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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 The King of Pigs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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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급작스럽게 겨울이 성큼 다가온듯한 날씨에, 아직 추위에 적응할 준비를 하지 못한 저의 몸은 찬바람이 마냥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춥기도 했고, 요즘 부쩍 작업실 일의 양이 늘어나니, 몸은 평소보다 천근만근 배로 피로함이 많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음 같아선 6시쯤 퇴근과 함께 여유롭게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지요, 하지만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나 봅니다. 일이 더뎌지니 퇴근시간도 그만큼 딜레이 되어 버렸고, 결국 조금은 빠듯하게 저녁을 떼우고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에 도착했습니다. 따뜻한 커피한잔을 구입해 상영관에 들어서고 싶었지만, 독립영화관에선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뭐 예외인 곳도 있긴 하지만) 물 이외에는 반입 금지이니, 조금 아쉽네요.
영화 <돼지의 왕>은 한국 최초 잔혹 스릴러 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청소년관람 불가 이기도 하고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뒤로 쳐진채 빛을 보지 못한 우리 나라 애니매이션이 올해 들어선 꽤나 인기, 흥행선에 올라탄듯 싶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이라든지 <소중한 꿈> 등을 보면 알수 있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이번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이 두 영화와는 달리 꽤나 잔혹스럽고 거친 느낌입니다. 그리고 절망적이기도, 어둡기도 하지요.
이야기는 세상이 버렸던 15년 전 그날, 그 끔찍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 됩니다. 성인이 된 ‘경민’은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을 찾아 나섭니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히 먹고 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을 하지요.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이야기를 종석에게 시작하며, 행복하지 않았던 그들의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과거로의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가지요.
경민과 종석은 가진 자들에게, 그러니까 공부 잘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같은반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경민 또한 부유하지만 작은 체구에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이 입니다. 종석은 비참하리 만큼 가난함을 품고있는 아이이지요, 두 소년이 친해질수있었던 것 또한 부유함과 가난이 아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 같은 동지애(?)같은 것 때문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경민과 종석에게 강한 힘이 되어주는 '철이'가 있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가정 불화로 겁날 것, 무서울것이 없었던 철이는 권력과 지배자로서의 힘을 휘두르려 하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짓밟아 버립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초반에 언급한것과 같이, 꽤나 잔혹하고, 어둡습니다. 대사들 또한 거침이 없기도 하지요. 얼핏 보면 학원물로 보여지지만, 학교 폭력을 가장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 입니다. 인간을 동물로 표현함에 있어선, 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종석과 경민은 누군가의 먹이로 바쳐지기 위해 살찌우는 "돼지"로 비유되고, 그런 그들을 지배하는 자들은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개"로 비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 또한 비참하리만큼 지금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권력과 폭력, 악과 선의 경계, 약육강식 등, 현실에서도 약한 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 그리고 강한 자에게 비겁하리만큼 굽신거리는 약한 자들의 생존방식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직선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 거침없는 대사에 불편하다기 보단, 순응하고 받아 들이고. 때로는 철이가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에선 내심 스스로 쾌재를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것이 저 또한 , 비겁한 약자라는 의미가 아니였을까 생각 들기도 하네요. 강자에게 비굴하리만치 고개 숙이는 약자들을 보면서도 선뜻 그들에게 당당히 맞서지 못했던 종석과 경민처럼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돼지의 탈을 쓴 채 , 비굴하고 나약한, 비겁한 모습의 약자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돼지의 왕>의 그림체는 참으로 투박하고 거칠뿐 아니라, 움직임 역시 부자연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또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기복이 아닌 조금은 강압적인 느낌을 띄고 있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뻔히 보이기도 하고 , 너무 적나라한 비판적이고 어두운 이야기 이다 보니 관객들을 설득함에 있어 ,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애니메이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지극히 지금의 피할수 없는 안타까운 불편한 진실인 현실상을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함에 있어, 실사 영화가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을 꽤나 잘 소화해 내었습니다.
왠지 만화책의 느낌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한 , 70년대의 투박함이 물씬 풍기기는 하지만, 의외의 반전은 저에게는 꽤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애니메이션임에도 잔혹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기도 했고요, 그리고 정말 많이 분노하고 또 분노했습니다. 그것이 '개의 노예' 로써인지 '돼지의 왕'으로 써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문득 여러 장면에서 꽤나 분노 스럽고 답답스러운 한숨이 끊임없이 입을 통해 토해졌으니까요,
* 문득 찾아온 겨울을 알리는듯한 차디찬 밤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는길, 왠지 참 세상이 우울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