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은수연 지음 / 이매진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복음과상황(2013년 4월호)_“독서선집”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지음│이매진│2012)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수잔 브라이슨 지음│인향│2003)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의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나는 너보다 더 깊은 고통을 가졌으므로 난 너보다 더 아프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고통이 가장 아프고,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가장 깊을 것이라고. 적어도 이 책들을 읽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은수연’은 필명이다. 실명으로 낼 것인지를 마지막까지 고민했으나 결국 필명을 선택했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수연’이란 필명은 합당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성폭력 생존자의 치유 일기다. 저자 은수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 첫 학기까지 9년간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도 친족, 아버지에 의한 성폭행이었다. 딸의 성을 잔혹한 폭력으로 유린하여 딸의 영혼마저 짓밟은 그는, 심지어 교회의 목사였다. 


수연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어느 날 나타나 엄마를 때리고 다시 합칠 것을 종용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할머니 생일 전날, 아빠는 일하는 엄마를 남겨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시골로 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딸을 성폭행했다. 계획적이었고 치밀했다. 그리고 과감하고 집요했으며 잔혹했다. 그 순간부터 수연에게 더 이상 아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듬해 수연은 임신을 하고 낙태 수술을 받고, 평생 기억할 극심한 초경통을 앓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저자는 아빠에게 당한 성폭력을 지진에 비유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지탱해주는 땅바닥이 흔들리는 지진’은, 우리 안에 잠재된 불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극심한 두려움과 충격을 준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살아가는 터전이며 모든 인간관계를 처음 경험하고 배우는 땅과 같은 존재이다. 특히 아빠는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존재로, 아이에게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수연은 그런 아빠에게 배신당한다. ‘지진보다 더 큰 충격’을,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감당해야 했다. 이후 수연은 ‘어린애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트라우마를 넘어선 ‘생존자’들의 고백





트라우마는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온갖 심리학이 유행하는 요즘,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용어 ‘트라우마(trauma)’는 너무 쉽게 남용되는 흔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수잔 브라이슨의 책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를 번역한 여성주의 번역모임 ‘고픈’은 트라우마를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인격의 붕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 또는 폭력이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나 상해’라고 정의한다. 


철학자 수잔 브라이슨은 남부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서 아침 산책을 하던 중 한 남자의 습격을 받았다. 남자는 잔혹한 폭행 후에 성폭력을 가했고, 증거 인멸을 위해 여자의 발목을 잡고 골짜기 아래로 끌고가 목을 조르고 돌을 들어 이마에 내리쳤다. 천신만고 끝에 브라이슨은 살아났고 그 남자는 구속되었다. 그러나 브라이슨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트라우마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들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자신이 배우고 가르쳤던 철학에 의지하고자 했지만, 철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데카르트는 ‘변함이 없고 영원할 수 있는 지식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기초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내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서 세상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었다.  


브라이슨은 트라우마와의 처절한 싸움을 삶의 소명으로 삼았다. 바로 자기 자신을 되찾는 힘겨운 여정이었다. 그녀는 종종 패배하여 좌절했지만, 하지만 끝내 그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한다. 성폭력의 기억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의 몸과 정신에 남아 통제되지 않는 우울과 절망을 자극하고 충동한다. 따라서 브라이슨은 과거의 기억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보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통스럽지만, 생존자의 통제 범위 안에서 보다 일관된 언어로 그것을 노출시켜야 한다.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선 안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의 행동이다. 본질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행동이다.  


자신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다시 말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들을 열게 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230면)


기억하여 다시 말하기. 그리고 그 증언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공동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것. 트라우마는 그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기어코 감당할만한 것이 된다.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수잔 브라이슨과 은수연이란 존재는, 그 빛나는 성취다. 책을 쓰는 순간에도 숱한 고통에 휩싸이지만, 그 치욕스런 순간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조차 내게는 도대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치유의 길은 그처럼 고통스럽지만, 브라이슨과 은수연은 용감하게 맞선다. 트라우마를 자신의 언어로 드러내고, 과감히 표출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낸다.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선언하는 은수연과 “지금 나는 시간이 오래 흐르면 고통은 결국 상처내기를 멈춘다고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브라이슨, 복효근의 시는 그녀들을 향한 우리의 찬사이어야 한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_복효근, “상처에 대하여"


성폭력은 끔찍한 비율로 발생하는 일상적 범죄다.1 성폭력을 다루는 사회의 방식과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은 부당할 때가 많다. ‘네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조심한다면 너는 안전할거야’ 또는 ‘네가 성폭력을 당한다면, 네가 무언가 그럴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야’와 같이 피해자들의 인격을 훼손하는 모든 추론은 비겁한 남성성의 단면이며, 거짓말이고 폭력이다. 그런 까닭에, 은수연과 수잔 브라이슨의 책은 끔찍한 고통을 다루는 불편한 책이지만, 우리 곁에 남겨두어야 할 경고와 희망의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을 성폭력 피해자라 부르지만, 그들 스스로는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른다. 그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치유를 향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면서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마침 ‘올해의 여성운동가’에 은수연 씨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딸아이와 함께,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빛나는 희망을 한껏 축하할 것이다. 




  1. 여성가족부가 펴낸 <2011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성폭력 발생빈도는 한국의 경우 32.5명이었고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한다. 가장 수치가 낮은 일본(1.2명)과는 30배 넘게 차이 났고, 미국(28,6명)과 영국(24.1명), 프랑스(16.6명)보다도 높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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