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주톈신 지음, 전남윤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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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자신을 자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기반은 무엇인가? 주톈신은 단편 소설집 <고도>를 통해 이 해답으로 ‘기억’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보다도 더 중요한 것, 바로 이 기억에 대한 성찰은 <고도>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은 제 각각의 서사와 문제의식을 통해 이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주톈신의 성찰은 단순히 기억을 가다듬거나 기억 속으로 회귀해 머무르는 것에서 넘어서서, 기억의 맥락을 되짚어 보고 놓친 것을 찾아내며 정체성을 탐구하게 되는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먼저 <베니스의 죽음>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작품 속 화자인 ‘작가’가 베니스를 답파한 기억에서부터 진술을 시작한다. 베이후이(북회)선 철도가 지나는 어느 작은 역에서 생활해 본 기억 등으로 사소한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내용을 거쳐, ‘작가’ 자신이 글을 쓰는 장소에 따라 글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고백하며, 이 이유로 글을 쓰기 위한 최상의 환경을 갖춘 카페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정착하게 되는 카페는 어느 백화점 3층 코너에 있는, 이 소설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베니스>라는 카페이다. 소설의 내용은 이처럼 실제 장소인 베니스에 관한 작가 자신의 짧은 회고,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써나 가는지, 심지어 소설의 전개에 맞춰 구상했던 내용을 써 내려가는 장면을 소설 안에서 중계해 주기도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까닭이 드러난다. 바로 카페 베니스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바뀐 메뉴, 주인, 직원들은 ‘작가’에게 낯선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작가’는 이 공간의 변화를 이전의 기억 속 공간의 죽음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 죽음에 맞닿아 드러나는 행위는 ‘작가’가 쓰던 단편소설 속 주인공을 베니스에서 자살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세계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오래 전에 나와 소식이 끊긴 것은, 죽음이라는 낯선 길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대목은 위의 개념을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인식론 적인 사고에서 판단할 때 기억에서 잊혀지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끊어진 관계는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작품 전체의 주제과도 맞닿는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상실된 과거, 영영 돌아올 길 없는 그것들의 죽음을 그리워하며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주톈신 소설의 주요 주제 ‘기억의 성찰’이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은 다음 단편 <헝가리의 물>이다. ‘나’는 자신의 옷에 시트로넬라유 향이 베어 있던 것을 계기로, 안면이 없던 A와 냄새에 얽힌 기억에 관해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온갖 냄새들은 머리 속의 기억을 실어 나르고, ‘나’와 A는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에 중독되어 냄새를 찾아 다닌다. 이들은 기억 속의 향과 향으로 기억해내고 싶은 사람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에서부터, 역시 시트로넬라유의 냄새를 통해 그들 앞으로 불러와진 외숙모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관한 깊은 고민 속으로 빠지기도 한다.


작품 내내 기억을 찾는 일과 씨름하다 보니, 기억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 역시 나타난다. 그들에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숨겨져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 무언가가, 어느 날 꿀벌처럼 윙윙거리며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그땐 정말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소설은 ‘나’와 A가 각각의 방법으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매개를 찾는 광고를 내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난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를 만나 나눈 향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냄새를, 기억을 찾아서 헤매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대의 물결이 밀려오기 전에는 확고부동한 사물이란 예외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단지 일상의 모든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잘못되었다 라고만 느낄 뿐이다. ……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 가닥 진실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부여잡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된 기억에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장아이링)"-처럼, <헝가리의 물>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기억이라는 실체 아닌 실체를 찾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고도> 속 중편 <고도>는 20년 전의 고도와 지금 현재의 타이베이가 ‘너’의 기억 속에서 단단한 직조물처럼 얽혀 있다. ‘나’는 현상의 이면을 해부하여 알고 있는 것처럼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놓치지 않게 붙들고 20년 전 고도의 모습을 훤히 보고 있다.


