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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혁신을 위한 설득의 방법, 스토리텔링
스티븐 데닝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스토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강한 바이러스와 같은 번식력을 자랑해서가 아니다. 스토리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전체 줄기를 이루고 있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며 다양한 유형의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배경또한 무시못할 스토리의 구성 요소가 된다. 이렇게 여러가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탄생시킨다. 이야기의 탄생 과정은 여러가지 요소의 절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체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소설이 문학의 주요 장르가 된 것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생명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실은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람은 그 천성 가운데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점에 가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소설책들이 이것을 웅변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유일하게 배제되었던 분야가 있다. 바로 비즈니스 분야다. 대체로 비즈니스에서 이야기를 사용하는 법은 거의 없다. 비즈니스에서는 주로 명쾌하게 정리된 요약본이나 매뉴얼이 사용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데닝은 이러한 과거의 관행을 깨고 이야기를 과감하게 프레젠테이션에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관료조직이 그렇듯 저자가 속해 있는 세계 은행도 타성이라는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면서도 세계 은행의 관료들은 저자가 담당한 지식 경영 시스템 도입에 거세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도입한 참신한 방법론이 바로 이야기인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첫째,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친근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그들이 말을 할 줄 알게 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인 것이다. 둘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을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곧바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한 편의 드라마를 머리 속에서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통찰은 잠비야 이야기로 시작한 첫번째 프레젠테이션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 경영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성공적인 첫번째 프레젠테이션을 더욱 발전시켜서 세계은행이라는 거대 조직에 지식 경영 시스템을 서서히 이식하는 모든 과정이 이책에 상세하게 제시된다. 이것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들이 갖지 못하는 이 책만의 강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딪치는 문제들은 스토리텔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실무에 적용하는 과정에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법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얇은 금테 안경에 굳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깐깐한 관료들을 상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만만찮은 일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스토리텔링을 실무에 적용하여 변화를 거부하는 은행 관료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저자의 방식은 매우 효용성이 있어 보인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 실무에의 올바른 적용, 여기에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생명력이 어루러져 세계 은행이라는 보수적인 조직에 지식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조직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현장의 전문가들에게 매우 유익한 조언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책은 특별한 지식은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절하고 실효성있는 적용이 있다. 이것이 존재하는 책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점수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