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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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했던 그리움을, 이제 '타자'에게 허락하자고
[서평]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은 어느날 무심히 올려본 말간 밤하늘에 둥그렇게 뜬 달을 보았다. 어떤 날은 보름달이고, 어떤 날은 초생달이고, 어떤 날은 구름에 뒤처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달이 보기에 '나'는 티끌 같은 존재이겠으나, 달은 '나'를 콕 집어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따뜻하고 명량한 '달의 말'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편지 같은 짧은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내게, 당신이란 존재는 언젠가 내가 읽었던 아픈 책을 같이 읽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나는 당신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이미 읽은 어떤 책은 앞으로 내가 읽을 것이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봄날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력서를 고쳐쓸 때, 나 혼자구나 생각되거나 뜻밖의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 무엇보다 나는 왜 이럴까 싶은 자책이나 겨우 여기까지? 인가 싶은 체념이 당신의 한순간에 밀려들 때, 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본문 210쪽, 작가의 말)

<외딴방>, 그리고 나의 이야기

1979년 4월 3일, 아버지는 암으로 소천(召天)하셨다.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다. 난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싫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부벼대는 것도 싫었다. 

집앞 골목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다. 난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뻤던 것 같다. '아, 무서운 아버지께 불려가 그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 친척들도 이제 우리집을 떠나겠구나' 생각했다. 주정하던 삼촌들 몰래 실실 웃기도 했던 것 같다. 훗날 지독한 가난을 만날 때마다, 거친 노동에 지친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밤새 들을 때마다, 그때 내가 버릇없이 웃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집이 벌받는 것이라고 자책했다.

아무튼 난, '두려움'이란 것을 그때 처음 만났다. 어머니의 곡소리,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힘겨워 하던 두 살 터울 형의 슬픈 얼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낯선 두려움이다. 비포장 도로를 두어 시간 달려 장지에 도달하기까지, 난 몇 번 토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기까지 그렇게 멀미를 했다. 가슴이 파도처럼 일렁일 때마다 그 막막한 슬픔을 생각했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차를 타면 언제나 잠을 서둘러 청했다.

오늘 추도예배를 드리러 천안을 오가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정 넘어 도착하여 곤히 잠든 딸 예지를 안아 옮기면서 그때의 시간들을 복기한다. 스치듯 재연되는 회색빛 골목, 우리집 담장 밑으로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난 아침마다 일어나 그 민들레에게 말을 건네곤 했다. 마치 내 딸 예지가 그러는 것처럼. 그런데,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그 민들레는 잊기로 했다. 잊기로 했던 그때의 다짐이 생각났다. 그것은 마치,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 역시,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첫째딸 예지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겪은, 내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고달팠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스무 살 언저리에 입대한 군대에서 저녁마다, 신경숙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그의 소설 <외딴방>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가을에 입대하여 이듬해 여름이 시작될 즈음, 필사를 마쳤다. 열여섯에서 스물까지 문학을 꿈꾸며 독한 가난과 속절없는 패배를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던 <외딴방>의 주인공 '나'는, 작가 신경숙이 아닌 독자인 나의 현현(顯現)으로서 유효했다. 작가는 내게, 절망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자 소명이라고 다독였다.

신경숙은 "그리움이란 멀리있는 너를 찾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너를 찾는 일이다. 너를, 너와의 추억을 샅샅이 끄집어내 내 가슴을 찢는 일이다"라고 썼다. 꿈을 품는다는 것은, 가슴을 찢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은 필사적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고통을 잊기 위해, 살기 위해 품는 꿈이 있는 법이다. 어떤 꿈은 위태롭게도, 숱한 절망과 동거한다. 통쾌한 승리는 사실, 이 세상에서 거의 만나기 힘든 로또복권의 행운에 가깝다. 

스물여섯 편의 반짝이는 위로


나는 신경숙을 통해, 내 오랜 꿈, 혹은 오랜 절망과 마주했던 것 같다. 드문드문 발표되는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걷던 길을 멈추고 서성이다 결국 주저 앉곤 했다. 그것은 마치 고해성사와도 비슷했다. 가슴속 깊이 숨겨 놓았던 내 자신을 꺼내 놓는 일이었다. 아버지 추도예배를 다녀온 날, 늦은 밤부터 신경숙의 신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단편은, 이전 소설과는 좀 다르다. 고독한 나를 토닥토닥 다독인다. 그것도 살갑게. 

