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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영화 <터미널>이 떠올랐습니다. 2004년 개봉 영화니깐 한 7년쯤 된 영화네요. 이 영화 역시 공항을 주 무대로 삼고 이야기 합니다. 비록 톰행크스 홀로의 외로운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지만, 김민서님의 소설을 처음으로 집어들면서 '공항' 이라는 공통된 소재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아니였나 생각이 드네요. 참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한번쯤 보시길!). 왠지 공항! 하면 글쎄요. 저는 그다지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유는 제가 아직 촌스럽게 공항 구경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방송에서나 드라마에서만 접해보았던 이미지 그 뿐입니다. 더 이상 공항의 매력이나 감탄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바삐 출입국 하는 여행객들, 아니면 사업차 분주한 움직임으로 보는 저로 하여금 저 또한 마냥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 소설 속에는 그런 공항 속에서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 삶 속, 이야기가 묻어 나옵니다. 이야기는 아이슬란드 화살폭발로 인해 유럽행 항공기가 결항되면서 많은 여행객들이 인천공항에 발이 묶이게 되는 기약없는 <에어포트 피크닉>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무료하고 지겨운 공항에서의 나들이를 어떻게 보내게 될지 이제 곧 펼쳐집니다.다양한 인종들이 모인만큼 그들의 삶과 인생 이야기들도 참, 희노애락이 섞여있는것 같습니다. 오롯이 성공만을 바라보며 전진하기만 하는 여인과, 크나큰 실패를 안고서 가족들과 여행길에 올랐던 한 가장의 외롭고 무거워 보이는 두 어깨에 짊어진 짐, 첫사랑의 쓰디쓴 이별에 방황하는 마음에 사랑을 믿지 않는듯한 사춘기 소녀, 모국에 아픈 상처를 안은채 입양되었던 한 청년,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그녀 '호주'의 살풋한 사랑 이야기 등등 많은 인물들의 삶이 한 타래의 실뭉치처럼 뒤엉켜 있습니다.
어찌보면 각양각색의 삶이였고, 그들만의 아픔인듯 하지만. 기약없이 머무르게 되는 공항에서의 몇일의 피크닉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의 커다란 눈송이처럼 점점 거대하게 뭉쳐진 느낌입니다. 서로 모르던 타인에서 그 짧은 시간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아주고 진솔한 고백을 끌어내기도 하고, 사랑이 싹트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걸어온 삶을, 인생을 뒤돌아 본적이 있었던가?' 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늘 숨가쁘게 앞만 보며 , 무심히 과거는 철저히 짓밟아 버린것이 아니었나 .. 하는 생각을 하니 , 저에게는 과거는 없고 오롯이 미래와 앞으로 가야할 길만이 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나쳐온 과거를 곱씹어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옛기억의 추억이 아닌,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사막같은 느낌의 오래된 기억들 뿐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공항의 여행자들 또한 숨가쁘게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들의 옛 추억들을 떠올릴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뜻밖의 우연한 공항에서의 피크닉이 한번쯤 자신들이 스스로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 볼수 있었던 짧은 여행길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였겠지요. 그래서 그 수많은 공항의 여행자들은 서로, 서로에게 의지했고, 화해를 했고,사랑을 나누었고, 우정을 나누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에게 해줄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을테고요. 공항이란 그 곳이, 어쩌면 삭막하게 느껴지고 바삐 돌아가는 초시계처럼 기계적인 감정없는 답답함이 난무할지 몰라도, 어찌 보면 이렇게 또다른 기회의 공간이 될수 있음을 알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공항은 설레임이다' 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수많은 여행자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곳(공항)으로 향하지 않아서 일까 싶습니다. 꽉 막힌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더 넓은 시야를 얻을수 있는,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여행자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이야 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자신들의 뜻하지 않았던 일들로 인해 공항에서 느닷없는 오랜 투숙(?)을 하게 되지만, 그것 역시 인생에 있어 한번 올까 말까한 소중한 추억과 여행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왠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한편의 영화 <러브엑츄얼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묶어 만들어낸 영화 말입니다. 공항에서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가슴아픈 인생속에 빠져 읽다보니 우리의 삶도 이 소설속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희.노.애.락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에어포트 피크닉>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소설이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공항'이란 어렴풋한 환상을 한가지 더 심어주었던 소설이였기도 하고요. 정말 가장 보통의 날들 사이로 찾아온 가장 특별한 날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