소설은 ‘그때’로 시작하는 하늘, 땀과 눈물, 사람들, 나무, 카페, 여름 밤, 배경음악 등을 구체적으로 소환하여 기억의 포문을 열고 있다. 기억하고자 하는 ‘그때’가 언제의 어느 때라는 정보를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과, 당시 유행했던 대중매체- 영화, 음악, 드라마 등-를 함께 섞어내어 드러내고 있다.  ‘너’가 돌아가고 싶은 이 시간은 또한 그때 그 고도의 공간에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장소 속의 풍경이기도 하다. 성, 칭수이 거리, 훙러우, 미야노시타역, 위안산, 칭광시장 등 타이완의 실제 지명이 소설 속으로 밀려들어와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구체성을 더하게 한다. 마치 지도를 펼쳐 놓고 ‘너’가 제시한 그 추억의 공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너’가 사랑했던 A의 존재이다. A는 ‘너’의 그 모든 감정으로 매일 매일이 뒤흔들리던 아름다운 시절을 늘 함께했던 사람이다. 처음 제시되는 것은 A의 외양에 대한 서술(‘1미터 70센티의 키에, 수영 선수의 평평한 어깨와 긴 팔다리를 가졌고(…)’)이지만,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제시되는 A의 모습은 ‘너’가 은밀하게 간직해 온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녀는 산센 도로의 중양목을 닮았고, 사카모토 큐의 은은한 휘파람 소리를 닮았으며, 지나간 수많은 여름을 닮았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이 고도에 관한 은유적 실체가 A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몇 번 더 읽고 나니, 소설 전체가 오히려 고도에 관한 기억이 A로 특징지어지는 과정으로 읽혀졌다. 이처럼 소중한 A는 ‘나’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화양연화를 함께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너희 둘이서만 이곳을 찾았다. 보랏빛 꽃이 넓게 깔려 있는 땅의 끝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바다는 밝은 회색빛이었으며,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만나는 곳은 습기로 인해 흐릿하게 보였다. 너희들은 일찌감치 축축하게 젖어 버린 어깨를 기대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의 비슷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 여름날 백사장, 특히 해가 진 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무언 가에 홀린 듯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열기가 남아있는 모래사장은 너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사방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그 속에서 ‘너’는 A를 성애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을 느끼고 A의 또 다른 친구를 질투한다. (‘너는 문득 A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저 단순하게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은, 네가 너무나 사랑했던, 열다섯 살 무렵 너에게 있어 부모님이나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던 친구 A였다.’) (‘너와 A역시 영원히 헤어 지지도 말고 결혼도 하지 말자고 맹세를 했었다.’) (‘그러다 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너는 축축하고 차가운 옷이 등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심장이 아기의 꼭 쥔 주먹처럼 조여들어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 자리에 쓸쓸히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둘의 공통점은 이 섬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더 넓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는 원주민과 본성인과도 유리된 외성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부유했고, 타이완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였다. ('너는 수시로 이 도시의 어느 부분이나 구역, 거리의 풍경 같은 것들을 네가 가 본 적이 있거나 혹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다른 도시의 어딘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야지만 겨우 견뎌 낼 수가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틈만 나면 네가 이곳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시험하려 했다. 심지어 너희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떠나라고 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A는 본성인인지 외성인인지 언급되지는 않으나,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함께 비행장으로 향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너희들은 무척이나 들떠서 들판 끝에 분명 비행장이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만장일치로 그곳에 가 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딱 하나밖에 없는 비행장까지 갔다는 것은, 출국을 하게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고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하는 과정 속에서 A와 ‘너’는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게된다. ‘너’는 타이베이의 호텔 겸 쇼핑몰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A의 청첩장 속 적혀 있는 장소는 뉴저지 카운티의 교회이다. ‘너’는 잠깐 교토에 거주하는 것 외에는 타이완에서 가정을 이루고 계속해서 살아가지만, A는 20년동안 타이완에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A와 20년만에 재회약속을 한다는 것은 ‘너’가 지난시간동안 지니고 살았던 추억들과, 고도의 옛 모습들을 한꺼번에 대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A는 결국 오지 않는다. 한번 지나친 시간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A는 떠났고, ‘너’는 그 자리에 기억을 끌어안고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를 확장시켜 생각하면, ‘너’가 느끼는 더 이상 추억할 거리라고는 남아있지 않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타이완과, 이에 맞서 아직도 옛 모습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해 아무리 시간이 흐른 뒤에 가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예전에 느꼈던 추억의 모습이 남아있어 그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도시 교토를 비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는 예전 습관대로, 우선 신쿄고쿠 토오리 거리에 있는 니시키 텐만구 신사에 가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너는 곧장 다케다이치라는 작은 가게로 가서,(…) 주인부부의 손녀는 부쩍 커서, 계산대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을 보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타이완이라는 공간이 ‘너’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길래, 왜 ‘너’는 늘 변화하는 한 가운데에 있고, 이에 낯설음을 느끼고야 마는 타이완에 남아있게 된 것일까? 앞서 ‘너’는 공간과 보존에 대한 다소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는 장소를 보존하지 않는다면, 낯선 도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낯선 도시를 구태여 특별히 사람들에게 귀히 여기고, 아끼고, 보호하고, 인정하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더 이상 기억할 거리가 없이 사라지고 변화하게 된다면 지리적으로 같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공간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너’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마도 현실적인 문제와 ('이 땅에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서 사람들을 붙들어 놓을 수도 없겠지만, 사람들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애증의 양상을 띠는 타이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서 타이완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게 된 것이다.