걷다보면 지금보다는 지난 일들이 투명하게 되비쳐오는 때가 잦아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쉬곤 하지. 바람은 거울인지도 모르겠어. 어떻게 그걸 이겨내고 이 시간으로 오게 되었을까 싶은 일도 그냥 담담하게 떠오르곤 해.(본문 189쪽) 

스물여섯 단편들은 각기 다른 소재로 반짝인다. 간혹 똑같은 주인공이 그 뒷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스물여섯의 서사는 어쩌면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그 평범한 일상스러움 때문일까. 어떤 이야기라도, 내가 그 틈에 끼어 화자가 되고 '고양이 남자'나 'N'이나 'P'의 친구가 되는 일 즈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 양 자연스럽다. 

타자에 대한 시선은 내내 그 따뜻함을 유지한 채 말을 건넨다. 철없는 젊은 목사와 성깔있는 스님 간의 싸움 와중에도,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길고양이들에게도, 고양이들의 먹이를 앗아가는 까치들에게도, '재수생 선'에게도, 시골에서 아침마다 전화하시던 엄마에게도, 심지어 담벼락을 넘다 걸린 도둑님에게 건넨 시선마저도, 그 온기는 여전히 따습다.

신경숙은 자신과 지금껏 동행했던 독자를 '당신'이라 부르며, 이젠 오래도록 외롭던 그들의 슬픔을 달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득한 먼 옛날 들었던 '너 참 예쁘다'란 칭찬을 문득 추억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누나를 가로챈 동기 녀석의 질투를 이해하게 만들고, 밥벌이에 쫓겨 소홀했던 늙은 어머니의 외로움에 다가서는 법을 슬며시 알려 준다. 

그런가 하면,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쉴틈없이 달렸던 한 노인에게 다가온 아득한 회한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묻게 만든다. 지금 잘 살고 있냐고, 정말 그러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화가가 되고 싶은 '재수생 선'에게 고흐의 말을 빌어 이렇게 당부한다.  

네가 미래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네가 고통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한 것들은 저절로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고 쓸모 있는 것이 될 거야. 그걸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미래에 네가 그리는 그림이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게, 쓸모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본문 31쪽)

이제 타자에게 나의 그리움을 허락하자고

아버지의 기일을 맞이할 때면, 늘 오랜 죄책에 시달리며 절망을 떠올리곤 했다. 투쟁하듯 일 속에 매몰되었던 삼십 대를 지나고, 불현듯 주어진 공백 같은 시간들을 마주하며 당혹해 하고 있다. 어떤 선배가 "인생의 숙명이 죽음이듯이, 직장인의 숙명은 퇴사"라고 하였다. 숙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막다른 곳에 이른 숙명은 새로운 운명을 모색한다. 꿈은 절망과 동거한다. 다시, 또 그렇게.

그즈음, 신경숙은 나에게 타자의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난 '재수생 선'처럼, 그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긴다. 심각한 표정으로 인생의 고단함과 세상의 거대한 음모를 슬쩍슬쩍 내비치던 나의 서사들이, 그 앞에서 허물어진다. 어떤 담론에 압도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너른 품속에서 공격과 방어의 패턴을 잃고 일탈한 까닭이다. 무너진 나는, 그저 그 품에서 위로받고, 또다른 타자에게 시선을 향한다.  

타자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뜻밖에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해.(본문 20쪽)

이름도 없이, 물질적인 풍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그러나 열 손가락을 움직여 끊임없이 물질을 만들어내야 했던 그들을 이제야 내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나의 내부에 퍼뜨린 사회적 의지를 잊지 않으리. 나의 본질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이, 익명의 그들이 나의 내부의 한켠을 낳아주었음을...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주어야 함을...(<외딴방>, 419쪽)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껏 신경숙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곡조이나, 결국 작가는 같은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나'를 향했던 그리움을, 이제 '타자'에게 허락하자고. 그것이 나의 인생을, 우리의 세상을 반짝이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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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세계의 지성들이 말하는 한국 그리고 희망의 연대
안희경 지음 / 오마이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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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추동하는 '하나의 생각'

