각해보면 아버지 심봉사에 의한 심리적 협박의 피해자다. 아버지가 덥썩 절에 공양하겠다고 약속한 공양미 3백석을 걱정하며 쉬는 한숨소리를 듣고 청이가 느꼈을 감정이 FOG에서 그리 멀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무감,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두려움, 아버지의 마음을 불편하게 놔두어 불효를 했다는 죄책감. 이 세 가지 감정으로 인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고 해석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시각인 걸까. 물론 이 이야기는 포워드가 직접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상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케이스를 다루기에도 벅차서 머나먼 한국 땅의 전래동화까지 수집할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리적 협박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심리적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이를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고 있는 것 뿐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짐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포워드는 이 책에서 이러한 협박자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면서 각각의 협박자들이 주로 쓰는 말을 예시로 실어놨는데, 이 사람들이 쓰는 말투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주장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그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대가를 제시한다든가, ("그 따위로 행동하면 이달 말에 있을 인사고과에서 좋은 결과 얻기는 힘들거야."), 상대방의 양심이나 심리적 부담을 자극하고 ("그와 결혼하도록 허락해주시지 않는다면 전 죽어버리겠어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대한 좋은 댓가를 항상 제시한다. ("이번 논문을 좀 도와주면 다음 번 교수임용 때 좋은 일이 있을걸세")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이들이 상대방의 주장을 한 독립된 개체의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그 타당성을 멸절하기 위해 상대방의 뜻을 일부러 왜곡한다든가, 심한 인신공격을 통해 상대방을 위축시키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새삼 내 주변 사람들 중 내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러한 심리적 협박자라는 점을 알게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자는 이렇게 심리적 협박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협박자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협박자들이 그러한 부당한 행위를 반복하는지, 왜 피해자들은 뻔히 알면서도 그 협박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각 부분 별로 대여섯 가지의 큰 케이스가 소개되므로 자신이 어디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물론, 이러한 협박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는지를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다. 두리뭉실한 이야기보다도, 직접 와닿는 명쾌한 전략 다섯가지가 실려있으니 그 부분을 참고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반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책의 전반부만 읽게 되더라도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피해자인지 아니면 협박자인지- 파악이 가능하므로,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 보통 '휘둘리는' 관계에 갇힌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만 하다면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있어서는 오직 시간만이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나마 마음이 약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법에 서툰 사람들이라면 포워드가 서술한 다섯 가지 심리전략이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변의 베테랑 협박자들이 떠올랐다. 그 동안 남한테 많이 주면서도 왜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왜 외로웠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그게 사실 대등한 관계에서 주고받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입맛이 좀 썼다. 그렇지만서도, 딸이 어떤 재정계획을 가지고 있든 무조건 이것저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플랜을 세울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달라고 조르는 것만 계산을 해보면 십일조가 아니라 사일조에 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협박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도 나처럼 어서 이 동앗줄을 잡고 그 호랑이 입에서 벗어나라고 권하고 싶다. 욕심쟁이 어머니에게 '앞으로는 어림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모든 딸과 아들들에게, 애인의 욕심 때문에 매일 카드명세서를 정리해야 하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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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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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토론도서에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선정되었다. 