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패로
메리 도리아 러셀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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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기대하면 실망할 거 같습니다. 종교에 대한 고찰, 이문명 간 차이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흡인력이 좋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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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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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운 중단편 소설집.
톨스토이의 글을 읽으면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죽음의 허무함과 욕심/허위에 대한 경계 같은 것들인데 이를 글로 풀어쓰는 능력이 기가 막히다.

톨스토이 하나 보고 시작한 러시아 문학의 길이, 중반에는 그를 부정했다가, 결국에는 톨스토이로 귀결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특히 내가 이 책, 문학동네판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번역의 자연스러움이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도 갖고 있는데 같은 부분을 비교해보면 단연 문학동네판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특히 <알료샤 고르쇼크>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좋은 작품을 한국어로 읽게 해주신 이항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구 점수기록원의 수기>
마지막 주인공(네흘류도프)의 편지가 아주 기가 막혔다. 너무 아름답다.


<12월의 세바스토폴>
“의사들은 절단이라는 혐오스럽지만 유익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당신은 날카롭고 구부러진 칼이 희고 건강한 몸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볼 것이다. 그리고 부상병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끔찍하고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악담을 퍼붓는 장면을 볼 것이다. 또 조수가 절단한 팔을 한쪽 구석으로 어떻게 내던지는지도 볼 것이다. 당신은 같은 방에서 들것에 실려 누워 있는 다른 부상병이 수술받는 전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육체적인 고통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기다리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는 장면을 볼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뒤흔드는 끔찍한 광경들을 볼것이다.
당신은 군악과 북소리, 펄럭이는 깃발들과 말을 탄 장군들이 으스대며 등장하는 정연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대열 속이 아니라 전쟁의 진정한 모습에서, 즉 피와 고통과 죽음 속에서 전쟁을 볼 것이다......”

미쳤다 정말.
군대 있을 때, 절도있는 행동과 짜여진 양식이 좋아서 군인을 진지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군인이 되려는 생각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세바스토폴 연작이 나중에 <전쟁과 평화>로 발전된다고 한다.


<세 죽음>
죽음 하나는 언제 나오는 건지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나무의 죽음이었다니. 결국 나무는 십자가가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캅카스의 포로>
긴박한 서술이 마치 스티븐킹 소설 보는 거 같았다. 예술성을 떠나서 순수 재미력으로만 봐도 톨스토이는 탑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다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 그것을 이렇게 쉽게 표현해내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아주 사소한 힘으로도 깨질 수 있는 도자기 같은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삶의 그런 연약함을 잘 표현했다.


<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는 1878~80년에 <고백>을 쓴 이후로 인생관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소설과 앞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바로 그런 달라진 이후의 작품이다. 동화같은 단순한 형식과 내용으로 농민같은 보통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주려고 했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런 지혜는 여전히 전달된다.


<크로이처 소나타>
이 책에서 가장 별로였던 작품이다. 너무나도 자기독백적이라 지루하다. 결혼 혐오 정서가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주갤에서 좋아할 거 같다.


<악마>
특이하게도 결말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소설인데, 둘다 죽음과 관련돼 있다. 톨스토이는 작품을 죽음으로 끝내는 걸 참 좋아한다. 아마 어릴 적부터 죽음을 많이 보면서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서가 아닐까?

몹시 자전적 소설이라고 느껴지며, 실제로 아내의 질투가 두려워 꽁꽁 감춰둔 원고가 사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평생 (육체적)욕심을 경계했는데,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마음과 행동에도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한다.
강하게 주장하는 행동에는 반대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톨스토이는 금욕을 외쳤지만 그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무도회가 끝난 뒤>
무도회라는 연극이 끝난 뒤 가면이 벗겨진 인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허위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는 허위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톨스토이의 도덕적 결벽주의가 무엇에서 시작된 건지 궁금하다.


<알료샤 고르쇼크>
짧지만 그래서 좋았고 너무 슬펐다.
이 책의 번역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열린책들 판은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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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찌냐는 고아였고 젊었으며 알료샤처럼 주인집에서 일했다. 그녀는 알료사를 불쌍히 여겼고 알료샤는 처음으로 그가, 바로 그 자신이, 즉 자기의 노동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로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사람들 사이에는 필요에 의해서만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놀라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장화를 닦거나 물건을 나르고 마차에 말을 매는 일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필요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챙겨 주고 아껴 주며, 알료샤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요리사 우스찌냐를 통해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때리는 법을 보여 줘야겠나?〉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소.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
그러더니 대령은 스웨이드 장갑을 낀 힘센 손으로 겁에 질린 병사의 얼굴을 갈겼소. 그 작고 약한 병사가 따따르인의 벌건 등을 제대로 힘껏 내리치지 않았다는 이유였소.

