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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 정도전 암살 미스터리
이재운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을 읽은 적이 별로 없어서 이번 '나는 고백한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읽은 '삼국지'라든가 '초한지'가 내 역사소설편력의 전부인 상황에서, 근 15년 만에 처음 접하는 역사물인 만큼,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과는 다른 신선한 즐거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조선조 초기를 다룬 작품이 그렇게 많지않은 만큼, 진부한 구석도 크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자면, 신선하긴 신선하였으되, 그에 걸맞게 독자를 쥐었다 풀어놓는 저자의 능수능란함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정도전의 장자인 정진의 서술로 이어지는 이 소설에는 우리가 역사서를 통해 알고 있는 정도전, 태종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모습을 예상 외의 것으로 뒤집어놓는 반전이 있다. 이런 '뒤통수 치는 맛'이 이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 자체도 (사실 ~~했음을) '나는 고백한다'인 정도이니까. 하지만 그 반전까지 우리를 끌고가는 데 있어 저자의 서술방식이 그렇게 매력적인 길잡이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반전이 진짜 '반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설 전반부 대부분을 상황설명에 할애했는데,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이 '상황설명' 부분에 독자로 하여금 글에 빠져들 수 있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맛이 없었다. 그냥 시종일관 약간 풀어진 상태로 서술이 진행되어서 막상 이방원의 입으로 듣는 '대반전'에서도 '아...그게 그랬던 거였어?' 정도의 감흥만 느끼고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악으로 따지면 시종일관 피아니시모나 피아노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종결부에서 그나마 메조포르테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전/후반부 균형이 좀 안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또, 문장 하나하나에 대한 큰 고민이나 여러 번에 걸친 퇴고 없이 펜 가는 대로 슬슬 쓴 것 같다는 느낌도 솔직히 들었다.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지금 이 글보다는 훨씬 좋은 글이 나왔을 것 같은데, 작가분께 무슨 일이 있어서 급히 쓰고 원고를 넘기신겐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허술하다. 뭔가 뻥 뚫린 기분이다. 책은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행간이 한 180%~200% 정도로 보일 만큼 넓어서 보통 소설책 정도의 행간으로 다시 수정하면 200쪽 남짓 나올 것 같다. 이런 짧은 분량에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하나를 제대로 담는다는 게 어렵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좀 분량을 늘려서라도 차근차근, 펜 끝에 좀 더 힘을 실어서 써줬으면 이렇게 읽고 나서 입이 씁쓸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 점이 너무 아쉽다. 모처럼 읽었는데, 읽고난 다음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도 이렇게 쓸 만할 것 같은 소재를 가지고!
그 밖에, 전체적인 인물묘사가 다 밋밋한 정도에 그친 것도 심심한 내용에 일조를 한 것 같다. 분명 책 속의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너무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화자인 정진은 시종일관 분노만 하다가 마지막에 약간 어이없게 마음을 돌리고, 정도전은 정도전답게 '그 사람이 말할 법한' 이야기를 하다가 목숨을 내놓고, 이성계는 어쩌다보니 몇 번 출연도 못하고 뒷방으로 밀려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가장 입체적인 사람이 이방원인데, 이 사람은 차라리 우리가 알고 있는 호랑이 태종으로 놔뒀더라면 나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글 속에서의 이방원에는 우리가 여러 사극을 통해 갖고 있던 기존의 환상-카리스마의 집약체라는 인상과는 거리가 먼, 어쩐지 우유부단한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 권력욕은 또 가지고 있고 우직해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상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 중에 매력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게 글의 분량에 따른 묘사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글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그 발상만큼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그 발상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고, 사건 자체는 큰 것인데도 글 속에 서술된 스케일이 좀 작은 편이라 '한 때의 해프닝'이라는 느낌을 없잖아 받게 한 것이 아쉬우며 전체적인 서술 방식의 헐렁함 때문에 좋은 소재를 잘 못살려냈다는 느낌이 드는 점이 매우 아깝다.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나 본인이 읽고싶어하면 나서서 뜯어말리지는 않을, 딱 그런 정도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심심파적으로 읽을 만한, 역사 배경의 대중소설'이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해낼 수 있는 문장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