기실, 나는 주변에서 와와 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올리는 책은 당장 읽지 않는 편이라 코엘료의 그 유명하다는 '연금술사'도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작가의 책은 항상 주목을 받는 것 같아서 나중에 붐이 좀 가라앉거든 찬찬히 읽어보자, 읽고 내 생각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 선정도서가 이렇게 정해진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코엘료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어찌어찌 도서관에서 빌려오긴 했지만 마치 한 시간 당겨진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것마냥 마음이 허둥거려 첫 책장을 넘기는 게 힘이 드는 바람에 모임 전날 밀린 내용을 한 번에 몰아 읽고 토론자리에 나갔더랬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한 화자의 일관된 서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형식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아테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수정 없이 묶어놓은 형태인 이 소설은 그런 형식 덕분에 그녀의 진짜 모습을 쉬이 파악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아이가 1000 피스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듯,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서술방식이 우리가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선입견의 한계'를 어느 정도 와해시켜줄 수 있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의 그녀의 위치가 워낙 독보적인 만큼, 이 책이 한 화자만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였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와 같은, 혹은 그와 반대인 선입견을 갖기 쉬웠을 것 같은데 코엘료는 이 한계를 독특한 '인터뷰 형식'을 통해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그녀가 가질 법한 신비감-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그 느낌-을 나도 어느 정도나마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술방식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테나라는 인물의 성격이었다. 사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자리에서 나는 이 책을 소독용 크레졸 희석액에 비유했는데, 이는 내가 아테나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성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까지 자신처럼 물들여놓는 그녀가 꼭 소독액처럼 보였다. 그녀는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도자같기도 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운동가와도 같았으며, 동시에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갖고 있을 법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완벽성의 현현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성의 완성, 사랑의 전달, 그로 인한 자아의 완성을 그녀 생의 목표로 삼고 생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걸었다. 스스로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스스럼없이 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기에, 내가 만나고 또 책 안에서 읽은 사람들 중에는 아테나가 가장 소설적인-100% 픽션에 가까운-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앤드리아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는 책 속에서 아테나에 대한 험담만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랬다기 보다는,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이미 다다른 아테나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위협을 느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험담이었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그런 (정신적, 사회적) 위치까지 도달하고 싶어한다는 욕망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아테나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오히려 앤드리아가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나는 너무 순수하다. 순수한 나머지 미처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컨트롤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아마 그녀 마음 속에서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에 대한 생각이 있던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혼녀이기 때문에 영성체를 할 수 없음에 느꼈던 분노나 자신의 출생 때문에 언제나 느꼈던 불안정감은 항상 갖고있었을지언정, 질투, 특정 상대에 대한 열등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초조한 조바심같은 것을 느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녀 마음 속에서의 비교대상은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최고의 경지일 뿐이었고 항상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중간의 실패도 실패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그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실패가 실패로 느껴질 때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혹은 남들과 비교해서 더 뒤쳐졌다고 생각될 때인 법인데, 그녀에게는 길고 긴 남은 생이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인 어머니적인 '사랑'을 구체화시킨 아들 비오렐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남들과 어떤 성과를 비교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때문에 너무 깨끗하다. (사실 더러워질 필요가 없다.) 누구와 꼭 부대끼기 보다는 그냥 저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완벽한 나머지 마치 환영같기까지 한 사람을 앞에 내세워서 코엘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책의 제목에도 쓰인 '마녀', 실제로는 중세 시대의 앞서가는 여성 현자들이었다는 그 '마녀'라는 이미지를 아테나에게 덧씌워놓은 작가가 실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아테나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내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든가, 완벽성 등등-을 추구하라고 슬쩍 종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아테나가 가고 있는 길을 가고싶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책 속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대목 중 '21세기를 사는 22세기의 여자'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사실 이렇게 묘사될 만큼 너무나 독보적으로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배짱이 없으면 안되는 법인데, 나는 아직 그녀만큼 당당하게 한 보 한 보를 디딜 만한 배짱도 담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흉내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의지의 표상처럼은 난 살 수 없다. 가장 겁없어야 할 스물 여섯에, 나는 생쥐처럼 주변 바스락 소리에 움찔대며 산다. 
