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의 심리학 - 감정적 협박을 이기는 심리의 기술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남에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베풀면서도 마음이 불편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연인에게, 부모님에게, 친한 친구에게 무언가를 해주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고 한 구석이 찜찜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잔 포워드의 이 책을 온 마음을 다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를 잃고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말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여자친구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고야 마는 남자, 부모님의 한숨 한 번에 결국 당장 신청하려고 했던 영어학원을 뒤로 하고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게 되는 직장인 맏딸, 친구의 우는 소리에 수업 대출까지 해주면서도 나중에는 레포트까지 도와주고야 마는 착한 학생.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음씨가 착한 점? 정 많고 주변 사람을 잘 아낀다는 점? 모두 틀렸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모두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잔 포워드는 이 '협박의 심리학'에서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심리적 협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지금껏 '협박'이라고 하면 흉기를 들고 무언가 실질적인 (주로 경제적, 물질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범죄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포워드는 그것 외에도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협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점을 'FOG'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때 FOG는 각각 두려움(fear), 의무감(obigation), 죄책감(guilt)을 뜻한다. 심리적으로 협박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이 세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상대방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약간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면 좀 더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이도 이 개념을 놓고 생각해보면 아버지 심봉사에 의한 심리적 협박의 피해자다. 아버지가 덥썩 절에 공양하겠다고 약속한 공양미 3백석을 걱정하며 쉬는 한숨소리를 듣고 청이가 느꼈을 감정이 FOG에서 그리 멀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무감,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두려움, 아버지의 마음을 불편하게 놔두어 불효를 했다는 죄책감. 이 세 가지 감정으로 인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고 해석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시각인 걸까. 물론 이 이야기는 포워드가 직접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상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케이스를 다루기에도 벅차서 머나먼 한국 땅의 전래동화까지 수집할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리적 협박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심리적 협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이를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고 있는 것 뿐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짐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포워드는 이 책에서 이러한 협박자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면서 각각의 협박자들이 주로 쓰는 말을 예시로 실어놨는데, 이 사람들이 쓰는 말투의 공통점은 상대방의 주장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그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대가를 제시한다든가, ("그 따위로 행동하면 이달 말에 있을 인사고과에서 좋은 결과 얻기는 힘들거야."), 상대방의 양심이나 심리적 부담을 자극하고 ("그와 결혼하도록 허락해주시지 않는다면 전 죽어버리겠어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대한 좋은 댓가를 항상 제시한다. ("이번 논문을 좀 도와주면 다음 번 교수임용 때 좋은 일이 있을걸세")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이들이 상대방의 주장을 한 독립된 개체의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그 타당성을 멸절하기 위해 상대방의 뜻을 일부러 왜곡한다든가, 심한 인신공격을 통해 상대방을 위축시키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새삼 내 주변 사람들 중 내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러한 심리적 협박자라는 점을 알게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자는 이렇게 심리적 협박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협박자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협박자들이 그러한 부당한 행위를 반복하는지, 왜 피해자들은 뻔히 알면서도 그 협박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각 부분 별로 대여섯 가지의 큰 케이스가 소개되므로 자신이 어디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물론, 이러한 협박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는지를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다. 두리뭉실한 이야기보다도, 직접 와닿는 명쾌한 전략 다섯가지가 실려있으니 그 부분을 참고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반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책의 전반부만 읽게 되더라도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피해자인지 아니면 협박자인지- 파악이 가능하므로,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 보통 '휘둘리는' 관계에 갇힌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만 하다면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있어서는 오직 시간만이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나마 마음이 약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법에 서툰 사람들이라면 포워드가 서술한 다섯 가지 심리전략이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변의 베테랑 협박자들이 떠올랐다. 그 동안 남한테 많이 주면서도 왜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왜 외로웠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그게 사실 대등한 관계에서 주고받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입맛이 좀 썼다. 그렇지만서도, 딸이 어떤 재정계획을 가지고 있든 무조건 이것저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플랜을 세울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달라고 조르는 것만 계산을 해보면 십일조가 아니라 사일조에 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협박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도 나처럼 어서 이 동앗줄을 잡고 그 호랑이 입에서 벗어나라고 권하고 싶다. 욕심쟁이 어머니에게 '앞으로는 어림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모든 딸과 아들들에게, 애인의 욕심 때문에 매일 카드명세서를 정리해야 하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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