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자꾸 나의 시선을 붙잡는 일본 소설을 나는 결코 외면할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도 서점에서도 계속 내 시선을 빼곡히 채웠던 소설 <십자가> 어렴풋이 누군가의 리뷰를 대충 훑어보면서 '왕따'에 관한 이야기라는걸 알았다. 그리고는 나는 지레짐작 당연한 흐름을 예상해 버렸는지도. 소설의 중반을 지나서도 어떠한 감흥도 몰입도 느끼지 못하였다. 지지부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도, 마음에 안들었을 뿐더러, 지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건조함이 풀풀 날리는 흐름이라니. 이 소설이 왜 이렇게 평이 좋은 것이 였던건지... 읽는동안 내내 나는 불만으로 가득했지만, 이미 반이나 읽어버린 책을 포기하기는 왠지 아쉬웠고, 책 속의 이야기의 결말이 은근 궁금해졌다. 또한 책 속에서 느꼈던 의문들도 아직 풀지 못했으니..

 

이 소설은 구성이 조금 독특하다. 소설 <십자가>는'왕따'를 당하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그려지는것이 아닌, 왕따로 심각한 고통을 받았던 중학생 후지슌의 자살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재의 모습이 아닌, 성인이 된 '나'(사나다 유)의 시선으로 기억을 곱씹듯 그려지고 있다. 기억 속 우리들이 중학생이였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을 회상하듯이 '나'의 독백 또는 회상록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왕따를 당하던 후지슌, 그리고  자살 짧게 쓰여졌던 후지슌의 유서에 담겨져 있었던 4명의 이름, 그리고 그들이 짊어졌어야 심리적 고통과 슬픔, 안타까움들.  왕따를 당했던 당사자의 고통은 순간의 선택일지라도 남겨진 자들은 어쩌면 평생을 가슴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 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늘 학원 폭력의 피해자 , 당사자에게만 연민을 느꼈을뿐,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은 전혀 마음에 담지 않았었다. 그들을 이야깃 거리로 다루는 사회적인 시선들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초점은 피해자에게만 맞추어져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차단해 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책을 읽다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느껴보려 해도 도무지 쉽지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무언가 건조한듯 인물들의 심리, 내면을 들여다보는듯이 조용히 흘러가는 스토리에서 무언가도 얻지 못하고 , 무언가를 알지도 못했고, 무언가를 버리지도 못한채  난 그렇게 텍스트를 곱씹듯 읽어 나가서가 아니였을까. 하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읽히던 소설에서 나는 의문이 생겼고,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는 지독히도 저릿한 강한 여운을 남겼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왕따'를 당한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내며 나는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는 잊혀지고 , 지워진다는건 , 시간의 순리이다. 어느 누군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일상의 삶에서 흐릿한 기억으로 주위를 맴돌다, 어느 순간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것에 어쩌면 '나'(사나다 유)는, 왜 자신이 후지슌의 절친이 되어있는지도 모른채 늘, 등에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나'의 기억속에서 후지슌이 사라질까 늘, 불안했고, 그것이 후지슌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그건 어린 사나다 유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고 평생에 짙은 트라우마로 남는 고통의 시간들이 아니였을까.. 잊지 말라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 평생 후지슌을 등에 그림자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사유리와 사나다 유가 문득 참 많이 가여웠다. 소설 <십자가>는 이렇듯 한 소년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들을 담담한듯 섬세하게 내면속 심리를 담고 있다.  살아 간다는것은 과연.. 내게, 또는 당신과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삶은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로 인해서 ..어쩌면 인생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또다른 희생자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한동안 이 소설은 내 페부의 깊은 곳을 찌르고 있을 듯하다.

 

 

책 속에서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때는 찔린 순간이야.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은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 놓을수 없고 ,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 (75쪽)

 

 

왕따는 어린아이 같은 짓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문제를 어린아이의 유치한 잘못으로 끝내 버리면 안된다. (217쪽)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 얽힌 추억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조금씩 멀어지고 잊힌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로 추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겼던 추억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오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파도에 씻기듯 한꺼번에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어질 때도 있다. 밀물일 때도 있고, 썰물일 때도 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추억은 조금씩 바다로 떠내려가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때 우리는 겨우 하나의 추억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284 - 285쪽)

 

 

절친이라는 것은 죽고 싶을 정도의 고민이 있을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인 동시에, 털어놓지 않아도 눈치를 채거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상대이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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