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


작가의 어머니가 작가에게 자주 했던 말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 문장은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고, 읽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고 계속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한동안 카톡의 상태메시지와 프로필 사진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 문장.


책 속의 주인공인 세스의 취미는 오래된 만화를 수집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던 한 컷 혹은 그 이상의 만화들을 모으던 세스는 어느 날 우연히 옛날 <뉴요커>에 연재하던 휘트니 대로우란 작가의 만화책을 사게 되고, 그 작가에 꽂혀 뉴요커 여러 권을 구입해 살펴보다가 이 만화 내내 세스가 작품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작가 캘로의 만화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이 책의 제목은 캘로의 삶의 대해 알게되면서 세스가 느낀 것이지 않을까 싶다. <뉴요커>에 만화를 연재하면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하고 아내를 위해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와 남은 평생을 부동산 일을 하면서 보낸 남자. 만화가의 꿈이 있었던 캘로를 생각하면 실패한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딸, 그의 친구,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얘기를 읽다보면 캘로의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힘들어하긴 했지만 딸에게는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고, 친구에게는 만화로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너무나 괜찮은 남자였고, 어머니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꽤나 야한 만화'를 그려서 웃음 짓게 만드는 아들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 아닌가?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혀졌고,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유명세도 타봤고, 정말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인생. 말 그대로 그냥저냥 평범했지만 그래도 꽤나 괜찮은 인생.


책 속의 세스:D도 만화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일과 관련된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그는 이 책에서 만화를 수집하고, 캘로의 정보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며,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체트에게 우울한 말만 잔뜩 쏟아내고, 혼자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기나 한다. 성공한 사람들 혹은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 보자면 아까운 인생이지만 세스는 그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기분 상하는 일도 있고, 좋은 일만 일어나는 인생도 아니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람을 대하려고 하고, 불평이 많지만 반성도 하는 너무 강하지는 않지만 약하지도 않는 적당한 중간의 삶. 좋아하는 친구와 고양이가 있고, 가끔 코드가 안 맞지만 미워하지는 않는 가족들도 있는 삶. 그러다 대단히 맘에 드는 만화와 작가를 만나기도 하고 말이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세스가 모텔에 전화를 해 애니를 찾는 장면이다. 캘로의 발자취를 쫓다 머물게 된 모텔에서 세스는 그림을 그리는 애니를 만난다. 애니는 세스가 만화가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며 방으로 초대한다. 사랑 때문에 스트라스로이에 와 모텔에서 생활하고 있는 애니는 세스에게 그림을 선물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세스는 말까지 더듬는 애니가 약간 거북스러워 자리를 피하고, 그런 세스를 붙잡아 자신이 발명했다는 것을 보여주던 애니는 세스에게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한다. 세스는 방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괜히 생각에 잠기고 다음 날 애니의 방문에 잘 있으라는 쪽지를 하나 남겨놓고 떠난다. 이렇게 그냥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세스는 다음 번 스트라스로이 방문 때 전화번호부에서 모텔 전화번호를 찾아가면서까지 전화를 걸어 애니를 찾는다. 하지만 애니와 통화는 하지 못했지. 세스는 왜 애니에게 전화를 했을까. 그 때의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서? 애니의 소식이 궁금해서? 아니면 단지 애니가 쪽지를 봤는지 확인하고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어쩌면 그냥 세스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양념처럼 지나가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왜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장면.


이 만화는 작가의 시리즈 만화인 <팔루카빌>의 에피소드 일부를 엮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캘로의 에피소드는 이게 끝이겠지. 하지만 이후로 세스는 무언가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세스의 다른 에피소드들도 책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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