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1825일의 기록 - 이동근 여행에세이
이동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의 저편에는 아직도 자라지 못한 '내'가 머물고 있는듯 보입니다. 어렴풋이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말이지요. 나의 기억과 나의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인지 문득 문득 작은 편린들이 하나의 큰 공허함과 간절함으로 범벅되어 버렸어요. 이 한 권의 에세이로 인해서. 유난히 '낡은' 또는 '오래된' 그 무엇과도 잘 어울립니다. 호화스러움이 아닌, 감성으로 젖어버린 색감의 사진들이 아니라 꾸밈이 없으니깐, 있는 그대로 그 곳에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그가 보입니다. 그 낡은 돌계단을 지나, 매끈한 포장된 지면이 아니라, 울퉁 불퉁 한발 한발 딛기도 힘겨워 보이는 그 좁은 골목에서 그가 돌아 보네요.

 

유난히 그는 '그리움''추억' 그리고 '소통'을 원하고 있어요. 현실에서 재촉하듯 고개를 슬며시 들어 한곳을 바라 볼수 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는 '지금'의 건조해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는 어쩌면 소소했던 그날들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그러해요. 현실에 물들지 못하고, 자꾸 맴돌고 겉돌며 치기어린 그 날들로 스며들어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지니까요.오래전 그러니까 각박한 세상속에 스며들지 않았던 그날, 부지런히 끄적이지 못한 채 결국 채워지지 않은 오래된 일기장에서는 지나간 토막의 기억이 희미하게 번진 짓눌림으로 뜨문뜨문 적혀 있을 뿐  공허하게 백지로 남은 수많은 날들의 나는 어떠한 하루를 보냈을지, 채우지 못했던 수많은 그날의 '내'가 문득 궁금해 집니다.

 

1825일동안 서성였던 수많은 골목 사이 사이에서 그는 오롯이 혼자의 여행을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묻어 버립니다. 실컷 외로워하고 실컷 아파하고 실컷 행복해 하라며 그는 우리에게 , 외로움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도 해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때로는 사람과의 소통으로 치유하길 바랍니다.  내 여행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본 것들을 당신이 본다고 하여,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없다. 나에겐 의미인데 당신에겐 하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여행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63

 

그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자꾸 그곳에 서 있는 그가 보이는듯 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와 함께 골목 골목의 사람 냄새 나는 그 곳을 지그시 한발 한발 내 발자국에 새기고 싶어져요. 1825일 동안 79곳의 관광지 그리고 어딘지도 알수없을 정도로 오래된 골목들 속을 거닐며 그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요. 우연히 마주 한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서, 나이 지긋한 분들의 따스한 손길에서 그는 계속 자신의 노트에 순간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어렴풋이 떠올랐던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써 내려갑니다. 그는 말해요.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 말이에요. 누구나가 외로우니까, 나만 그러한건 아니라고,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진솔함을 느낍니다. 미사여구로 뒤범벅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는 우리에게 그러니까, '너'에게 전달하고 싶은 '나'의 진실된 이야기를 말입니다.내가 당신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당신의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들어 줄수 없으니 그저 안타깝고 무력하다. 내가 그대에게 보여 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은 진심이 담긴 나의 마음 한 가지다. -20

 

저는 이렇게 단촐한 사진과 꾸밈없는 텍스트로 가득 찬 <너, 1825일의 기록>이란 에세이가 꽤나 마음에 듭니다.  아마 나에겐 '용기' 이겠지요 . 아니면 '공감' 이었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희망'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이 에세이를 읽어 내려감에 있어 순간 순간 느꼈던 그 때의 감정과 감성들이 말입니다. 말하지 못한 사연 한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는지요.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는지요.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고, 견뎌 보라고 쉽게 말을 건넬 수도 없습니다. 좋은 말로 위로할 필요도 없고, 이해한다고 안아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가만히 들어 줄 누군가일지도 모르니까요. -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