  다수가 가면서 자연스레 정해진 길을 벗어나 이유없이 다들 잘 가려하지 않았던 길목에 굳이 들어서는 사람에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 사람의 성공 여부에, 그 사람의 생각에, 그 사람의 성격에 각각 여유없이 빠듯하게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것 봐, 혼자 튀는 짓 하더니 내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때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주의가 보편성을 획득한 이 시점에, 사람들은 이상스레 겁이 많아져서 자발적으로 '가던 길'만 가려고 한다. 그리고 '승산 있는' 일만 하고 싶어한다. 어떤 의미에서의 하향평준화다. 그 평준화의 잣대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들이대기 시작했다. 파시즘의 시작이다. 내 주변의 잠재적인 파쇼를 물리치고 어떻게 그녀같이 그 길을 걷는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코엘료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든, 이건 어느 정도는 위험한 책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지금까지 믿고 살아왔던 '내 인생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길 은연중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테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것은 선택하고 말고를 떠나 달갑지 않아도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직시하고싶지 않았던 모습, 내 안의 판도라의 상자를 엿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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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 정도전 암살 미스터리
이재운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을 읽은 적이 별로 없어서 이번 '나는 고백한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읽은 '삼국지'라든가 '초한지'가 내 역사소설편력의 전부인 상황에서, 근 15년 만에 처음 접하는 역사물인 만큼,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과는 다른 신선한 즐거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조선조 초기를 다룬 작품이 그렇게 많지않은 만큼, 진부한 구석도 크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자면, 신선하긴 신선하였으되, 그에 걸맞게 독자를 쥐었다 풀어놓는 저자의 능수능란함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정도전의 장자인 정진의 서술로 이어지는 이 소설에는 우리가 역사서를 통해 알고 있는 정도전, 태종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모습을 예상 외의 것으로 뒤집어놓는 반전이 있다. 이런 '뒤통수 치는 맛'이 이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 자체도 (사실 ~~했음을) '나는 고백한다'인 정도이니까. 하지만 그 반전까지 우리를 끌고가는 데 있어 저자의 서술방식이 그렇게 매력적인 길잡이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반전이 진짜 '반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설 전반부 대부분을 상황설명에 할애했는데,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이 '상황설명' 부분에 독자로 하여금 글에 빠져들 수 있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맛이 없었다. 그냥 시종일관 약간 풀어진 상태로 서술이 진행되어서 막상 이방원의 입으로 듣는 '대반전'에서도 '아...그게 그랬던 거였어?' 정도의 감흥만 느끼고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악으로 따지면 시종일관 피아니시모나 피아노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종결부에서 그나마 메조포르테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전/후반부 균형이 좀 안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또, 문장 하나하나에 대한 큰 고민이나 여러 번에 걸친 퇴고 없이 펜 가는 대로 슬슬 쓴 것 같다는 느낌도 솔직히 들었다.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지금 이 글보다는 훨씬 좋은 글이 나왔을 것 같은데, 작가분께 무슨 일이 있어서 급히 쓰고 원고를 넘기신겐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허술하다. 뭔가 뻥 뚫린 기분이다. 책은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행간이 한 180%~200% 정도로 보일 만큼 넓어서 보통 소설책 정도의 행간으로 다시 수정하면 200쪽 남짓 나올 것 같다. 이런 짧은 분량에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하나를 제대로 담는다는 게 어렵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좀 분량을 늘려서라도 차근차근, 펜 끝에 좀 더 힘을 실어서 써줬으면 이렇게 읽고 나서 입이 씁쓸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 점이 너무 아쉽다. 모처럼 읽었는데, 읽고난 다음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도 이렇게 쓸 만할 것 같은 소재를 가지고!

  그 밖에, 전체적인 인물묘사가 다 밋밋한 정도에 그친 것도 심심한 내용에 일조를 한 것 같다. 분명 책 속의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너무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화자인 정진은 시종일관 분노만 하다가 마지막에 약간 어이없게 마음을 돌리고, 정도전은 정도전답게 '그 사람이 말할 법한' 이야기를 하다가 목숨을 내놓고, 이성계는 어쩌다보니 몇 번 출연도 못하고 뒷방으로 밀려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가장 입체적인 사람이 이방원인데, 이 사람은 차라리 우리가 알고 있는 호랑이 태종으로 놔뒀더라면 나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글 속에서의 이방원에는 우리가 여러 사극을 통해 갖고 있던 기존의 환상-카리스마의 집약체라는 인상과는 거리가 먼, 어쩐지 우유부단한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 권력욕은 또 가지고 있고 우직해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상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 중에 매력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게 글의 분량에 따른 묘사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글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그 발상만큼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그 발상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고, 사건 자체는 큰 것인데도 글 속에 서술된 스케일이 좀 작은 편이라 '한 때의 해프닝'이라는 느낌을 없잖아 받게 한 것이 아쉬우며 전체적인 서술 방식의 헐렁함 때문에 좋은 소재를 잘 못살려냈다는 느낌이 드는 점이 매우 아깝다.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나 본인이 읽고싶어하면 나서서 뜯어말리지는 않을, 딱 그런 정도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심심파적으로 읽을 만한, 역사 배경의 대중소설'이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해낼 수 있는 문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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