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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자유다 - 수전 손택의 작가적 양심을 담은 유고 평론집
수잔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이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수전 손택은 소설가이자 에세이 작가, 예술 평론가이다. 또한 그녀는 '열렬한 실천가'였다. 한국에 방문하여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하기도 하였고,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독를 기다리며>를 공연하였으며, '9.11' 이후 미국 정부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저항하였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받으며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탄탄한 논리를 담보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단호한 문장 속에 담아내는 그녀의 글쓰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의 제호이면서 수록된 에세이 중 하나인 "문학은 자유다"는 <타인의 고통>의 부록으로 이미 읽었고, 여러 글모음집이어서 굳이 소장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옮겨놓은 문장만 해도, 원고지 80매 가까이 된다. 결국엔 이 책도 구입해야 했다. 소장할 만한 책이다. 특히 소설가, 번역가, 독자를 비롯한 문학을 희망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손택의 입문서로 <타인의 고통>을, 그녀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으로 이 책 <문학은 자유다>를 추천하고 싶다.
손택은 2004년 12월,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2007년 발간되었고 서문을 그녀의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썼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여러 문학 평론을 모았다. 세 번째 실린 에세이 "도스또옙스끼를 사랑하다"는 나의 통념에 거세게 도전하는 질문을 던지는 오래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글이다.
도스또옙스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유대인은) 도스또옙스키가 유대인을 증오했다는 사실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사람, 능멸당하고 상처 받은 사람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이 증오에 가득차 유대인을 혐오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유대인들이 도스또옙스키에게 특히 끌리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도스또옙스키를 사랑하다, 61-62면)
이 대목에서 난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레 미제라블>에 대한 서경식 선생의 칼럼이 생각났다.
으음,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초인처럼 완강하고 성인처럼 선량한 주인공의 활약과 가난한 매춘부의 유복자로 빛나듯 사랑스런 코제트의 행복한 연애 등 요컨대 전체적으로 ‘판타지’ 같은 얘기다. 원작자인 위고 자신이 사회변혁보다 종교적 자선의식 경향이 강하고, 강고한 애국주의자이며 공화주의자였다. 원래 엥겔스는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공상에서 과학으로>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사실이 있는데,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배는 그때 시작됐다. 자유주의 혁명과 식민지주의는 그들에게 모순 없이 양립하고 있었다. 근대의 양면성이며 기만성이다.
2부 "미국의 야만성"은 손택의 여러 정치 비평을 담았으며, 저항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손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다소 다른 글과의 맥락에 상관없어 보이는 에세이 "사진에 관한 짧은 요약"이 실려 있는데, 마치 나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책인 <타인의 고통><사진에 대하여>의 '코다'라고 할 만하다.
사진은 첫째로, 보는 방식이다. 보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사진에 관한 짧은 요약, 173면)
3부 "투쟁하는 독자"는 예루살렘상, 오스카 로메로상, 독일 서적출판조합 평화상 등의 수상 연설과 나딘 고디머 등에서의 강연 원고를 담았다. 그녀의 문학이 세상을 향하여 발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 연설들을 읽으며 짐작할 수 있다. 그녀 스스로 빛나는 작가였지만, 그보다 먼저 투쟁하는 독자로서 존재했던 손택의 정체성이 잘 담겨 있다.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고, 읽으면서도 자주 멈춰야 했다. 특히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은 통째로 외우고픈 무모한 욕심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문학은 자의식이고, 회의고, 양심의 거리낌이고, 깐깐함입니다. 또한 노래고, 자발성이고, 환희입니다.(203면)
문학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열망들에 뿌리박은 실천이기 때문입니다.(203면)
작가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은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과 그릇된 정보의 공모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단순하게 만들려는 목소리에 반대하는 뉘앙스와 모순의 집입니다. 작가가 할 일은 정신적 약탈자의 말을 믿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가가 할 일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다른 주장과 파편과 경험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206면)
롤랑 바르트가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말하는 사람은 쓰는 사람과 다르고, 쓰는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와 다르다."(207-208면)
문학은 정신적 여행입니다. 과거로, 그리고 다른 나라로의 여행. 또한 문학은 더 나은 기준에 바탕한 현실의 비판입니다.(239면)
문학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경건함에 질문을 던지고 반대 진술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268면)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독서와 내성內省의 가치가 끈질기게 위협받는 요즈음, 더더욱 문학은 자유입니다.(274면)
3부의 두 번째 에세이는 문학 번역에 대한 글이다. 꼭 '문학'으로 한정 짓지 않아도 상관없다. 번역에 관한 히에로니무스와 슐라이어마허의 견해가 있다. 달리 말하면, 정확성과 충실성의 역할에 대한 오랜 논쟁이다. 손택도 그러하지만, 나도 슐라이어마허의 편에 서련다. 번역에 관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있지만, 번역가로 입문하려는 이들에게(혹은 번역에 관심있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짧은 에세이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번역의 목표를 원작자가 번역 대상 언어로 글을 쓴 것처럼 만드는 것에 두는 것은 이룰 수 없는 목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무효다."(슐라이어마허, 228면)
독서 노트를 쓰는 지금, 한국에선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하느라 소란스럽다. 종일, 거듭 밀려오는 허무와 무기력에 허덕이고 있다. 독서 노트를 쓰며, 다시 손택의 사유에 몸과 정신을 일으킨다. 우리에게, 나에게 '손택의 길'은 다시 맞이해야 할 소명이자 운명일 것이다.
저항해 보았자 부당함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진심으로 깊이 숙고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252면)
우리가 열렬히 지지해야 할 이 힘든 싸움을 넘어, 정치적 저항에 있어서는 인과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복잡하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투쟁, 모든 저항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투쟁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칩니다. 여기가 아니라면, 저기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곧.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25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