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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ㅣ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평점 :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 현대문학
걷기란, 기획되고 규정된 사회 속에서 일탈을 의미한다. 걷는 동안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 때로는 시간의 제약마저 벗어버리는데, 그때 자기 몸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음으로써 상처 입은 세계관을 회복한다.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이 걷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첫 문장에서부터 빨려 들어갔다. 서문의 압축적인 내용에 비해 본문은 장황하지만, 장황하다는 것은 그만큼 흥이 넘친다는 뜻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수다를 감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다소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들이 걷는다는 행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평소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죄다 드러나서 흐뭇해진다. 그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적 유희가 이루어진다.
걷는 속도로 세상을 보면 시시콜콜한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오는데, 그 작은 것들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글로 옮겨놓았다.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그 풍경을 내 머릿속에 끌어다놓을 수 있을 정도이다. 거장들의 묘사 또한 일품이다. 알베르 카뮈가 고대도시의 폐허에서 걸으며 쓴 글 “이따금 무언가 메마르게 탁 부딪치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돌들 사이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어떤 새 한 마리가 문득 날아오르는 기척이었다.”는 잠자고 있던 감각 하나를 일깨우는 듯했다. 육체적 행위의 가장 기본 단위인 걷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 또한 고찰해볼 수 있다. 걷기가 사색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걷기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향유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걷는 행위를 향유하는 동지로서 이 책을 읽는 행위 또한 즐거웠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