 


 과거의 타이완을 찾지 못한다고 결론 내린 ‘너’는, 또한 A와의 만남도 성사되지 못한 채로, 반세기 이상의 시간차를 둔 식민시절의 지도를 들고 타이완을 여행하는 이방인이 되어 보기로 결심한다. 이는 변화한 타이완을 모두 무시한 채로 지도를 들고 위치상으로만 같은 옛 타이완을 좇아 보겠다는 소극적인 저항의식의 발현이다. 그 여행에서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들과, 엉망이 되어버린 것들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다니던 학교 근처의 풍경을 지금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또 이것은 ‘너’의 딸이 살아갈 타이완과 나란히 놓이며, 이러한 삼 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서로 다른 타이완 속에서의 생활로 이어진다. 보존되지 않은 타이완들은 다른 타이완들이고, ‘너’의 추억의 장소들-마을, 댄스클럽, 극장, 카페, 서점, 유치원들-이 모두 단절되고 사라졌기에 ‘너’는 딸에게 이 도시에서 살았던 흔적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이 타이완들이 공존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바로 정치적 입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너’는 타이완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정작 타이베이에 하고 있는 일들, 가령, 남쪽에 마지막으로 남은 습지를 메워 중공업 용지를 이전시키는 그런 일들은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결코 미래세대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억’의 가치가 동원되어서, (‘네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좋든 나쁘든 새로운 것들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작가는 이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맥락 속에서, 변화 이전을 아직 기억하는 ‘너’를 통해 이 정치인들이 말하고 있는 진보가 과연 진보인지,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가치와 기억을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할 따름인지를 돌이켜 성찰해 볼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너’가 아무리 애타게 바란다고 하더라도 타이완은 달라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일어났던 공간에 다시 간다 하더라도 도저히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추억은 오로지 기억 속에서만 뚜렷한 색채와 촉감을 가지고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 결론지어진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마치 죽은 도시에 바치는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처럼(‘너는 어째서 너를 있게 한 도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인가?(…) 아마도, 그 도시에 있던 너에게 익숙하며 추억이 깃든 것들은 모두 너보다 먼저 죽어 버리고 말았다.’) ‘너’는 큰 소리로 울어버리고 만다.


