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포옹하는 것은 금지였다! 만질 수도 없었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 "내 자궁은 피폭됐다. 그건 무언가에 의해 박살이나 난 듯 아무것도 없게 됐다..." "새들은 마치 장님이라도 된 듯이, 아니면 미치기라도 한 듯이 유리창에 부딪쳤다...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본문 6-8쪽)
프랑스의 건축학도 출신의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의 책 <체르노빌의 봄>은,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새잎)를 인용하여 당시 체르노빌의 충격을 시각화한다. 이 책은 실화이며, 저자의 생생한 증언이다. 르파주는 2008년 4월에 체르노빌에 방문하여 2012년 11월까지 무려 4년의 작업을 거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1986년 4월, 원전 사고 이후 26년만에 잃어버린 체르노빌의 봄을 복원한 것이다.
목판과 연필, 수채화로 덧입혀진 그림은 세밀하고 정교하고 사려 깊다. 독자들은 그림에 몰입하여 어느새 르파주와 함께 체르노빌의 숲을 거닌다. 그러다 문득, 놀라 멈춘다.르파주가 그랬던 것처럼, 오염에 내가 노출된 것이 아닌지 움추리며 악몽 같은 현실과 직면하는 것이다.
황폐한 땅의 신성한 공포
르파주는 예술가 동료들(데생악퇴르 데생악퇴르/Dessin'Acteurs: 프랑스어로 ‘행동하는 데생’을 의미)과 함께 체르노빌에 갔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증언뿐만 아니라 참여자, 행동가, 투사가 되길 바랐다. 그들은 마치 레이첼 카슨의 결기와 비슷했다. 그들은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40km, 방사능에 오염된 금지 구역에서 20km 떨어진 볼로다르카란 작은 마을에서 지내며, 금지 구역을 탐사하기 시작한다. 르파주와 그의 동료는 폐허의 실상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들은 황폐화 된 땅에서 신성한 공포를 느꼈다. 금지 구역은 엄격히 통제된 땅이다. 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장갑을 끼고 발목까지 덮는 부츠를 신고 다시 비닐로 덮었다. 방사능 측정기를 휴대하고 수시로 체크하며 외부 활동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방사능에 노출된 이끼와 풀, 나뭇가지를 피했다. 땅에 앉아서도 안 되고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 버려야 했다. 땅은 물론, 지하층도 오염되어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착용한 장비는 모두 버리고 한 명씩 방사능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의 탐사는 진행되었다.
"체르노빌의 폐허에는 낭만이 아닌 인간의 죄의식이 서려있다."(본문 93쪽)
오염된 땅의 참사가 오롯이 보존된 끔찍한 현실 속에서, 금지 구역의 숲에서 르파주는 충만한 신록과 조우한다. 상상한 것일까. 르파주는 그것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환상에 압도된다는 것이다. 르파주는 현기증이 났다.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하며, 르타주는 자신의 그림 밑에 방사능 수치를 적어 놓았다. "5.50 마이크로시버트(안전 수치는 0.10 이하)". 오직 방사능 측정기만이 "이곳은 오염되었으니 떠나시오!"라고 경고했다. 레이첼 카슨의 아련한 환상이, 여기에도 아련히 놓여 있다.
볼로다르카란 마을. 그들은 처음엔 금지 구역의 숲에 가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어떤 이는 실제 나이보다 스무 살은 더 늙어보이기도 했고, 어떤 여인은 10대에서 성장이 멈춘 채 술에 절어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체르노빌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았지만, 더러는 자신들의 가혹한 운명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신앙에만 의지한 채 살았다.
르파주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차츰 마을에 적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들을 환대했다. 그곳 사람들은 늘 어깨를 들썩이며 연주하고 노래하였다. '프랑스인들의 집'은 마을 사람들이 넘나드는 즐거운 공동체가 되었다. 그리고 르파주도 그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삶을 발견한다. 체르노빌의 봄이 그처럼 건재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금지된 땅, 그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을 그곳을 그리웠을 것이다. 잃어버린,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은, 그들의 노스탤지어였다.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우리나라엔 23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6개가 가동 중이고, 2개를 더 짓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는 세계 1위이다. 숱한 사고로 말썽인 원자력 발전소도 어떻게든 더 쓰려고 한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이라는 책을 펴낸 강은주는 "23개의 핵발전소를 가진 우리나라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발전소의 수명이 다한 후에도, 동굴에 갇힌 폐기물의 먼 미래도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가. 신기술은 위험을 생산하고 자본주의는 이를 증폭시킨다"라고 경고한다.

불과 1000킬로미터 밖에서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바람의 방향만 의지한 채 국민들에겐 그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체르노빌 사고 직후 프랑스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고를 다루는 일본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정부도 그저 감추고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우린, 왜 이리도 순진하게 그것을 덜컥 믿어버리는 것일까. 잠재적 재앙을 그저 방기하는 것도 무서운 죄악과 다름 아니다. 레이첼 카슨이 인용한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해악을 깨닫지 못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이다. 지극한 슬픔은 결국 아름다움에 닿는다. 그 절절한 마음은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까닭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체르노빌은 2011년 3월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전조였을 뿐더러, 우리에게 던지는 아득한 슬픔이자 경고이다. 찬란한 봄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거대 자본과 단호히 맞섰던 레이첼 카슨, 혹은 목숨을 담보로 체르노빌에 들어가 극심한 폐허의 현장을 복원했던 르파주와 그의 동료들처럼,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