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나 1 - 애장판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고령 출산이라고 남들 안하는 산전검사까지 받았던 주제에, 난 여전히 철없는 엄마다. '소중한 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끼지만,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은 때때로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신생아였을 때엔, 우는 아들을 달래다가 '울지마, 준연아! '누나'가 안아줄께'라고 말이 헛나온 적도 몇번 있었다. 아기가 이 말을 알아들었다면 정말 기가 막혀 울음을 뚝 그쳤을 일이다.

<아기와 나>를 읽게된 배경에는 이런 나의 철없음이 자리잡고 있다. '아기와 나!' 요즘 내 생활을 이 제목보다 더 집약적으로 표현해줄 문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24시간 내내 뗄래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 '아기와 나!' 이 만화책은 진정 나를 위한 만화책이구나 싶었다. 한술 더 떠서 주인공 '진이'와 나를 무의식 중에 동일시하며 '그래, 진이는 도대체 아기를 어떻게 키우나 보자'하는 심정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만화책을 한권 한권 읽어가며, 나는 역시 '스스로 때때로 착각하듯' 더 이상 어리지도 젊지도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진이가 아기를 기르며 씨름하는 부분은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진이의 친구 관계나 학교 생활 부분이 나오면 한없이 지루해지는 것이었다.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싸움, 화해와 우정... 이런 내용들이 예전처럼 짜릿 짜릿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그러다 겁이 덜컥 났다. 지금도 이러는데, 우리 아들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이면, 그 녀석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어느새 새로운 이들과의 새콤달콤한 만남보다는, 이미 자리잡힌 안정된 관계를 다지는데 더 신경을 쓰는 나이가 된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더 이상 대단한 자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물론 '아기'라는 엄청나게 강력한 자극제를 만난 직후의 일시적인 증세일 수도 있다.)

결국, 만화책을 읽는 내내 '신이' 등장 부분만 열심히 보고 다른 부분은 대충대충 훑어보았다. 아기도 잘 기르고,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많고, 친구들 사이에서 의리도 있는 완벽한 녀석 '진이'는, 한편으론 으젓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좀 징그럽다는 생각도 해가며...

문득, 이 책의 광팬들이 '왜 늙은 아줌마가 리뷰를 올리고 난리야'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제 나도 그토록 사랑하던 '만화계'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일까? 그러긴 싫은데.. 아들 준연이와 같이 만화책 보며 깔깔 웃는게 나의 소원인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