[서평]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대담, 글 안희경/오마이뉴스/2013)


내가 이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발견했을 때, 이 책은 그저 빛바랜 희망처럼 보였다. 진보의 꿈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지난 대선이었다.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선거에서, '99퍼센트의 희망'은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보수세력은 대통령과 의회를 장악했고, 그들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진보적 공약은 슬그머니 폐기된다. 대선 직후부터 노동자들은 다시 죽음의 행렬을 잇고, 강정마을의 구럼비는 부서지고 활동가들은 잡혀간다.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와 전교 1등이었던 아이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자살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주저앉아 있었다. 

무언가에 대한 가열한 희망이 패배했을 때, 그 좌절의 쓰라림은 더욱 고통스럽다. 일어서기 힘든 것은, 그만큼 상처가 깊은 까닭이다. 이명박 정권을 견디던 단 하나의 희망은 '5년 후'였는데, 이제 그 희망은 기약 마저 잃었다. 그토록 강렬히 열망하던 우리의 희망은 이렇게 속절없이 스러지고 있는데 다시 희망이라니, 허망하다. 하여 대선 직후 출간된 이 책도 그렇게 보였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촉발되어 아랍과 북아프리카 등지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 "아랍의 봄"은 전세계에 진보의 가치를 강렬히 각인시켰다. 집권세력의 부폐, 빈부격차의 심화, 청년 실업 등으로 인해 분노한 민중들은 연대하여 강력히 저항하였고 마침내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에서 승리했고 부패한 정권을 물리쳤다. 불붙은 민중의 자각은 '99퍼센트의 함성'으로, '오큐파이 운동(Occupy Movement)'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깨어나자 2012: 석학을 만나다"를 묶은 것이다. 기사가 연재될 때마다 감동과 감탄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 책에서 만난 석학들은 대부분 오큐파이 운동에 사유와 이론을 제공하는 정신적, 학문적 지도자들이었고 지지자들이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어떤 가시적 성과없이 흐지부지 되고 있다(르 몽드 리블로마티크 1월호 "오큐파이 운동이 빠진 함정" 참조). 같은 해, 한국 대선에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건 박근혜 정부가 진보 진영의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행보를 볼 때, 그리고 집권 직후 진보적 대선 공약을 폐기하는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볼 때, 오큐파이 운동은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희망 연대는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민중들의 자괴감, 그 절망의 깊이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기는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본문 12쪽, 프롤로그)

희망이란 단어를 허망하게 인식하는 나의 지친 감수성은, 문득 저자의 문장에 생기가 돋는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아니라,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진 그 마음과 문재인에게 한 표를 던진 나의 마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의 같은 마음은 바로 공동선(共同善)을 향한 갈망에 닿아 있다는 것 말이다. 더욱이 세계의 석학들은 그 해답을, 우리의 가야할 길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하였단다. 안희경은 이 지점을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인식한 나는, 이미 오마이뉴스를 통해 읽었던 이 대화록을, 다시 새롭게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은 한국인의 지평에서 민주주의, 정치, 사회, 교육, 환경생태, 여성의 문제를 질문하고, 인터뷰이(interviewee)였던 세계의 석학들은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서 지켜내던 공동선(共同善)의 가치에 대해 답변하였다. 그리고 그 두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하나의 생각이 온갖 난해한 절망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추동한다. 

세계의 석학들에게 희망을 찾다

안희경이 놈 촘스키 교수를 찾은 것은 구럼비 바위에 대한 첫 번째 발파가 있었던 지난 해 3월이었다.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되던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Don't Kill Kangjung Kurumbi"의 첫 글자를 딴 "D.K.K.K" 운동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촘스키 교수와의 대화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부터 시작하였고, 그는 "D.K.K.K"가 쓰여진 종이를 들고 마음을 함께했다. 안희경은 '신자유주의의 논리 아래 구럼비바위가 파괴되듯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오랜 시간 이어온 인간의 고유한 터전이나 생명에 대한 존엄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토로하였고, 촘스키는 신자유주의 규칙을 거부하는 오큐파이 운동을 주목하며 다수 민중의 의지를 구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강조하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촘스키의 연구실에 걸려 있던 이스라엘 소인이 찍혀 반송된 편지 한 통이었다. 팔레스타인으로 보냈지만, 그런 주소를 찾을 수 없다는 '수취인 불명' 통지가 찍혀 반송된 편지였다. 유대인 촘스키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 속에 함께 있고자 했다. 그는 2012년 10월 18일 여든다섯의 나이로 처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방문하여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본문 38쪽)