안타깝게도 ‘너’는 이 속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정지하는 것을 선택한다. 새로운 과거와 추억이 생길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또 다시 상실할 것들을 잠깐 누리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너는 그것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저 잡지를 사고 커피를 마시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또, 앞으로 새롭게 상실하게 될 것들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미 단 한번의 인생을 다 살았고, 이제 쇠잔해져 있는 인간이다. (‘생사존망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많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너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도>를 읽으며, 무수한 기억들과 형용할 수 없이 깊고 막막한 감정들이 하나의 소설 속에서 단정히 적혀 전달되어와 느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결국 유한한 것의 유한성을 체감한 자만이, 주어져 있는 모든 것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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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지음, 오수연 옮김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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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은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떨 때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감정이 거의 안 느껴지는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주 지쳤을 때는 들어오는 것도 내치게 된다. 그렇지만 내친다고 생각해도 그걸 뚫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고, 그렇게 들어올 것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달 초에, 겨울이 시작되고 힘들었을 때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읽고 그의 시들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 세상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시인을 손닿는 데까지 찾아봐야 갰다고 마음먹었었다. 팔레스타인의 시인이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시인이라는 설명에 시집을 사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고등학생 때와 대학교 1학년 때,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동네의 이름들을 익히며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영어로 손으로 전하는 얘기를 들었다. 언론에 실리지 않는다는 참상을 들었다. 불안한 뉴스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을 지나갔다.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다정했다. 인사하면 꼭 차를 대접해주셨다. 시인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다가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이야기가 시의 곳곳에 담겨 있다.


 



 

"




언젠가 집에 닿으리.


 

 

 

어깨에서 짐 내려 문간에 놓으리. 거기 아무도 없으리. 빈집의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앉으리. 석양빛의 검이 집을 반으로 가르고: 어두운 쪽, 밝은 쪽. 나는 어둠과 빛 사이에 앉아 있으리. 과거는 냇물처럼 내 뒤로 흘러가고, 미래는 달팽이처럼 내 앞에서 꾸물대고, 나는 시간을 모르고. 거기서, 침묵 속에서, 빛과 어둠 사이에서, 나는 돌이 되리. 테두리가 부조로 장식된 거대한 바위 위 석상이 되리. 조각가의 손이 정으로 내 허벅지를 새기리: 이것이 경계. 이것이 댐. 과거의 물은 과거로 흐르고, 미래의 물은 반대쪽으로 흐르고.


 

 

 

<언젠가 집에 닿으리>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여기 주민이오. 닭을 길렀소. 하늘에 별을 뿌리고 땅바닥에 등 깔고 누워 세었소. 하나도 빠뜨림 없이 세었소.


 

해가 떨어지더이다. 문에 뚫린 구멍으로 한 다발의 석양빛이 들어와 내 가슴에 꽂혔소. 빛이 나를 죽였소. 나는 빛에 살해당한 자요. 언어가 남쪽으로 기울더니, 나는 죽어 있더이다. 나는 언어로 살해당한 자요.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


 


 

 

 

무함마드의 시에서 가장 와 닿았던 감정은 절망이다. 시의 화자들은 떠도는 사람이다. 이 떠도는 사람들이 절망을 얘기할 때, 때로는 절망이 절망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오랜 절망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 모든 절망 위에서 화자는 절망이 절망이 아니라는 듯 그 위를 거닌다.


 

 

 


 

"


 


내가 잠들면 오는 친구가 있어. 나는 묻지. "넌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라져버렸어?" 그는 미소만 짓고 답하지 않아. 말 너머의 미소, 내 가슴이 따뜻해져.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그가 삼십 년 전에 죽었다는 걸 깨달아. 매번 그래. 매번 나는 그의 죽음을 새로이 알게 돼.


