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짧막해서 읽기 좋다. 김영하의 문체는 거칠고 남성적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의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에 대한 이야기다.화자인 김병수가 병에 걸린후 건조하게 끄적여 놓은 메모장을 읽는 느낌이라해야 할까? 텍스트가 적고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게 끄적인 이야기는 큰 불편함과 부담감 없이 잘 읽히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다 읽을 만큼의 분량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제목과는 달리 공포는 느낄수 없다. 오직 힘없고 늙은 한  남자가 잊혀지는 기억을 붙잡고자 끊임없이 써내려갈 뿐. 그러나 더 웃긴건 단지 살인자에게 느껴지는 공포가 아니라, 그를 통해 기억을 잃어가는 그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공포'가 꽤나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한다. 스스로가 낯선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기억을 붙잡고자 자신이 끄적여 놓은 메모들을 멍하니 응시하며 전혀 새로운 텍스트와 마주하는 느낌. 그런 것일 것 같다. 아마도... 그는 20년 넘게 살인을 해왔음에도 그는 죄책감과 수치감은 없다. 악과 선에 대한 경계도 없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아마 이렇게 '기억의 상실'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 다랐다. 쉼 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아니 점점 마지막 후반부에 가까워졌을쯔음.. 갑자기 김병수의 모든 기억과 기록들에 대해 섬뜩해졌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리사 제노바 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가 생각난다. 그 소설 역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유능한 여교수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같은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문체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가 더욱 더 짙었던 것 같다. 김영하의 문체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라, 섬세하지 않음에, 내가 읽기에는 그 텍스트에서 전해지는 어떠한 감성과 감정, 느낌들이 조금은 덜했던 듯 하다. 그러함에도 그 건조하고 메마른 듯한 차가운 문체가 오히려 뒷통수를 맞은 듯 후려침이 강렬하다. 갑작스럽게 확 밀어닥친 공포라고 해야할까? 그런 반면에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교수의 심리적, 행동 등 변해가는 과정을 무섭도록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그 묘사는 읽는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암'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라고 생각하게끔 하기도 했다. 그런 반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바탕에 두고  삶과 죽음, 악과 선, 시간, 기억에 관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반전도 있고, 위트도 있다. 가벼운듯한 소설이지만,  이상하게 이 소설을 읽은 후 며칠은 내내 '김영하'의 메모들이 뜨문뜨문 생각나는 묘한 소설이다.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나를 낳은 어머니, 당신 아들이 곧 죽어요.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혹시 나는 인간 광우병이 아닐까? 병원에서 숨기고 있는 걸까?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모든 것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글로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면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녹음했다고 생각한 말이 글로 적혀 있다. 그 반대도 있다. 기억과 기록, 망상이 구별이 잘 안된다. 의사가 음악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의 추천에 따라 집에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무슨 효과가 있을지. 새로운 약도 처방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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