두 번째로 만난 석학은 로버트 서먼 교수였다. 그는 피의 혁명, 뜨거운 혁명은 강력해보이나 한시적이며 또다른 역동을 야기하기 때문에, 개인 내면의 혁명을 통한 비폭력적 '차가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여성이었다. 여성이야말로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가진 존재로, 군국주의적이며 산업적 탐욕에 물든 남성의 폭력적 세상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진정한 여성성은, 평화의 본성을 거스르는 '마초적 여성'과 남성적 관습에 지배당하고 길들여진 여성을 극복할 때 구현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옳은 지적이다. 

4.11 총선 직후 만난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프레임' 이론의 권위자였다. 그는 진보 진영을 향해, 도덕적 가치 속에서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보통 진보 정치인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 접근으로 정책적 우위를 점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종종 실패한다. 레이코프는 공감의 언어를, 그리고 네거티브 캠페인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디어를 장악한 보수에 맞서 진보의 언어는 더욱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진보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가 아닐까 싶다. 

자유주의적 활동을 가동시키려면 고유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거죠. 저들의 언어가 미디어를 장악했고 저들의 언어가 표준이 됐기에, 우리는 창의성을 발휘해서 우리의 언어를 개발해야 합니다.(본문 109쪽)

우리나라에 <몰입>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하이 첵센트미하이 교수와는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학생에게 자율권을 주고, 학생 스스로 배움에 책임감을 갖게 하고, 동료와 함께 팀을 이뤄 문제를 풀어가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교육 시스템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안희경은 카밀리아 발도로프학교의 예를 들어, 경쟁보다는 협력을 배우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학교의 모토인 "교육은 경주가 아니라 여정(旅程)이다"를 소개한다. 

윤리학의 거성이자 실천하는 지식인 피터 싱어 교수는 '동물의 산업화'를 호되게 비판하며, 빈곤의 문제와 좌파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다윈주의 좌파'였다. 그는 정치적인 세력으로서의 좌파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이루려는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좌파를 모색했다. 즉 공공의 이익을 향한 공리주의적 실천이었다. 

신학자이자 민중 지도자인 코넬 웨스트는 마틴 루터 킹의 뒤를 잇는 상징적 존재이다. 인종문제, 빈곤문제에 맞서 싸웠고 강력히 저항했다. 그는 가난을 신자유주의 폭거의 산물인 '현대판 노예'로 정의했다. 그는 완벽한 한국어 발음으로 '민중'이라는 단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로 불렀다. 또한 예언자적 영성을 강조했다. 불평등과 타협하지 않고 현실에 저항한 예언자적 영성은, 종교와 세상, 종교와 민주주의를 잇는 고리로서 공동선을 추구한다. 한국의 기독 교회들이 외면하는, 그래서 무기력한 교회들이 들어야 할 통찰이다.   

마지막 대화는 에코-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와 함께 한다. 시바는 인도 델리에 기반을 두고 토종 종자 보전과 생태적 환경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나는 특히 그녀와의 대화가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여성을 수동적 존재로 보는 것에 단호히 반대했다. 도리어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자연이 착취의 대상이므로 마땅히 죽는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고, 나는 훗날 나의 딸의 성장한 다음 이 문장을 주기 위해 옮겨 놓았다. 

보통의 여성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첫째, 열등하다고 느끼지 말자는 겁니다. 두 번째는 소외감을 느끼지 말자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대의 가슴이 그대의 마음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자는 것입니다.(본문 258쪽)

또한 그녀는 한국의 자랑인 '포스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은 한국의 자산을 사유화했고, 포스코의 실제 오너는 5퍼센트의 주식을 가진 워런 버핏이다. 포스코는 중국으로 철강을 수출하기 위한 넓은 육로 확보를 위해 농민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땅을 수탈했다. 경찰이 무력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공격했고 살해했다. 그곳은 원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숲과 폭포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것이다. 