그러고는 미소를 띤 채 〈어떤 일이든 규범을 지켜 해야겠죠〉라고 말하고는 딸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박자를 기다렸다오.
마주르카 연주가 시작되자 대령은 한 발을 민첩하게 구르고 다른 한 발은 내뻗으며 그 크고 육중한 몸을 때로는 조용하면서도 유려하게, 또 때로는 소란스럽고도 격렬하게, 구두창을 부딪치고 발과 발을 부딪치면서 홀 주위를 움직여 나갔소.

특히 날 감동시킨 건 그의 장화였다오. 끈으로 잡아 늘인 장화였는데 좋은 송아지 가죽이었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신이었소. 끝이 뾰족하고 낡은 데다가 펑퍼짐하고 굽도 없었소. 부대의 제화공이 만든 신발이 분명했지. 〈사랑하는 딸을 사교계에 보내고 입히기 위해 자기 자신은 유행하는 구두도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든 신발을 신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펑퍼짐한 장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 거요.

〈새 막대기를 가져와!〉 그가 소리쳤소. 그러면서 돌아보다가 날 발견했다오. 그런데 그는 날 못 알아본 척하더군. 악의에 찬 얼굴을 무섭게 찌푸리더니 재빨리 몸을 돌렸소. 난 마치 내가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다가 발각된 양 창피해져서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소.

집에 가는 길 내내 내 귓가에는 고적 소리가 맴돌았고 〈형제들, 자비를 베푸시오〉 하는 말이 들렸소. 또 대령이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라고 소리 지르던 자신만만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도 웅웅거렸소

「사랑? 그날부터 사랑은 사라지기 시작했소. 여느 때처럼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생각에 잠기면 바로 광장에서 보았던 대령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요. 그러면 왠지 불편해지고 불쾌해지니 그녀와의 만남이 점차 뜸해질밖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 버렸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방향을 틀기도 하는 거요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령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안 되니 군대에서 복무할 수가 없었소. 그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그리고 군대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못했고, 그러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오.」

「고마워, 우스찌냐, 날 불쌍히 여겨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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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때리는 법을 보여 줘야겠나?〉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소.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
그러더니 대령은 스웨이드 장갑을 낀 힘센 손으로 겁에 질린 병사의 얼굴을 갈겼소. 그 작고 약한 병사가 따따르인의 벌건 등을 제대로 힘껏 내리치지 않았다는 이유였소.

그러고는 미소를 띤 채 〈어떤 일이든 규범을 지켜 해야겠죠〉라고 말하고는 딸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박자를 기다렸다오.
마주르카 연주가 시작되자 대령은 한 발을 민첩하게 구르고 다른 한 발은 내뻗으며 그 크고 육중한 몸을 때로는 조용하면서도 유려하게, 또 때로는 소란스럽고도 격렬하게, 구두창을 부딪치고 발과 발을 부딪치면서 홀 주위를 움직여 나갔소.

특히 날 감동시킨 건 그의 장화였다오. 끈으로 잡아 늘인 장화였는데 좋은 송아지 가죽이었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신이었소. 끝이 뾰족하고 낡은 데다가 펑퍼짐하고 굽도 없었소. 부대의 제화공이 만든 신발이 분명했지. 〈사랑하는 딸을 사교계에 보내고 입히기 위해 자기 자신은 유행하는 구두도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든 신발을 신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펑퍼짐한 장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 거요.

〈새 막대기를 가져와!〉 그가 소리쳤소. 그러면서 돌아보다가 날 발견했다오. 그런데 그는 날 못 알아본 척하더군. 악의에 찬 얼굴을 무섭게 찌푸리더니 재빨리 몸을 돌렸소. 난 마치 내가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다가 발각된 양 창피해져서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소.

집에 가는 길 내내 내 귓가에는 고적 소리가 맴돌았고 〈형제들, 자비를 베푸시오〉 하는 말이 들렸소. 또 대령이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라고 소리 지르던 자신만만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도 웅웅거렸소

「사랑? 그날부터 사랑은 사라지기 시작했소. 여느 때처럼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생각에 잠기면 바로 광장에서 보았던 대령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요. 그러면 왠지 불편해지고 불쾌해지니 그녀와의 만남이 점차 뜸해질밖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 버렸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방향을 틀기도 하는 거요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령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안 되니 군대에서 복무할 수가 없었소. 그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그리고 군대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못했고, 그러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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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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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작가의 이야기다. 어머니와 특히 사이가 좋은 작가는 25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는다. 힘든 시기를 겪은 뒤, 어머니가 떠오를 때마다 “h마트”라는 한인 마트에 가서 한국 식재료를 사서 한국 음식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만약 내 어머니가 25살 때쯤 돌아가신다면 나는 어땠을까? 문득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슬픔을 위로해주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아 있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친구의 슬픔을 나누고 싶다. 남의 슬픔도 나의 슬픔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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