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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이 소설을 구입한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늘 책장에 꽂아 놓고는 선뜻 손이 가질 않아 마냥 '언젠가 읽어야지... '라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수번... 그런 어느날, 문득 얇은 이 책이 눈에 띈다. 한동안 고전을 가까이 하지 않음도 있지만, 가볍고 가벼운 텍스트들을 접하다 보니, 내 심장도 겉도는 느낌이다.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은 봄날... 아직 내 피부는 겨울과 같으니 .. 이불을 돌돌 말고 침대에 엎드려 페이지를 넘긴다.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에 비해 텍스트가 전해주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참혹하고 비극적이며 암울하다. 이야기는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의 단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단 하루가 그들에게는 수 년간 반복되고 있는 일상인 것이다. 나는 텍스트를 마주 하는 내내 이불을 더욱 꼬옥 감싼다. 너무 춥다. 어찌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는 건가.. 너무 디테일한 표현에 몰입의 이완이 반복적이다.
강제 노동 수용소의 죄수들은 각기 다른 죄목으로 들어왔지만, 그것이 어떠한 큰 죄목이 아닌 억지스러운 죄를 씌워 그들을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낸 것이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추위에서 모든 생활은 절제되었고, 억압된채 그들의 인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가 없는, 어찌보면 그들은 생각까지 스스로 하지 못하게 통제 당한 기계적으로 맞춰가고 따라야 하는 짐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한다.<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텍스트가 주는 디테일한 묘사와 담담하고 세련된 문체는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더욱 진하게 느끼게 해준다.
야채수프는 따뜻하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데, 다 식어버렸으니, 오늘은 그나마도 운이 없는 날이다. 그러나 슈호프는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설사, 지붕이 불탄다고 해도 서두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 (23쪽)
동녘 하늘이 푸르스름해지고 밝아오긴 했지만, 아직 수용소 주변은 어두컴컴하다. 뼈를 애는 가느다란 동풍이 뼈 속에 스며드는 것 같다. 점호를 하러 가는 순간만큼 괴로운 순간도 없을 것이다. 어둡고, 춥고, 배는 허기진데다 ,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나 하고 생각하면 눈 앞에 캄캄하다. (36 쪽)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던 그런 날이었다 (208쪽)
이 소설은 두 가지의 면을 보여준다. 그 시대 소련의 지배 권력에 대한 비난과 그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억압 당하는 약자에게 보내는 동정의 시선을 말이다. 이렇듯 희망이 보이지 않는 비극적인 수용소의 일상이지만 슈호프의 시선을 통해 진한 인간애와 사랑을 느낄수 있다. 또한 가혹한 환경 속에서의 비애와 슬픔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그 속에서 희망과 아주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슈호프를 보며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평범한 일상이 '당연함'이 아닌 '축복'이고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