잠 속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 거기에는 손실이 없어. 생시에 잃은 것을 잠 속에서 찾지. 그게 내가 잠자기를 즐기는 이유야.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듯이, 들에 나가듯이 잠자리에 들어.


 

 

 

<내가 잠들면>


 

 

 

 



 

발이 고통을 지워. 걷는다는 건 삭제의 잔치야, 앨리스.


말은 열린 들판을 그리워하지만, 사랑은 닫힌 축사야. 앨리스.


 

 

 

<한때 너를 사랑했지>


 

 



 

다만 당신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접시를 깨는 거다. 접시를 깨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일들이 있다. 나는 여기 이 밑에 있지만 내 영혼은 저 위로 솟구친다.


오, 이 따위 믿지 마. 시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나는 손이 떨리고 다리를 전다. 그런데 시는 사물을 뒤집어놓는다:


절망에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접시를 깨는 이유>


 

 

 

"


 



 

시들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하게 되는 순간은 다른 매체에서 담을 수 없는 통찰이 하나의 시 안에 담겨 있을 때 같다. 무함마드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화자가 느낀 통찰이 나에게 전해져올 때가 유난히 많았다.


 




"


 


'영원한'이란, 예컨대, 엄청난 단어지. 손아귀에 가득 차는 돌처럼. 나는 이 돌을 던져 죽음의 이마를 맞추겠네.


'침묵'은 제 불을 제 입으로 꺼버리는 등잔처럼 연기 나는 단어.


 


 

<언어>


 

 

 



 

그런데 없는 게 있습니다: 대추야자나무 밑에서도, 샘에서도 그걸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거 없이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


 


뭔가가 없습니다.


저는 속이 빈 토상,


신이여, 제게 뭔가 없다는 것만 압니다.


 


<없는 것>


 

 

 

 


 

그런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청구가 아니라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불가능은, 신이여, 우리가 그 밑에서 태어난 나무예요.


 

<불가능>


 


"


 

 

 

 


시간을 두고 한 번, 그리고 인용하면서 두 번을 읽었는데 시간을 더 들여서 읽고 싶은 시집이었다. 때로 어떤 시집은 내가 느끼던 고통들과 감정들이 뭔지에 대해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설명서 같다. 언어로 표현되면서, 언어에 담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언어에 담겨지면서 시가 곁에 와서 앉는다. 시의 화자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도 알아도 알아도 알 수 없는 존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알고 싶은 생각들이 있고 궁금한 마음들이 있다. 신경이 쓰이는 마음이 있고 공감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하면서 이 마음들을 열어놓는다는 생각을 한다. 알 수 없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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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세트] 그린빌에서 만나요 (총4권/완결)
유시진 / 서울미디어코믹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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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꼽을 수 있는 만화 가운데 하나인 유시진님의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새해 기분이 새로운 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섭섭해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새로운 일들은 일어나니까요.


그러니, 준비하세요.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만화 스터디에서 발표할 계획을 세우느라 들춰 본 시점과 딱 맞는 말이 적혀 있었다. 가을에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까?


 

주인공은 도윤이. 플루트를 전공하고 있는 우울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우울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도 않고. 새로운 것이라곤 익숙하지 않은 도윤이의 아래층에 이름이 ‘사이비’와 ‘사이언’인 남매가 이사 온다. 고양이를 협동해서 구조한 것을 계기로 이 셋은 친해진다. 친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여러가지겠지만, 이들은 우선 서로를 조금씩 편하게 대하기 시작하고, 같이 밥을 만들어 먹고, 고양이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도윤이는 혼자서만 가지고 있던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한 여러 생각과 관련된 질문들을 이 남매와 묻고 답하기 시작한다.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확장되고,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주인공 도윤이는 관심이 없지만) 도윤이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친구 한수. 그리고 도윤이를 찍고 싶어 하는 영화부의 바다. 인간관계는 어느 하나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게 없다. 예상하지도 못한 친구의 말에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가 끌어올려지기도 하고, 그 트라우마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도윤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 만화를 구성하는 대사의 반에 가까운 분량이 주인공 도윤의 독백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도윤의 대화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는 거울처럼 기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타인과 나누는 대화는 그럴 수가 없어서, 도윤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자꾸만 새로운 사실을 깨우쳐 간다. 감정 때문에 자기 자신 외에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기. 도윤이와 이언 형이 나누는 대화를 잠깐 보면 이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나 하는 게 와 닿고, 새삼스럽게 타인과 나의 삶 또한 그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글쎄, 원치 않아서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라면-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불안한걸."


