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이적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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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름다움은 황홀한 촉감을 가진다. 


깊고 처연한 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리하여 망각의 숲에서 다시 만나 


제대로 작별하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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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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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순례’가 필요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억관 옮김│민음사 펴냄│2013년)



“기차역”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회사에서 역사(驛舍) 설계를 한다. ‘쓰쿠루(作)’라는 이름은 ‘만들다’라는 뜻을 가졌다. 공사를 담당한 역의 어딘가에 늘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십대 시절부터 그는 시종일관 기차역에 매료되었다. 역사가 없다면 기차는 멈출 수 없다. 기차가 플랫폼에 멈춰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 빠져나간다. 쓰쿠루는 기차역을 만드는 사람이다. 


“5”

다섯 명은 나고야의 한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만났다. 여름 봉사활동을 하다가 친해졌는데, 그들은 제각기 ‘나는 지금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친구를 만났다’고 느꼈다. 다섯이란 숫자는 완전한 공동체를 상징한다. 남자 셋, 여자 둘의 구성은 자칫 연모의 정서가 개입될 경우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순수한 우정을 더욱 견고히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균열되기 시작한다. 기차역 건축가가 되기 위해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쓰쿠루를 제외하고 나머지 넷은 나고야에 남았다. 쓰쿠루는 고독했으나 외롭지는 않았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에겐 언제나 돌아갈 공동체가 있었던 까닭이다. 조화롭고 은밀하고 친밀한 공동체. 하지만 어느 날, 쓰쿠루는 그의 공동체로부터 배제된다. 이유도 모른 채,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통보 받는다. 납득할 수 없었으므로 해명의 절차도 무의미했다. 더 이상 쓰쿠루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색채, 혹은 무채색”

쓰쿠루를 제외한 다른 넷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름에 색깔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아카마쓰(赤) 게이, 오우미(靑) 요시오, 시라네(白) 유즈키, 구로노(黑) 에리. 그들은 서로를 색깔로 불렀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하지만 쓰크루의 이름엔 색깔이 없었고, 그는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쓰쿠루는 쓰쿠루일 뿐이었다. “색채 가득한 네 명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였다. 네 명의 친구들은 각기 개성이 넘쳤고 빼어난 매력을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 아카는 수재였고, 아오는 럭비부 주장이었다. 시로는 모델 같은 외모에 피아노를 잘 쳤고, 구로는 총명하면서도 상큼한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쓰쿠루는 성적도 중상 정도였고, 이렇다 할 특징이나 개성이 없었다. 그는 늘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다.   


“죽음, 혹은 삶”

삶의 원천이었던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은 대학교 2학년 여름부터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죽음을 동경했다. 하지만 죽음을 결행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죽음의 순수성을 담보할 구체적인 수단을 찾지 못해서다. 어느 날, 쓰쿠루는 한 여인을 간절히 갈구하는 꿈을 꾼다. 그녀는 육체와 마음을 분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쓰쿠루는 그녀의 육체와 마음, 둘 중 하나만 취할 수 있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그때, 쓰쿠루는 처음으로 질투의 마음을 경험한다. 그가 죽음을 강렬히 갈망하던 일을 그만둔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물론 서른여섯의 쓰쿠루는 아직도 그때 죽지 못했음을 아쉬워하지만. 


“순례의 해” 

시로는 친구들 앞에서 종종 프란츠 리스트의 소곡집 <순례의 해>를 연주하곤 했다. 특히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의 여덟 번 째 곡 <르 말 뒤 페이>를 빼어나게 연주했다. 쓰쿠루가 친구들로부터 추방당한 직후, 그는 두 살 연하의 남자 후배 하이다를 친구로 얻는다. 하이다는 쓰쿠루의 집에서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르 말 뒤 페이>를 쓰쿠루에게 들려 준다. 이때 비로소 그는 시로가 연주한 곡의 이름을 알게 된다. <르 말 뒤 페이>, “전원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 

서른여섯의 쓰쿠루에게는 두 살 연상의 사랑스런 여인 기모토 사라가 곁에 있다. 16년 동안 간직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사라에게 들려준다. 가슴 한 켠 묻어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사라는 그 아픔과 슬픔, 원망과 노여움이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 출혈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사라는 그에게 순례를 제안한다. 자신이 왜 그들로부터 추방되었는지 묻고자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순례. 그리고 쓰쿠루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순례의 마지막 여정에서 만난 구로의 집에서, 그들은 다시 <르 말 뒤 페이>를 들으며 시로를 추억한다. 시로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쓰쿠루는 순례를 떠난 직후에야 알게 된다. 시로가 세상을 떠난 시점은 공교롭게도 쓰쿠루 자신이 죽음을 갈구하던 그때, 하이다가 자신의 곁을 지켜준 그즈음의 일이었다. <르 말 뒤 페이>는 시로에게서 하이다로, 쓰쿠루에서 구로로 이어지는 또 다른 순례의 코드로 상징된다. 