저는 세계은행이나 포스코가 한국의 부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한국의 부는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이 만든 겁니다... 제가 한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겁니다. "여러분은 인도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에 기초한 번영을 얻고 싶은가요? 우리는 하나의 인류입니다. 이는 '나는 오른손의 번영을 돕기 위해 내 왼손을 자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본문 259쪽)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우리를 주목한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당시 기사로 읽던 느낌과 책으로 읽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아랍의 봄' 이후,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곧 점령할 것만 같았던 오큐파이 운동을 접하며 흥분하곤 했다. 죽음을 담보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위원을, 희망버스로 309일만에 기어코 구출하였던 감격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껏 부픈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그런 맥락 속에, 석학들의 대담은 희망의 전조로 읽혔다. 곧 다가올, 불과 며칠, 몇 달만 견뎌내면 도달할 희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희망은 결국 좌절했다. 


다시 읽은 이 대화록은 여전히 희망의 전조로서 유효하다. 도리어 세계의 석학들은, 정치적 역학구도 따위로 희망의 가능성을 가늠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의 민중들, 그들의 결기어린 희망, 그 거대한 흐름에 주목하되, 그 시작은 나의 삶의 영역에서, 나란 존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다나 시바는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임을 강조하였다.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기에, 결국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로버트 서먼은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라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또한 세계의 석학들은 한국의 역사에 주목했다. 피터 싱어는 한국의 대선 결과를 접하며 "무엇보다도 이걸 기억해주세요. 미국은 조지 W. 부시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걸 말입니다!"라고 위로했다. 희망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냐는 질문에, 촘스키는 도리어 그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을 희망의 상징으로 기억했다.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본문 42쪽)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총선이나 대선은 오히려 작은 싸움이다. '롬니에 비해 오바마는 단지 차악(次惡)일 뿐'이라는 로버트 서먼의 지적처럼, 지난 대선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더라도 어쩌면 그것은 차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동선의 가치는, 결코 한걸음에, 단숨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단호한 실천으로 시작된 한 사람의 희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실천이다. 그리고 연대하는 것이다. 2011년 10월 주코티에서 오큐파이 운동을 펼치던 시위대에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길로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유쾌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축제를 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중요한 건 축제가 열린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엇이 변화되어 있을까요?(르 몽드 리블로마티크 1월호 중에서)

자, 우리 자신이 희망의 전조임을, 이제 우리 스스로 입증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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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지음 / IVP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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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서평]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송강호 지음/IVP/2012)





한라산에서 잉태되어 해안의 용암 바위로 둘러 앉혀진, 서귀포 외진 마을 강정엔 언제부턴가 어슬어슬한 슬픔이 깃들고 있다. 이런 슬픔이 강정에겐, 제주에겐 낯선 것이 아니다.(<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본문 21쪽)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에 근거하여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였다. 그 지정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제주는 예로부터 평화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도둑, 대문, 거지' 없는 삼무(三無)정신은 바로 평화를 의미한다. 특히, 현대사 최대 비극인 4.3 항쟁의 아픔을 겪는 등 한(恨)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한 제주인들의 가슴에는 항상 평화가 자리하고 있다.("제주, 세계 평화의 섬" 홈페이지 참조. http://www.peace.jeju.kr)

'평화의 섬'이란 이름에는 역설적으로 오랜 슬픔의 한이 서려 있으며, 그런 까닭에 평화를 염원하는 절절한 희망이 반영되어 있다. 제주 4.3 항쟁의 비극적 역사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더 나아가 제주도를 동북아 지역의 평화 지대로 만들겠다는 비전도 서려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의지가 무색하게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 그리고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

