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1 - 천의 얼굴을 가진 소녀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유리가면'은 '캔디'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고아나 다름없는 어린 소녀가 꿋꿋하게 세상사를 헤쳐나간다는 점에서는 두 만화가 일치했다. 그러나, 밝고 화사한 기운이 마냥 넘쳐나는 '캔디'과는 달리, '유리가면'에는 범접할 수 없는 비장함과 치열함이 가득했다. 캔디가 어떤 뚜렷한 삶의 목적없이 그저 다가오는 운명을 헤쳐나가는 것에 비해, '유리가면'의 오유경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자신의 천직에 모든 것을 내던졌던 것이다.

글쎄... 당시 12-13살 소녀에게 '천직에로의 투신'은 너무 버거운 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얼굴의 오유경이 스타가 될수있다는 사실에 더 열광했고, 라이벌의 도전을 보기좋게 물리치는 모습에 더 흥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캔디'에서 볼수 없었던 '불같은 열정'(안소니나 테리우스를 향한 열정과는 다른 성질의)의 희미한 윤곽을 그때 처음 경험했던 것도 사실이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유리가면'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이 만화책은 결말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만화의 저자는 완벽주의자라서 본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몇년이고 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소문이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다시 읽어내려간 유리가면. 20년의 세월만큼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만났지만, 이 만화는 여전히 걸작이었다. 어쩐지 촌스러워 보이는 그림체나, 주인공들의 유행에 뒤쳐진 의상도 이 만화를 빛바래게 하지는 못했다.

30을 넘어선 이 나이에 보아도 어린 주인공의 열정은 가슴을 섬뜩하게 만든다. 자기 인생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히 아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장엄해 보였고. 문득 생각해 본다. 지나온 내 젊은 날에 치명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 만화를 10년전쯤 한번 더 읽었어도 좋았을 것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딸에게 꼭 읽혀주고 싶은 만화책이다. 그 아이에게 '인생은 한가지에 제대로 매달리기에도 짧은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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