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 만화교실
박무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해 전, 이 책을 구입했을 무렵의 일이다. 직장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한밤중의 만화읽기로 해소하던 어느날, 문득 '내가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만화가가 되야 했는데, 어쩌다 이러구 있는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렵 읽고 있던 만화책 <마스터 키튼>의 감동이 좀 지나쳤던 모양이다.

사실, 학창시절 나의 거의 유일한 취미는 만화그리기였다. 틈만 나면 연습장을 온통 예쁜 여자애의 얼굴로 채우곤 했었다. 하지만, 만화가가 되기엔 스스로 공부를 너무 잘한다고(?) 오만을 떨며 만화가의 꿈을 손쉽게 내던져 버렸었다. 그런데, 어릴 적의 그 손쉬웠던 결정이, 막 30살을 넘긴 어느 날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만화가가 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감을 느끼며, 나는 몇 권의 만화 실기서적들을 구입했었다. <무일푼 만화교실>도 그 중의 한 권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서 권하는 펜촉과 잉크, 종이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한 순간의 바람'이었을까. 분주한 직장 생활에 밀려 나는 미처 한 페이지도 잉크로 채우지 못한 채 그냥 그 계절을 넘겼다. 그리고, 한살 두살을 넘기고 나니 이젠 정말 만화가의 길에 접어들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하여튼 <무일푼 만화교실>은 나에겐 이러한 사연을 안고 있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읽는 동안만은 재미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새롭고 얻게된 지식은, 비단 만화가 지망생이 아닌 만화의 열혈 독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왔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어이없게도 작가 박무직의 그림체다. 그의 그림체는 아무리 봐도 서툴다. 인체 표현이 특히 어색하기만 해서 아무리 정보를 얻으려고 보는 책이지만, 자꾸 눈에 거슬린다. 이 책을 통해 만화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데생연습을 좀더 충실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책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는 아마도 별 넷, 일반 만화 독자들에게는 별 셋짜리 책이 아닐까 싶다. 만화가의 길을 완전히 포기한 나는, 그래서 <무일푼 만화교실>에 별 셋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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