우리에게도 ‘순례’가 필요하다



쓰쿠루는 순례를 통해 오래된 혐의를 벗어버린다. 무채색이었던 자신이, 색채 가득한 친구들에겐 선망과 연모의 대상이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된다. 하지만 쓰쿠루는 기쁘지 않다. 시로의 비극적 죽음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순례의 마지막 시공간엔 ‘슬픔, 향수, 멜랑콜리’가 아프게 난무한다. 작가는 “가슴의 동통이 다시 살아났다. 격렬한 통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격렬한 통증의 기억이다”라고 부연한다. 애초 쓰쿠루의 순례를 제안하고 북돋았던 사라는 이렇게 말했었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라고. 결국 쓰쿠루는 순례의 여정을 통해, 숨겨진 생의 슬픔을 복원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격렬한 통증을 각오하는 일이다. 그것을 마주해야 이를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364쪽) 


구로는 쓰쿠루에게 말한다. 우린 살아남았다고, 살아남은 이들에겐 책무가 있으니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반드시 사라를 붙잡으라고 당부한다. 서른여섯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쓰쿠루가 밤잠 설치며 프러포즈의 날을 헤아린다. 

슬픔, 향수, 멜랑콜리에 새벽을 앓은 적이 있다면, 쓰쿠루처럼, 우리에게도 ‘순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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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속죄의 저편 -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
장 아메리 지음, 안미현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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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11월호_“독서선집”

복음과상황(link)에는 원고가 넘쳐 본문을 조금 들어냈습니다. 블로그엔 전문을 싣습니다. 




불의한 역사의 전복을 위한 시도1

<죄와 속죄의 저편>(장 아메리 지음│안미현 옮김│길 펴냄│2012년)


장 아메리의 본명은 한스 차임 마이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벨기에로 이민갔다. 이후 반나치즘을 위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43년 7월 체포되었고,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 등의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다 1945년 종전과 함께 석방되었다. 


벨기에에서 체포된 유대인 2만5000여 명 중 겨우 615명이 살아 남았으며, 아메리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한 사람 때문에, 엄혹한 수용소 생활을 견뎌 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죽고 없었다. 바로 그의 아내였다. 


1955년, 그는 자신의 이름 마이어의 철자를 뒤집어 장 아메리란 이름으로 바꿨다. 이처럼 이름을 바꾼 것은 세상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도록 강요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일례였다고 한다(199쪽, 옮긴이 해제 참조). 결국 그는 1978년 “자유죽음”2으로 세상을 떠났다.   



감히 견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사람


고통을 사변적으로 해석하거나 위로하는 것만큼 위태로운 것도 없다. 또한 그 고통에 대한 기억을 충분히 극복하지 않은 채 수행하는 용서만큼 헛헛한 것도 없다. 아메리에 의하면, 잘못된 과거에 대한 나태하고 값싼 용서는 그 자체로 부도덕한 것이다. 이러한 아메리의 비타협적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한 고통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등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던 저자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집필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저자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솔직하다고 장담해도” 좋다고 서문에서 밝히지만, 독자들은 텍스트를 따라 읽으며 ‘충분한’ 불편함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고통이라 부를 수 없다. 감히, 아메리의 고통에 견줄 수 없는 까닭이다. 


그의 정신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완전히 홀로’ 고립되고 죄절했다. 합리적이고 분석적 사고는 곧바로 “자기파괴라는 비극적 변증법”으로 추락했다. 수용소에선 친위대의 논리가 매시간 현실로 입증되었고, 그들은 수많은 죽음을 양산했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불가능했고 언어는 그 가치를 상실했으며, 감정은 육신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했다. 지식인의 사유는 더욱 고통스런 절망으로 추락했다. 


모국어를 낯설어 하며, 유대적 전통을 따르지도 않고, 히브리의 신을 믿지도 않는 그는, 나치스에 의해 ‘유대인’으로 강제된 정체성으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웠다. 인종적 통념은 그 자체로 폭력이었으며,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건”인 동시에 “근원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 자체가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공포였다. 특히 생물학적 육체가 허물어질 때, 정신은 그 공포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내 몸의 경계는 내 자아의 경계이기도 하다. 피부는 외부 세계에 대해 나를 보호한다. 내가 신뢰를 가지려면 내 피부의 표면에서 내가 느끼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첫 번째 구타와 함께 세상에 대한 이 같은 신뢰가 무너진다. 내가 세상에서 신체적으로는 반대하지만, 경계로서의 내 피부의 표면에 접촉하지 않는 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은 그 첫 번째 구타로 내게 자신의 육체성을 강요한다. 그는 내게 접촉함으로써 나를 파멸시킨다. 그것은 강간, 곧 두 당사자 중 한 사람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와 같은 것이다.(71쪽)


2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에세이를 쓰면서도, 아메리는 그 경험을 “한 인간이 내면에 간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병리적이고 객관적인 흔적을 입증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고문은 그 속에서 소멸되지 않은 채 타오”른다. 고문의 경험은 소멸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절멸의 수치심”으로 세상을 낯설어 한다. 