해군 당국은 제주 화순항에 해군 부두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계획을 포기하고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하였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4월, 당시 강정 마을회장은 불과 87명의 주민 동의를 박수로 얻었다며 해군기지 유치를 추인했다. 이는 명백한 절차상 위법에 해당되는 것으로 향촌 자치규약에서 정한 공고일, 수시 방송 의무, 공고 내용 등을 위반한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분노한 주민들은 곧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새로운 마을회장을 선출하여, 같은 해 8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실제 강정마을에 거주하는 1,050여 명의 주민 중 725명이 참여하여 680명, 즉 94퍼센트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결의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해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의 저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강정은 격동의 땅이다. 이 책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는 국제구호단체인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였던 송강호 박사의 강정마을 투쟁기이다. 그는 르완다,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반다아체, 카슈미르, 아이트 등에서 평화 활동가로 섬기면서 평화와 화해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전쟁과 분쟁,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과 함께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열강에 맞서 약한 자들의 벗이 되어 전쟁의 참화를 막고자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교를 만들고, 고아를 위한 집을 짓고, 아이들에게 평화의 언어와 노래를 가르쳤다. 그런 그가 아체에서 제주도의 소식을 들었다. 

송강호는 아체에서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된다는 소식은, '우리나라가 정말 전쟁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희망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본문 71쪽)

하지만 송강호의 기대와는 달리,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당시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반대 투쟁의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저항 운동은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송강호는 그런 강정의 현실을 목격하며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는 고심 끝에 강정에 머물러 투쟁에 합류했고, 투쟁 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시작, 그리고 절정

ⓒ조성봉

송강호가 투쟁에 합류한 것은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였던 양윤모 씨의 영향이 컸다. 제주 태생인 그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와서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당시 두 번째 구속 수감되어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세계의 석학이자 실천하는 지식인 촘스키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그의 석방을 탄원했다(그는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세 번째로 구속되어 다시 단식 투쟁을 전개하였다). 송강호는 양윤모 감독이 기거했던 곳에 자리를 잡고, 그의 자리를 지켰다. 

행동하기 시작한 송강호는 '투사' 같았다. 단순히 양윤모 감독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훨씬 더 무모했고 저돌적이었다. 포크레인을 막아서고 점령했다. 시멘트를 부으면 그리로 뛰어들었다. 해군기지 공사를 수주한 삼성과 대림 건설의 중장비들이 사납게 몰려올 때, 그는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쇠사슬을 걸어 목에 둘렀다. 쇠사슬을 강하게 틀어쥐며 버텼고, 그의 다리를 성공회 김경일 신부가 붙잡았다. 극단의 상황에서도 그는 태연했고 평온했으며 한편으로 유쾌했다. 그러자 중장비들은 포기하고 물러섰다. 작은 승리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기쁨을 만끽했다.(본문 81-82쪽) 

정부와 해군 당국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촘스키가 지적하듯, 제주 해군기지는 다분히 미국의 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송강호는 오만한 군사주의적 만용은 처참한 전쟁 위험성만 높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만일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현행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의해서 미국의 군사적 야욕이 허용되는 셈이고 미국은 이 해군기지를 중국 견제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은 해군기지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초 강대국의 다툼에 스스로 끌려들어가 비극적인 역사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제주도는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고 4.3 항쟁 희생자들의 염원입니다.(본문 105쪽)

또한 그는, 정부의 해군기지 강행 배경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정부는 제주도에 '평화의 섬'이란 이름만 붙이고 아무런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방위산업이란 명분 아래 거대 재벌들의 상업자본을 비호하죠. 자본주의와 돈과 칼이 같이 가고 있어요. 실제로 칼은 돈을 지키고, 돈은 칼을 만들어 줘요. 현대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을 구속하는 가장 큰 양대 축이 바로 돈과 칼이고, 재벌과 군벌이라고 생각해요.(본문 88쪽)

송강호와 평화 활동가는 자신들의 안위를 제쳐두고 투쟁을 이끌었으나, 강고한 권력 앞에 그들은 무력했다. 기독교인인 송강호는 아침마다 구럼비에서 목놓아 기도했다. 펜스와 철조망으로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힌 후에는 카약을 타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수영을 해서라도 기어코 구럼비에 들어가 기도했다. 

