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도 느낄 수 있다

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빈말로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르는 말이 많았다. 어휘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어휘나 사고에 있어서도 수준이 높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저자에게는 일상적인 어휘라는 점에서 격차를 느끼고 감탄하게 되었다.

단지 어휘의 도구적 의미에만 감탄한 건 아니다.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다 보니 산만한 감도 없지 않은데, 그만큼 날것이 드러나서 저자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소설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공이고 허상이기에 잘 들여다보면 단단한 철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랑말랑한 날것의 이야기를 손에 쥐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을 고스란히 만지게 된다. 오톨도톨 손끝에 걸리는 느낌은 전부 책의 흔적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설명했다. 책을 양분 삼아 성장하고, 책을 버팀목으로 견뎌내고, 스스로 책을 자아내면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되는 일을 책과 함께 하고 있다. 어쩌면 책이 친구보다 좋은 건 원할 때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읽는 사람>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과 사는 인생을 보여주지만, 역시 책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가 책 한 권을 공들여 읽는 자세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책을 소비만 해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책에서 얻은 가치관을 삶에 녹여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책을 허투루 읽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좇기 어려운 경지에 아득함을 느끼면서도 역시 그 삶을 동경한다는 걸 알았다.

제대로 읽지 못한 책에 대해 제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앞의 글은 모두 어설픈 총평이라는 고백을 하는 거다. 그래도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만큼은 읽은 모양이다. 다음에는 그의 책을 제대로 읽고 싶다.

[100자평]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날 것의 진정성을 극대화한 책이다. 그 고흐의 진정성이다 보니,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보게 된다. 주옥같은 말들이 많다. ｀달과 6펜스｀와 비교해서 보면 더욱 재미있다.

음악으로 통섭하다

나는 왜 감동하는가 - 클래식계의 괴물 조윤범의 감동 사냥법
조윤범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저자는 일반적인 ‘연주자’라기보다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통섭형 연주자’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듯싶다. 한 분야만 지독하게 파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른 분야와 물꼬를 틀 때 그 세계는 더 다양해지고 넓어진다는 걸 저자의 삶이 보여주고 있다. 한 분야만 파기도 어려운데 다른 분야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부지런한 삶과 열정이 존경스럽다.

다만 2부에서는 저자의 메인 관심사가 아니라 서브 관심사와 삶을 보여주는데, 외딴 섬처럼 배치되어서 앞 챕터와 단절감이 느껴진다. 물론 분량은 작지만 그래서 더 작은 섬 같다. 그리고 저자의 단정적인 어투가, 물론 반론하기 어려운 일반론에서 주로 그렇기는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의 자신감이 과하게 드러날 때가 있어서 별을 하나 뺐다.

비슷한 주제를 말하는 것 같아 식상한 면이 없지 않으나, 음악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00자평] 죄와 벌 1

죄와 벌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사건을 하나 던져 놓고 그 범인이 밝혀지느냐 마느냐로 이 긴 분량을 끌고 나가는 게 가장 놀라웠다. 인물의 심리와 배경묘사가 뛰어나고, 사상적 갈등 또한 잘 녹아 있다. 지식인의 몰락, 사회화 속의 개인, 극빈곤과 범죄의 상관관계 등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한 화두이다.

[100자평] 3월의 라이온 1

3월의 라이온 1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6월

가지고 있던 2천권의 만화책을 처분하면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소중품 중 하나이다. 전작 <허니와 클로버>를 사랑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해진 그림체와 섬세한 심리묘사에 감동했다. 특히 꿈을 좇는 사람의 이야기를 세대를 아울러 다루고 있어서 더 와닿는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