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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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라는 글자를 기억 속에서 가만히 퍼 올려 보았다.
이상하게도 단어 자체는 윤곽이 뚜렷한데
그림자가 희미한 것이 도통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이름에 묻어온 그리움은 가벼운 설레임을 안겨 주었다.


학창시절 해야만 했던 일들 중 하나에 그것이 있었다.
원해서 취한 것이 아님에도 그것은 그 시절에 진한 흔적을 남기고 내 속에 침전되어 있었다.
어째서일까.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데미안>을 펼쳐 들고 마지막 책장을 넘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였구나.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을 대표하는 문구이며
나 역시 이 문장만은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동적이라거나 공감했다거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그 문장이 주는 강렬함이 인상적이었을 뿐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학창시절은 잔물결처럼 잔잔하기 이를 데 없었고,
질풍노도라는 거친 파도는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공감한 것은 싱클레어의 각성보다는 오히려 방황 쪽이었다.
내가 온전히 밝은 곳에 속하지 아니하다는 자각,
집 밖의 새롭고 혼란스러운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척도라 믿어 왔던 것의 굴곡과 대면하게 된 당황과 실망......
당연히 지켜왔던 원칙이 흔들리면서 그를 계속 고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그를 망설임 없이 수정해야 좋을지 고민했던 내가 싱클레어와 겹쳐 보였다.


결국 나의 원칙은 마모되고 바스러져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시절 데미안과 같은 존재를 열망했다는 점에서 싱클레어에 백번 공감한다.
나의 고민을 끝내주고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내 갈 길을 가리켜 보여 줄 수 있는
인도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지만 타인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 때는 잘 몰랐다.
어쩌면 잘 알면서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데미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나는 <데미안>을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래야 마땅하리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감하고, 전체를 분석하기보다 편린에 취하여 나의 고민을 위로받는다.
그런 달콤한 고통이 <데미안>에는 존재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발표된 <데미안>.
토마스 만의 말을 인용하면
"그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은 그들 또래의 선지자 한 명이 나타나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냈다고 생각했고 그 고마운 충격에 기꺼이 휩쓸렸다."
그들에게 조심스레 공감해 본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이 혼란은 곧 끝날 것이며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실은 네가 아니라 세상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터무니없는 환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그 말에서 많은 위안들을 받았을까.
나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그 시절의 심정을 지금 전부 이해한다는 건 과욕이 아닐까.
평생 곱씹어 읽을수록 다른 맛이 나는 책이 있지만,
<데미안>은 바로 그 때 읽었을 때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마치 오래된 한 장의 사진처럼.
그 때는 총천연색의 컬러사진이 지금은 빛바랜 사진으로 둔갑하여
인생이라는 앨범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꺼내 한 번 들여다보고 살짝 미소지은 뒤,
그렇게 <데미안>은 나의 일부가 되어 또다시 깊이 가라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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