"왜?"


"왜냐면 그 기억들이,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잖아? 그런데 나는 기억 못하고 있는 거고. 막막하고 갑갑해진다구. 나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뭔가 거기에...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이 말이야."


"음...내 생각에는 말이야. 기억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야. 그 기억들이 지금의 너를 이루고 있는 요소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는 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여기 존재하는 이 순간의 너에게 제대로 집중할 수 있다면-너는 아무 것도 놓치는 게 아니야."


"...정말 그럴까? 정말로?"


"응."


"...형은?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아?"


"하하. 응. 나는 현재밖에 없는 사람이야."


 

 

왜 어떤 사람은 기록 광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중요한 일을 기록해 두지 않고 물 흐르듯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도윤이가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기억을 찾아내고 과거를 수집하려고 하는 전자의 사람에 가깝다면, 도윤이와 친해지게 되는 이비와 이언은 현재만을 사는 사람이다. 전자의 삶을 살 때 우울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건 사실이다. 일례로 나 자신을 들고 싶다. 나도 도윤이처럼 뭔가 소중한 걸 놓치지 않았을까, 어떨 때 갑자기 불안이 몰려오고는 하는데 과연 이 이유는 뭘까, 갑갑해 하면서 현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미처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 만화는 전자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후자로 바꿀 것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 다른 삶을 비교해 보며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의 여러 갈래들을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이언 형이 그런 말을 했지. 형하고 이비 누나에겐 현재밖에 없다고.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거야.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이야.


지금 이 순간을 잡아 놓을 수 있다면, 보관해 놓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순간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 미래 어느 시점에 꺼내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


왜냐면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사랑스러우니까.


미래의 지금이 될 그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더라도


또한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지금 느끼니까.]


 

 

도윤이는 현재밖에 살고 있지 않은 이비와 이언 틈 속에서도 이렇게 이 순간을 잡아놓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도윤이 소중한 시간을 남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기저에는 소중하게 보낸 시간이 적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혼해서 같이 살지 않는 도윤의 어머니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도윤은 그런 무관심한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애정을 요청해봤자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요청 전부터 낙담했다. 도윤은 어머니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플루트를 잘 불게 되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어머니는 플루트에 관심이 있었던 거지 자신이 부는 플루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낙담은 더욱 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이후로 플루트를 관두고, 어머니와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도윤은 정적이 가득한 집에서의 삶의 축으로 플루트를 다시 선택한다. 어쩌면 이 플루트를 계속 불다 보면 어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도윤은 그렇게 다시 플루트를 분다. 불면서 플루트 자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플루트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게 된다. 즐거운 일은 즐거운 일일 뿐, 처음 이 플루트를 시작한 동기라거나 앞으로도 계속 이 플루트를 불게 해주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플루트를 재미있게 불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 뼘 한 뼘 눈에 보이게 성장해 나간다.


 

 

바다는 그런 도윤이를 찍는다. 자신을 자꾸자꾸 묻고 싶어 하고,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다시 한 번 돌이켜 기억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도윤이를.


