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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언어가 나를 세운다
같은 현상일지라도 어떤 언어를 매개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모멸감』에서는 '노동자를 꿈꾸지 않는 사회'를 자기 정체성이 박약한 개인이 허위의식에서 자존감을 찾으려는 편견으로 보았다. 개인이 속한 사회보다 사회가 속한 개인에게 더 집중한 것이다.
『모멸감』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비교’라 하겠다. 침팬지 실험에서 침팬지도 실수한 것을 들키면 화를 낸다는 에피소드는, 모멸감의 근원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사회적 동물은 내가 아닌 타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며, 타자가 있기에 비교를 하게 된다. 비교는 필연적으로 우위를 정하고, 타자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적어도 못나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적 욕망이 모멸감으로 이어진다.
결국 모멸감이란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타자가 반드시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타자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 외에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타자에게 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자존감으로 이어지며, 그 노력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이다.
그렇다면 타자와 모멸감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멸감』은 구조적 차원의 접근으로서의 사회운동과 문화적 차원의 접근으로서의 가치의 다원화를 제시한다. 또한 개인의 내면적인 힘을 키울 것을 당부한다.
여기에서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서두에서는 수치심과 모욕감과 모멸감의 개념을 구분하여 알려주는 것으로, 해당 언어가 가리키는 현상 또한 이해시켰다. 마지막에는 자존심의 뜻을 알려주는 것으로, 자존의 각성과 타인과의 품위 있는 관계 형성을 촉구했다. 이렇듯 『모멸감』에서는 세밀한 언어의 사용이 빛난다. 언어뿐 아니라 그림과 음악의 힘까지 빌린 것도 큰 특징이랄 수 있는데, 소재가 감정이니만큼 매우 효과적이면서 신선한 방법이었다.
『모멸감』에서 인용한 더글러스 스톤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 어렵다. 감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고, 스스로 위장을 잘한다. 우리가 편치 않게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위장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서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알지 못하면 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며, 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타인의 언어에 휘둘리고 말기 때문이다. 감수성 또한 마찬가지다. 감수성이 무디다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무디다는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