고문에 시달렸던 사람은 이 세상을 더 이상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 절멸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 첫 번째 구타에서, 그러나 전체 범위에서는 결국 고문 속에서 무너진 세계에 관한 신뢰는 다시 얻어지지 않는다. 이웃을 적대자로 경험했다는 것은 고문당한 사람 속에 경악으로 굳어진 채 남아 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넘어 희망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를 바라볼 수 없다.(91쪽)


값싼 용서 너머 원한의 수사가 필요한 시대



1945년 종전 이후,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은 1950년에 시작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력화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에 걸쳐 아우슈비츠 재판이 열렸지만, 대부분의 전범들은 명령에 따른 복종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되거나 최소한의 처벌만 받았다. 그리고 아메리는 1966년 “여전히 낯설게 남아 있는 것 속으로 힘들게 더듬어 나가는 긴” 작업을 거쳐 이 에세이들을 썼다. 저자로 하여금 20여 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이 고통스런 작업을 수행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네 번째 에세이 <원한>에서, 우리는 그 이해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아메리는 ‘나태하고 값싼 용서’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고, 보다 나은 공동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평화의 합창에 화음을 맞출 수가 없다”. 심지어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용서와 망각은 부도덕”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나는 내 가해자와 공범이 되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그 부정 속에서 내게 자신들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나는 내면화 과정에서 그들과 나 사이에 놓여 있는 시체 더미를 치울 수 없고, 정반대로 역사적 실천의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현실화함으로써, 더 분명히 말하면 그것을 해결을 통해서만 화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42쪽) 


‘나태하고 값싼 용서’는 정의를 거스른다. 역사는 그 병리적 양태로 반복하고, 또다른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며 절멸의 수치심을 양산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역사도 비틀거리며 지금까지 왔다. 가해자의 후손은 그렇게 다시 권력을 거머쥐고 세상을 호령한다.3 아메리처럼 “자유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무고한 이들의 상흔은 오늘만큼 더 깊어진 채 비극의 서사를 이어간다. 



  1. 이 책의 부제는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이다. [본문으로]
  2. 장 아메리의 책은 두 권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이 책보다 먼저 번역된 <자유죽음>(산책자, 2010)은 자살의 문제를 다룬다. 그에게 자살은 “모든 삶의 충동, 살아 있는 존재의 끈질긴 자기보존 충동에 맞서” 인간 실존이 인간에게 보장하는 “자유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행하는 행위이다. 물론 이런 철학적 당위에 앞서, 그의 삶을 관통했던 고통스런 경험에서 비롯한 실존적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결코 타자에 의해 이해될 수 없는 고통의 문제 앞에, 살아야만 한다는 맹목적 삶의 논리 자체는 비인간적 속박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길로서 ‘자유죽음’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본문으로]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받는 어떤 목사는 가해자의 죄값은 차치한 채 “80년 광주”의 학살 피해자들에게 먼저 용서하라고 권면하였다. 성서의 오독은 되풀이되는 비극적 역사의 명분으로 차용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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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나갈 무렵, 출판사에서 다시 일하기로 결심했을 즈음부터 책 읽기는 호흡의 패턴을 잃었다. 



책은 희망이자 절망이었고, 삶의 일탈이자 권태였다. 



뜨겁던 여름의 쇠락은 가을에 사무쳤고, 난 숨가쁘게 달리면서도 그 서글픔이 살뜰하여 자주 울었다. 



그리고 겨울에 이르렀다. 유난히 소담스런 책들이 나를 맞는다. 



미카미 엔은 책으로 얽힌 인연의 미스터리로 유혹하고, 이서희는 관능의 문장으로 나를 매혹하여 사로잡는다. 



손택의 청춘은 열정을 다스리는 파토스를 선사하고, 김두식의 단단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은 길 너머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다다른 나의 밤엔 김연수의 노란 불빛 서사가 기다린다. 



책이 다시 삶의 호흡이 될 조짐이다. 예사롭지 않은 겨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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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다 -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
수전 손택 지음, 데이비드 리프 엮음, 김선형 옮김 / 이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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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름의 거금을 북펀드에 투자한 이유는, 손택의 일기 3부작이 모두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절대 펀드 수익금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아니할 수 없지 않다). 3부작의 첫 번째로 손택의 파토스는 이 시절 형성되었을 것이다. 많이 팔려서 꼭 3부작까지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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