 

"내가 찍고 싶은 건...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움직임. 소소한 것들. 처음으로 생각해보고, 깨닫고, 뭔가 느끼는 현장.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 작고 사소해도 절실한 것들. 그런 재료들을 모아서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리도록 정리하고 다듬어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이야.“


 

이런 것들을 찍고 싶어 하는 바다와 도윤은 도윤의 이야기로 구성된 몇 장면의 다큐를 찍는다. 처음에는 캠코더에 대고 얘기하는,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얘기해 나가던 도윤이는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이 캠코더 뒤의 바다에 대고 얘기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관계는 친구라는 사실도.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차 다가오다가 사실은 도윤에게 아무것도 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멀어져 가는 게 두려워서 도윤은 일부러 방어 대책을 세우듯 모두를 무신경하게 대해왔다. 그렇지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친구가 어느새 되어 있다는 사실에 도윤은 놀란다.


 

도윤이 처음으로 아주 사랑했던 이비와 이언은 (도윤이는 정체를 모르지만, 그리고 만화 내에서도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인간은 아니다. 이비는 인간의 시력을 먹고 살고, 이언은 인간의 미각을 먹고 산다. 그들이 노렸던 도윤이가 점차 성장해가고 서로 사랑하며 보내는 날들 속에서 그들은 도윤이의 시각이나 미각을 빼앗고 싶지 않다고 결론짓는다. 먹지 않아서 점차 투명해져가는 나날들 가운데서 그들은 도윤이에게 작별인사와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도윤이는 그들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다. 인간은 왜 사랑한다는 말을 말로써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사랑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지 겁먹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 바다의 소통 방식대로 도윤은 비디오를 녹화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그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한다.


 

 

 

[내 입으로 말을 하는 것... 전하려고 하는 것... 그 부분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응. 전해야 할 거야. 당신들이 듣고 싶어 하니까. 내 마음을. 오고 가는 것이 기본일 테니까. 그게 소통이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걸. 내 사랑이 사랑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불안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건 내 한계 내에서 사랑이 맞는 거고... 나름대로 내 안에서는 가장 빛나는 것이니까... 너무 초라하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녹음한 도윤의 비디오테이프는 이비와 이언 집 우편함에 넣어지고, 벌써 그들이 이사를 갔다는 걸 확인한 도윤은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찾지만 벌써 뜯겨져 있다.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만큼 그들이 자신의 비디오테이프를 확인해 주었을 것이라고 도윤은 근거 없이 확신한다. 또한 그들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를 믿을 만큼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돌고 돌아 만화의 시작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막 이사 온 이언과 이비는 주어 없이 사랑한다는 고백이 담긴 도윤의 비디오테이프를 우편함에서 발견한다.


 

모든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말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 거고. 이 만화 속에서 상상되는 ‘소통을 도와주는 외계인들’이 정말 이들의 사랑고백을 연결해 주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의 사랑, 조건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점차 조건 없이 마음을 나누고,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만큼 커가는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과정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했다. 이들이 기억날 때마다, 이들이 어디선가 행복하고 있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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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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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과 관련해 읽은 최근의 책은 트위터의 저쪽님께서 선물해주신 플로베르의 단편집 <세 가지 이야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 중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이다. 플로베르가 자신의 지방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무시무시하고 잔인하면서도 속죄에 관한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 쥘리앵은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들은 예언은 쥘리앵이 장차 황제가 되리란 사실, 어머니가 듣는 예언은 쥘리앵이 장차 성인이 되리란 것. 쥘리앵은 자라면서 사냥에 몰두하게 된다. 누구보다 잔인하게 살육을 하던 중 사슴 무리들을 죽이고, 그 중 한 사슴이 쥘리앵에게 당신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이 예언을 듣는 쥘리앵은 사냥을 관두고 은둔 생활을 하면 부모님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실수로 어머니를 화살로 맞출 뻔 한 다음에는, 성에서 도망쳐 나와 영영 돌아가지 않는다. 쥘리앵은 용병이 된다. “도망친 노예들,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 돈 한 푼 없는 사생이들 등 온갖 용감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깃발 아래로 몰려들어 하나의 부대를 이루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의 황제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황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딸과 쥘리앵을 결혼시킨다.


