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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차 타기
스티븐 킹 지음, 최수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2월
평점 :
이 소설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는 솔직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균 별 하나라니! 스티븐 킹의 열렬한 팬으로서 평점을 올려야 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별 네개에 클릭을 하고 리뷰를 시작한다. 우선, 많은 독자들이 실망감을 표시하는 주 원인은 이 책의 빈약한 분량 때문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도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달랑 이게 뭐야'하는 실망감을 느꼈다. 정상적인 가격을 지불한 책치고는 너무나 얄팍했다. 그러나, 그건 스티븐 킹의 잘못이 아니라 이 책을 발간한 국내 출판사의 잘못이다.
E-book용으로 나온 짧은 단편 소설 하나를 책 한권으로 낸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정상적인 분량의 책이라면 '총알차 타기'정도의 단편이 5편 정도는 실려야 한다. 이 책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 달랑 한편만 싣고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괘씸할 뿐이다.그러나, 애초에 이 소설이 e-book용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길이는 매체의 특성에 딱 적당한 수준이다. 연재작도 아닌데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e-book 소설이라... 생각만 해도 눈이 아프다. 컴퓨터에서 다운받아 읽는 소설이라면, 이 정도의 길이가 가뿐하고 좋다.
사실, 이 소설이 인터넷에 떴을 당시만 해도 e-book은 완전히 초기 단계였다. 과연 사람들이 돈을 내고 소설을 다운받아 읽을 것인가? 아무도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던 시기에, 스티븐 킹은 과감하게 실험적인 매체를 선택했고 그 결과 '적어도 스티븐 킹 작품이라면 독자들도 e-book을 읽는다'는 답을 얻어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무리 스티븐 킹이라 해도, 이런 실험적인 시도에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e-book으로 띄우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총알차 타기>가 e-book으로 올랐을 때 다운받는 가격이 2불 남짓했던 걸로 알고 있다. 컴퓨터 상에서 이 소설을 읽은 후 독자들의 느낌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도 그들이 지불한 2불이 아깝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림책처럼 얄팍한 책 한권을 받아든 국내 독자들과의 심리적인 차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저 등꼴이 오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만을 기대한 독자라면 이 책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이 소설은 공포 소설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러나 사실은 부모 자식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아무리 '효(孝)'라는 영어 단어가 없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효'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인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선택의 순간', 과연 나는 나를 선택할 것인가, 어머니를 선택할 것인가. 이 소설은 독자들을 이처럼 시험대에 올려놓는 작품이다.
스티븐 킹은 이제 단순한 호러 작가가 아니다. 그는 호러물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왠만한 순수문학가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훌륭한 천재 작가이다. 그동안은 타고난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왔지만, 이제는 주제 의식과 진지함으로 자신의 작품에 그 문학적 두께를 더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품 가운데 하나인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읽어보시길. 과연 누가 그 소설을 통속소설로 분류하랴. (그러고도, 여전히 너무나 재미있으니...아, 스티븐 킹은 역시 천재다.) 그저 등꼴이 오싹하고 으시시한 경험을 원한다면, 이 책은 최고의 만족을 안겨주진 못할 것이다. 단순한 공포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포물'을 찾은 것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싶었던 나에게는 충분한 만족을 안겨준 책이다. 눈물이 핑 돌면서 '엄마' 그리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