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간혹 어떤 한 분야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영웅을 보면서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욱 더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영웅에게 라이벌이 생겼을 때이다. 라이벌의 등장은 그 영웅에게는 몹시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라이벌이 등장했을 때만큼 그 영웅의 진가가 밝히 드러나는 때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대결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단시간에 끌어모을 특급 이벤트가 되기 일쑤다.

12세기경 현재의 이스라엘을 무대로 하여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이 초특급 이벤트로 평하는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다. 바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사자왕 리처드의 대결이었다. 그 누구도 승부의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한 판이었다. 미국 언론 중에는 이들의 대결을 부시와 사담 후세인의 대결에 비유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에 아첨하기 좋아하는 자들의 견강부회일 따름이고 부시도 후세인도 그 인물 됨됨이나 지도자로서의 역량면에서 볼 때 살라딘과 리처드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만약에 무덤 속에 있는 이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코웃음을 치지 않았을까?

이렇게 균형감각을 잃은 미국 언론의 헛소리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레스턴의 균형 감각은 매우 탁월해 보인다. 그는 분명 미국 국적을 가진 저널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과 아랍측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을 똑같은 비율로 적어넣음으로써 철저하게 객관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낭만적인 옛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책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고 생각된다.

라이벌의 대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와 상황에 대한 설명, 특히 두 인물-살라딘과 리처드-에 대한 묘사에서 철저하게 지켜진 저자의 중립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왜 3차 십자군 전쟁은 성공할 수 없었는가? 십자군은 성지탈환이라는 대의를 내걸었고 아랍인들은 여기 지하드(성지 사수를 위한 전쟁)의 기치를 내걸었는데 누가 더 대의에 충실하였는가?

제임스 레스턴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을 사수한 끝에 살라딘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공성전에 능한 십자군에 맞서 눈물을 머금고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한발짝 물러서 리처드와의 일전에 대비해 지원군을 모으는 살라딘의 인내와 신중함, 그리고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전사로서의 능력과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자기 관리로 말미암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리처드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두 인물의 모습을 통하여 왜 십자군 전쟁이 성공할 수 없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많은 서구인들은 사자왕 리처드를 매우 매력적인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그를 이긴 이 아랍의 신중한 술탄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서구의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에 의해 살라딘은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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