 

쥘리앵의 부모는 아들을 찾기 위해 성의 호화로운 생활을 뒤로하고 나서서 떠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으며 돈을 지불하느라 가진 돈도 다 떨어졌다. 그러던 중 마침내 쥘리앵이 살고 있는 궁궐에 도착하게 된다. 쥘리앵의 아내는 자신의 침대에 그들을 재운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쥘리앵은 침대에 있는 두 사람을 아내와 불륜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들을 죽인다. 이 충격으로 쥘리앵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가 빌어먹는 생활을 한다. “ 기억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는 많은 지역을 떠돌아다녔다.”


 

마침내 한 강가에서 그는 뱃사공이 되어 사람들을 실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속죄의 행위처럼 그 일을 한다. 어느 날 한 문둥이가 배에 탄다. 문둥이는 쥘리앵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태워줄 것, 먹을 것, 잘 것.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상상을 초월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문둥이는 쥘리앵이 자신을 껴안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입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쥘리앵은 그렇게 한다. “자기 입술을 그의 입술에, 자기 가슴을 그의 가슴에 갖다대고, 쥘리앵은 그의 몸 위에 완전히 엎드렸다.


그러자 문둥이는 그를 껴안았다.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머리카락은 태양의 빛줄기처럼 길게 뻗쳤다. 그의 코에서 새어나오는 숨결에서 장미꽃 내음이 풍겼고, 화로에서는 향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으며, 물결은 찬양하듯 노래했다. 그러는 동안, 아득해져가는 쥘리앵의 영혼 속으로 넘치는 환희와 상상도 할 수 없을 희열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두 팔로 쥘리앵을 껴안은 사나이의 머리와 발이 오두막의 양쪽 벽에 닿을 만큼 점점 커졌다.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맑고 푸른 하늘이 활짝 펼쳐졌다. 자기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보며, 쥘리앵은 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단순하게는 가장 속되고 더럽고 비천한 것과 맞닿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성스러움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죄를 지은) 쥘리앵이 받는 속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쥘리앵이 잔혹하게 사냥하는 장면이 실은 인간 대부분들이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살육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신비한 점은 이야기가 이토록 초월적이며 이토록 마음을 울리는 이유에 대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쥘리앵은 자신이 받은 세 가지 예언을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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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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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일반인 레즈비언 김규진님이 아내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동성간의 혼인이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규진님의 경우 회사)에 이를 알리는 일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에서는 커밍아웃한 게이 연예인은 있지만 레즈비언 연예인은 없다. 김규진님 이전에는 매스컴을 통해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또한 없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퀴어 결혼식을 올려서 퀴어가 있음을 알려주신 규진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난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하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책 속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꿈꾸는 건 퀴어 집단일 뿐이라는 얘기, 어렸을 때부터 퀴어 결혼을 간절히 바랬지만 차차 결혼은 내가 생각했었던 결혼과 다른 거라는 걸 깨달아 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 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 동성 결혼이 가능한 국가들에 대한 부러움 등. 결혼이 뭘까? 안 해봐서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책 속 결혼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생긴다는 것". 




얼마전 헤테로이신 전 직장 동료분과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분은 비혼주의자이고, 결혼에 대해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같이 한 얘기 중에 나온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은 정말 솔깃하고 배아픈 정책이었다. 예전에 게이인 친구와 정 주거문제가 막막하면 위장 결혼을 해서 혜택을 누리자는 우스갯소리도 생각났다. 어떤 집단의 혐오 때문에 누렸을 수도 있는 사회적 혜택을 못 누린다는 건 역시 암담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절망감이 들 때, "매일 매일 구체적이고 작은 승리에 집중하자는 것"이라는 규진님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너무 먼 미래에 벌어질 불공평한 일이 아닌 가까운 미래에 바뀔 수 있을 지도 모를 작은 일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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