ⓒ조성봉

2012년 4월 1일 구럼비 본발파가 진행되던 현장에서, 철조망을 넘어서다 경찰에 의해 무참히 저지되었고 곧 체포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행이 있었고, 송강호는 자신을 폭행했던 경찰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그가 체포된 4월 1일은 마침 그의 쉰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그리고 제주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4월 3일, 그는 운명처럼 구속되었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이 책은 평화의 길을 걸었던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1, 2부는 그의 평화 활동과 강정에서의 투쟁을 기록하고 있으며, 3부는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옥중서신과 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 그는 2012년 9월 28일 수감 181일 만에 직권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강정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는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3월 1일 제주 관덕정에서,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를 주도하였다. 1947년 3월 1일은 제주 4.3 항쟁이 시작된 날이고, 관덕정은 제주민의 항거가 시작된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강정마을을,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희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평화의 사람은 세상과 불화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평화의 길은 아득하다. 그러나 그 아득한 길을 걷는 이들로 인해 우리는 희망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낼 것이다. 희망은 절망 따위에 좌절하지 않는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_강우일 주교의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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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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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3년 4월호



거뭇한 어른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

[서평]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작은것이아름답다│2009)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두 분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여름방학이면 삼촌과 이모들이 계신 시골집에 갔으나, 친구들은 할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갔다. 시골집과 고향의 차이, 아마 내가 부러웠던 건 그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껜 차마 말 못할 것도 투정하며 고백할 수 있는, 어른 비슷한 부담스런 거뭇한 존재가 되어서도 기꺼이 달려가 그 품에 안길 수 ‘할부지’에 대한 동경. 나에겐 그런 ‘고향’이 없었다. 


그런 까닭일까. 난 아주 바른 사내로 자랐다. 보기 드문 예의를 갖췄고,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나의 삶에 일탈은 스무 살 넘어 어머니와 상의 없이 대학을 그만 두던 때가 처음이었다. 늘 정답에 집착했던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차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가신 길, 그리고 우리더러 품으라 하신 꿈을 마주하면서 나의 현실은 좌표를 잃고 방황했다. 간혹 질문을 던지면, 교회의 어른들은 복음은 복음대로 품되, 현실은 현실대로 살라 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혜가 아닌, 현실에 압도당한 복음, 그 난처한 위선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첫 일탈은, 학교를 그만 두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기도 멈췄다. 물론 잠시 한때였지만. 


할아버지 이현주는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는 지혜를 선사한다. 나의 일곱 살 딸의 취미가 질문이다. 한참 인내하며 답하다가도 때가 되면, ‘그만 자자’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도리어 질문하는 아이를 이렇게 칭찬한다. 


“내가 보기에 넌 참 바람직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렴. 그것이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 테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찾은 ‘대답’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묻혀 있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해.”(41-42쪽)


‘나무 58그루’를 살려 만든 작은책이다.1 숱한 생명들이 덧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쓰잘 데 없는 책들에 희생당하는 요즈음, 100퍼센트 재생지로 만든 이 책은 최고의 가치를 선사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나-너-우리’의 세 지평 위에, 아이의 질문과 할아버지의 답장으로 쓰여진 값진 지혜들이 두런두런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 아이가 되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 같은 거뭇한 어른들에게도, 곁에 두고 간직해야 ‘고향’ 같은 책이다.   






  1. 100퍼센트 재생지로 만들어 천연펄프 종이책과 비교할 때 나무 58그루를 살려 만든 책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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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은수연 지음 / 이매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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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2013년 4월호)_“독서선집”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지음│이매진│2012)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수잔 브라이슨 지음│인향│2003)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의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나는 너보다 더 깊은 고통을 가졌으므로 난 너보다 더 아프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고통이 가장 아프고,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가장 깊을 것이라고. 적어도 이 책들을 읽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은수연’은 필명이다. 실명으로 낼 것인지를 마지막까지 고민했으나 결국 필명을 선택했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수연’이란 필명은 합당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성폭력 생존자의 치유 일기다. 저자 은수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 첫 학기까지 9년간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도 친족, 아버지에 의한 성폭행이었다. 딸의 성을 잔혹한 폭력으로 유린하여 딸의 영혼마저 짓밟은 그는, 심지어 교회의 목사였다. 


