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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홍신 엘리트 북스 40
알베르 카뮈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에 대해 좋은 말 쓰는 사람은 많으니, 나는 형식적인 문제-개인적인 느낌이랄까-에 대해 쓰겠다.
전부터 읽으려 했던 작품이라서 이번 방학을 시작하는 소설로 삼았다. 홍신문화사 시리즈는 번역이 별로지만, 집에 있으니 그냥 읽었다.
난 소설은 소설다운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해제에 보니 알베르 카뮈는 자신이 실존주의자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나는 실존주의가 끝난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이름표야 어쨌든 이 사람이 실존주의 계열에 속한다는 ‘선이해’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렵지 않게 그런 설정, 발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참아주기 어렵다. 그래서 삼백 몇십 쪽에 불과한 소설을 일주일 가까이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그렇게 느껴질지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규정은 다소 일방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는 뻔하게 드러나는 설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느 대목에선 내가 ‘이건 이런 뜻이겠군.’하는 다음 문단에서 어떤 인물이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별로 재미없다! 전에 니체를 건드린 적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니체야 말로 이런 입장들 중 압권이다. 니체의 글들은 참으로 문학적인 맛이 있으면서도,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뭐, 어떤 식으로 글을 쓰건 자기 맘이지만, 난 문학적 형상화는 학문적 서술방법과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상가 중에는 논문 형식을 따르지 않으면서 고난도의 미묘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학문적 글쓰기는 전달이 잘 되는 게 좋다고 본다. 따라서 명시적이고 조직적인 게 좋다. 말하자면 직설법적인 것이다. 반면 문학적인 것은 직설법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 그 내용을 설명할 수 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그 문학적인 힘이 사그라져서, 원래의 맛이 상실되어야 한다. 뭐, 그렇다고 이 작품이 논문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 쪽으로 좀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