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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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으스스할듯한 한권의 '세계문학'고전을 집어들었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탓에 금방 읽을거라며 자만하며 가볍게 집어들었을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만스러움은 이 책을 읽는내내 후회스러움으로 가득했을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후, 지끈거림과 무언가 꽉 막힌듯한 답답함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슴에 응어리 처럼 남아있다. 무엇일까? 이 찝찝하다 못해 짜증스러운 느낌이란! 요 전에 2권의 고전을 접할때까지만해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내게는 괜찮은 고전들이였는데, 이 책은 적응하기도, 읽는내내 겉도는 문체로 인해 조금은 내게 난해한 듯한 느낌을 안겨준 한 권의 책이 되어 버렸다.

 <나사의 회전>은 1898년에 씌여진 100여년이 조금 더 넘은 오래된 소설이다. 제목에서 알수있다 시피 나사의 회전은 나사가 회전하면서 점점 조여가듯히 공포와 긴장감의 극대화를 나타내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영화, TV시리즈,오페라 등으로 재 탄생하기도 한 유명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오래전에 씌여진 소설이여서 인지 문체의 약간의 난해함에 그리고 쉽게 읽히지 않아 이 책을 손에 쥔 동안 약간의 고통스러움이 느껴진다. 이런 이유는 그동안 쉽게 접할수 있었던 현대문학소설의 영향도 있을테고, 또한 고전에 대한 편견과 편독으로 인해 다양히 , 그리고 많이 접하지 않았던 나의 지극히 편애스러움에 가까운 책읽기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는 갓 스무살이 된 가난한 목사의 딸인 그녀가 가정교사 자리를 얻게되며 런던으로 올라온다. 그녀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 상류층의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어린 조카 남매의 부모가 인도에서 부모가 죽자 어쩔수 없이 남매의 후견인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린 남매는 자신의 적절한 경험이 없어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남매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했던 그는 자신이 할수있는만큼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대해왔다, 그 아이들이 잘 자랄수 있는 곳, 시골저택으로 그 아이들을 보냈고, 하인들도 보내 아이들의 시중과 보살핌을 맡겼다. 그리고 하인들중 우두머리격인 그로스 부인도 함께 그 시골 저택에 함께 있었다. 그런 곳으로 가정교사인 그녀가 새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지금와 생각해보니 가정교사의 이름이 한번도 이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맡은 가정교사의 일에 조금은 긴장했고 설레임이 가득한 듯하다. 자신이 맡아 돌보아줄 마일스와 플로라 남매를 처음 본 직후 그녀는 그 아이들을 너무 마음에 들어했으며, 자신이 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보살필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저택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자유로움과 그리고 풍족함, 아름답고 예쁜 아이들, 충실한 하인들과 그로스 부인, 그녀는 그런 삶에 매료되어 행복감에 젖지만 어느날 화자(그녀)는 알수없는 유령을 목격한다. 알수없는 소리와, 반복되는 어떠한 알수없는 정체의 인물(유령)의 목격을 하고, 그 사실을 그로스 부인에게 고백하게 된다. 그로스 부인은 아마 예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하인과 교사일 것이라고 추측을 해줄 뿐이다. 그리고 그녀(화자)는 그 유령들이 남매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아이들을 지켜야 겠다고 의욕을 나타낸다.이 모든 이야기는 그녀(화자)의 입장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다른 인물들이 정말 그녀가 서술한 대로, 이야기하는대로 그들이 느꼈을지는 의문이다.오로지 1인칭 시점일 뿐, 정확하지 않다. 그녀는 그로스 부인이나 남매들에게 자신만이 보았을듯한 유령의 존재를 강하게 주입 시키는듯하다. 그녀는 아이들이 간교해서 유령을 만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그녀(화자)만이 알고있는 유령의 실재 유무에 독자 또한 그녀의 심리를 그대로 따라 가는 수밖에 없다. 그녀가 그로스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유령의 존재를 설득하는 모습에서도 볼수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유령의 존재가 없다고도 할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상세하고 명확한 유령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유령의 존재는 그녀의 정신착란으로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환각일지도 모른다. 가난한 그녀가 이런 모든 부를 누리며 이 모든걸 소유 하고 싶은 욕구와 집착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해설' 부분에서도 볼수있듯이 많은 비평가들이 그녀(화자)를 '믿을수 없는 화자' 라고 평하고 있다. 그 말이 당연시 들리는 건, 아마 두 아이와 그로스 부인의 행동이나 발언 등이 오롯이 그녀의 시점에서 설명되고 파악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 처럼 조금은 난해하고 알수없는 유령의 존재 유무가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으로 조여오는듯 하다. 결국 이 소설은 모호한 끝맺음으로 모든 판단을 독자들 스스로에게 맡기고 만다. 사실 이렇게 많은 생각과 스스로에게 질문을 남기는 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늘 깔끔하고 명확한 결말이 드러나는 소설을 추구하는 내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지끈거리는 두통처럼, 답답함과 찝찝함만 잔뜩 느낄뿐이다. 헨리 제임스는 '절대적 악행, 최악의 행동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수 있으므로, 그것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다고 말한다.'막연한 암시만 제공하여 독자가 형상화 할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그 공백을 채울수 있다(242쪽)의 해설에서 말했듯이 제임스는 독자들에게 이런 모호함으로 결말을 내린 이유는 어쩌면 다양한 독자들의 성격과 생각, 그리고 소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것이라 생각함에 있어서 이런 모호함 결말을 택한 듯 하다 . 하지만 그런 제임스의 생각이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훌륭한 결말이고 선택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처럼 단지 답답함과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처럼 느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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