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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노인과 바다』는 쉽고, 편하다.
‘쉽다’는 건 독해 면에서 그러하다. 어려운 단어가 없다. 문장은 마치 아이에게 들려주듯 친절하고, 플롯은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이 단순하다. 그래서 어휘가 주는 의미보다 이야기가 주는 의미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편하다’는 건 분위기가 그러하다. 소년은 노인을 다정히 보살피고, 노인은 소년을 조심스레 대한다. 젊은 어부들은 놀리기도 하지만, 나이든 어부들은 걱정해 주고, 마르틴은 음식을 준다. 작은 어촌의 순박한 환경이 거기 있다. 게다가 감정표현, (아이를 믿음직스럽고 다정하게 바라본다거나, 제비갈매기를 가엾게 생각한다거나, 고기가 몰리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거나) 배배 꼬이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되는 감정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는 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노인이 고난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거기에는 다툼이 없다.
마치 동화 같았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쉽고,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노인이 꾸는 사자의 꿈도 그렇고, 모든 사물 심지어 다친 손이나 하늘의 달별해에게까지 인격을 부여하여 말을 건네는 행동도 그렇고, 특히 허풍인지 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팔씨름 이야기가 그렇다. 24시간 동안 계속했다는 팔씨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거대한 청새치를 잡은 것도 허풍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잠시 했다. 의심을 접은 것은 소년의 신뢰를 배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잖은가. ‘노인’이란 그런 의심이 가능케 만든다.
바로 그 노인이 여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크기의 청새치를 잡아서 끌고 온다. 가시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를 보면 그가 겪은 혹독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굴의 의지와 같은 거창한 말로 수식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생활로 굳어진 일을 숙명처럼 묵묵히 해낸 것이리라. 숙명은 때로 굴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과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것을 알아주는 소년이 있었기에 노인이 소요한 세월은 무가치하지 않은 것이 된다. 소년에게서 위로를 받는 건 비단 노인만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라 하면 보통 등을 연상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두 다리를 떠올린다. 집에 오면 무협소설을 읽는 것이 낙인 아버지의 다리는 앙상하다. 고된 일에 다치고 흉터진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두 다리는, 묵묵히 걸어온 아버지의 긴 세월을 보여 준다. 노인의 햇볕에 탄 반점이나 손의 묵은 상처처럼, 또는 디마지오의 발뒤꿈치에 생기는 뼈돌기처럼. 교훈적인 면면은 동화같다는 인상을 한층 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것은 어쩌면 각박한 현대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아마도 옛날이야기라고 하겠다. 지금은 자취가 없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고, 노인의 혼잣말은 마치 추임새 같아서, 내내 자장가를 듣는 듯했다고. 또는 연애편지라고도 하겠다. 노인이 세상에 건네는 말들은 달콤한 밀어 같아서 달이 영향을 미칠 때에도 바다가 아름다워 보였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