수연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어느 날 나타나 엄마를 때리고 다시 합칠 것을 종용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할머니 생일 전날, 아빠는 일하는 엄마를 남겨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시골로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딸을 성폭행했다. 계획적이었고 치밀했다. 그리고 과감하고 집요했으며 잔혹했다. 그 순간부터 수연에게 더 이상 아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듬해 수연은 임신을 하고 낙태 수술을 받고, 평생 기억할 극심한 초경통을 앓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저자는 아빠에게 당한 성폭력을 지진에 비유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지탱해주는 땅바닥이 흔들리는 지진’은, 우리 안에 잠재된 불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극심한 두려움과 충격을 준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살아가는 터전이며 모든 인간관계를 처음 경험하고 배우는 땅과 같은 존재이다. 특히 아빠는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존재로, 아이에게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수연은 그런 아빠에게 배신당한다. ‘지진보다 더 큰 충격’을,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감당해야 했다. 이후 수연은 ‘어린애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트라우마를 넘어선 ‘생존자’들의 고백





트라우마는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온갖 심리학이 유행하는 요즘,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용어 ‘트라우마(trauma)’는 너무 쉽게 남용되는 흔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수잔 브라이슨의 책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를 번역한 여성주의 번역모임 ‘고픈’은 트라우마를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인격의 붕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 또는 폭력이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나 상해’라고 정의한다. 


철학자 수잔 브라이슨은 남부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서 아침 산책을 하던 중 한 남자의 습격을 받았다. 남자는 잔혹한 폭행 후에 성폭력을 가했고, 증거 인멸을 위해 여자의 발목을 잡고 골짜기 아래로 끌고가 목을 조르고 돌을 들어 이마에 내리쳤다. 천신만고 끝에 브라이슨은 살아났고 그 남자는 구속되었다. 그러나 브라이슨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트라우마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들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자신이 배우고 가르쳤던 철학에 의지하고자 했지만, 철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데카르트는 ‘변함이 없고 영원할 수 있는 지식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기초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내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서 세상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었다.  


브라이슨은 트라우마와의 처절한 싸움을 삶의 소명으로 삼았다. 바로 자기 자신을 되찾는 힘겨운 여정이었다. 그녀는 종종 패배하여 좌절했지만, 하지만 끝내 그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한다. 성폭력의 기억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의 몸과 정신에 남아 통제되지 않는 우울과 절망을 자극하고 충동한다. 따라서 브라이슨은 과거의 기억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보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통스럽지만, 생존자의 통제 범위 안에서 보다 일관된 언어로 그것을 노출시켜야 한다.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선 안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의 행동이다. 본질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행동이다.  


자신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다시 말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들을 열게 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230면)


기억하여 다시 말하기. 그리고 그 증언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공동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것. 트라우마는 그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기어코 감당할만한 것이 된다.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수잔 브라이슨과 은수연이란 존재는, 그 빛나는 성취다. 책을 쓰는 순간에도 숱한 고통에 휩싸이지만, 그 치욕스런 순간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조차 내게는 도대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치유의 길은 그처럼 고통스럽지만, 브라이슨과 은수연은 용감하게 맞선다. 트라우마를 자신의 언어로 드러내고, 과감히 표출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낸다.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선언하는 은수연과 “지금 나는 시간이 오래 흐르면 고통은 결국 상처내기를 멈춘다고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브라이슨, 복효근의 시는 그녀들을 향한 우리의 찬사이어야 한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_복효근, “상처에 대하여"


성폭력은 끔찍한 비율로 발생하는 일상적 범죄다.1 성폭력을 다루는 사회의 방식과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은 부당할 때가 많다. ‘네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조심한다면 너는 안전할거야’ 또는 ‘네가 성폭력을 당한다면, 네가 무언가 그럴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야’와 같이 피해자들의 인격을 훼손하는 모든 추론은 비겁한 남성성의 단면이며, 거짓말이고 폭력이다. 그런 까닭에, 은수연과 수잔 브라이슨의 책은 끔찍한 고통을 다루는 불편한 책이지만, 우리 곁에 남겨두어야 할 경고와 희망의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을 성폭력 피해자라 부르지만, 그들 스스로는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른다. 그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치유를 향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면서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마침 ‘올해의 여성운동가’에 은수연 씨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딸아이와 함께,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빛나는 희망을 한껏 축하할 것이다. 




  1. 여성가족부가 펴낸 <2011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성폭력 발생빈도는 한국의 경우 32.5명이었고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한다. 가장 수치가 낮은 일본(1.2명)과는 30배 넘게 차이 났고, 미국(28,6명)과 영국(24.1명), 프랑스(16.6명)보다도 높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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